몰입과 직관
기획업무는 금방 그 자리에서 답이 나오질 않는다. 업무의 성격상, 끊임없는 관심과 고민, 학습 그리고 관련자 분들과의 협의 등으로 하나 둘 계층적으로 해결되어 나가게 된다.
다만, 어려운 기획은 답이 없다. 몇 년 동안 회장님께서 타 본부에 지시하신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서 해외공장과 해외 판매법인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있는데, 또한 생산, 판매, 품질, 연구소, 자동차 전체 라이프사이클의 경영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 보세요.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타 본부에서는 엄두도 못 내고 타 본부와의 협업도 어려워 시작도 못하고 보고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3년이 지난 그때, 부회장님을 통해서 서면으로 지시사항이 본부장, 사업부장, 실장, 팀장을 통해서 나에게 전달되었다.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최고경영층의 지시가 문자의 형태로 담당자에게 전달된 적이 있던가?
몰입
그날부터, 난 24시간 내내 지시사항만 생각했다. 무엇을 모니터링해야 하는지, 경영층에서 무엇이 궁금할지, 하지만, 아직 회사전체 업무를 모르는 나에게는 무리인 지시였다. 이런 하루하루가 수일이 지나고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럼 빨리 출근하고 싶다. 그 아이디어를 기획안에 포함해서 보고하고 싶어서다. 또한 내가 모르는 부분을 알아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회사조직에서는 멍청한 생각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기획보고를 위한 수행방안을 작성한다. 회장님께서 지시한 말씀을 본부에 요청하여 최고경영층에서 모니터링해야 할 지표를 작성하여 회신하도록 했다. 그렇게 모인 지표를 확정하는 전사 본부별 주무실장 임원분들을 한자리에 모셨다. 당연히 주관은 사업부장님이 하시고 난 또 회의록을 작성하게 된다. 그렇게 확정된 지표에서 인사와 신차 연구개발은 제외되게 된다. 이는 극비사항으로 다르게 관리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렇게 확정된 지표를 모니터링하고자 할 때, 이제 어떻게 고민이었다. 도구는 무엇을 사용할 것인지 24*365로 운영할 것인지, 운영할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해결한 과제들이 많았다. 그렇게 흘러간 1달 반의 시간뒤에 팀장님께 보고서를 출력해서 보고 드렸고, 본부장님께 보고하기 희망하였으나, 그냥 뭉개고 계신다. 무엇일까? 문서의 부족함을 이야기하지도 않으신다. 답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새롭게 팀장이 되신 분은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ERP를 담당하시던 분으로 표준시스템 글로벌 전개를 위해서 채용된 분이셨다. 다만 많이 꼼꼼하시고, 의사결정이 늦으셨다. 그런 것이 새로운 조직에서 어려운 숙제이기도 한 것이다. 누구나 새로운 조직으로 이동하면, 수개월에서 수년은 분위기와 사람들과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을 말로는 해도 잘 몰랐다. 우스개 소리로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 지나야 며느리가 그 집 안을 안다는 에전말이 예전 시대에는 맞는 말인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는 동안, 난 그 기획보고서에 수정할 것은 없는지 왜 팀장님께서는 보고를 안 하시는지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관
새벽 화장실에서 추진 조직구성을 사무직 3교대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과 글로벌종합상황실 조직과 IT조직을 담당하는 담당사장 보직을 신규로 만들면 우리 조직의 역할도 회사에서 좀 더 중요해지고 본부장님도 승진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또 빨리 출근하고 싶어서 출근해서 수정하고 다시 팀장님께 설명하고 있는데,
본부장님께서 나오셔서 왜 보고가 늦는지 이야기하려고 오셨다가, 추진 조직도를 모시고 바로 이거지.. 가지고 들어와 하시는 거다. 대성공이었다. 모든 본부장님 결재와 회장님 결재까지, 문서를 들고 보고하는 업무는 사수가 하셨다. 아직 난 직급이 낮아서 ㅎㅎ 하지만 모든 일은 내가 했다는 그 뿌듯함은 아직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재경본부장님이 50% 절감을 이야기하셔서 구축을 위한 IT계열사 현대오토에버 팀장님들께 각 부분에서 50% 절감한 견적을 다시 받아서 본부장님께서 보고하러 가셨는데, 다시 100%로 회장님께서 증액해서 결재하셨다. 작은 도장 하나, 수많은 본부장님들의 싸인이 있는 보고서 한부가 내손에 있다. 그리하여 그 보고된 문서를 가지고 구축을 요청하였고, IT투자를 위한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에 회장님께서 본부장님께 CNN 뉴스 권역별 센터를 벤치마킹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셨다. 24*365 운영은 낯설 때라, 뉴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으니, 가서 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역시 최고경영자의 혜안은 훌륭하다. 다만, 그 출장도 난 영어가 약해서 입사 1년 차 사원이 본부장님을 모시고 출장을 다녀오게 된다. 그놈의 영어는 아직도 나를 더 노력하게 한다. 벌써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영어공부한 지가 1년 하고도 3개월인데, ㅎㅎ 그래서인지 SPA레벨 4는 달성했지만, 주재원 기준인 레벨 5를 목표로 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당연히 공간이 필요하여 총무팀을 통해서 그 공간도 확보하고, 사무실 공사와 IT프로젝트가 수행하게 되었다. 기획은 이 맛에 하는 거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조직 속에서의 협업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추진, 지금 생각해도 이 숙제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뵙고 있는 IT계열사 대표이사를 하시고 퇴임하신 분인 그 시절 사업부장님의 빠른 판단과 추진력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청 똑똑한 분이시다. 그리고 빠르다. 직관적인 분이다. 이분과의 에피소드는 또 뒤에서 다루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