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큐레이터의 불친절한 미술이야기-감정

by 씅씅

예술 작품의 진위, 시대와 작가를 식별하며 예술적 가치를 판별하는 일을 흔히 ‘감정(鑑定, connoisseurship)’이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판독을 넘어서 오랜 경험과 훈련, 심미적 직관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서양 르네상스 회화나 동아시아 고대 서화처럼 전적이 불확실한 경우 감정가는 붓 터치, 구도, 표현 양식의 미묘한 차이 등 여러 시각적 정보를 통해 시대나 작가를 추측한다. 그러나 이처럼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감정에는 언제나 오류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특히 학계, 미술 시장, 미술관 사이 이해관계가 얽힐 때 그 객관성과 공정성은 더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감정은 단지 ‘무엇이 진짜인가’를 묻는 일이 아니라 ‘누가 진짜라고 말할 권리를 가지는가’를 묻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감정과 권력의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전편 글​​에서 소개한 버나드 베렌슨이 있다. 베렌슨은 미술품 딜러 조지프 듀빈과 협력하며 특정 작품을 티치아노나 다 빈치에 귀속시키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다. 그 결과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등 미국 메이저 미술 컬렉션이 형성되었지만 학문적 판단과 상업적 이익이 불가분의 관계로 얽히게 되었다. 베렌슨은 감정에 조반니 모렐리의 유명한 귀납적 추론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모렐리는 예술가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작은 세부 요소들(귀의 형태, 손가락의 길이, 손톱 묘사법, 눈동자 배치 등)에 주목했다. 작가가 큰 구도나 상징적 주제에서는 의도적으로 모방하거나 스타일을 바꿀 수 있지만 이런 세부 양식에서는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습관이 드러난다고 믿었기 때문에다. 즉, 모렐리에게 감정은 작가의 ‘지문’을 찾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소위 모렐리 방식은 셜록 홈즈의 추론법과도 유사하다. 홈즈는 현장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단서를 통해 범인의 심리와 정체를 추론한다. 모렐리 역시 그림 속 미세한 신체 묘사를 단서 삼아 작가를 추론한다. 실제로 아서 코난 도일은 모렐리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홈즈가 사용한 과학적 관찰과 귀납적 추론은 미술 감정의 방법과 맞닿아 있다.


조반니 모렐리의 드로잉
XRF 스캐닝을 통한 렘브란트 작품의 안료 분포도

요즘은 여러 기술을 통해 감정의 단점이 많이 보완되고 있다. 엑스레이 촬영으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여러 층 등을 통해 화가의 작업 과정을 추론할 수도 있고 XRF를 통해 안료 분석을 통해 특정 시기에 사용되거나 사용되지 않은 안료 정보로 연대를 추측하기도 쉬워졌다. 하지만 동아시아 회화 감정은 아직도 옛 방법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이유는 많다. 유화나 템푸라처럼 덧칠할 수 있는 매체를 사용하지 않아 엑스레이 촬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안료도 오랜 기간 동안 크게 바뀐 점이 없어 17세기 이후 많이 사용된 특정 블루 계열 안료 말고는 뾰족한 단서를 주지 않는다. 탄소측정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 수백 년 간 위작가들은 이미 옛 비단이나 종이를 사용해 위작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중국회화 감정 관련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백 년 전 사례도 많지만 20세기 이후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계산행려도> 사건이 있다. 1997년 메트로폴리탄이 유명 서화수장가 왕기천(C. C. Wang)이 기증을 약속한 10세기 화가 동원의 <계산행려도>를 전시하면서 큰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버클리대학의 제임스 케일은 그림에 나타난 필법과 여백 처리 등이 장대천의 기존 위작들과 유사하고 왕기천 이전의 출처 정보가 없는 점을 들어 장대천의 위작이라 주장한 반면 프린스턴대학의 원 퐁은 산수의 구성, 공간 처리, 필법과 묘사 기법이 동원 유파의 양식과 일치하며 후대 모작에서는 재현하기 힘든 문기(文氣) 있어서 10세기 작품이라 단언했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계산행려도>를 바로 입수하지 않았다. 대신 미술관 주요 기증자인 오스카 탕이 이 그림을 구입해서 2016년에 기증함으로써 입수 과정은 일단락되었다. 현재 이 그림은 10세기 동원 전칭으로 표기되고 있다.


전(傳) 동원(董源),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계산행려도> 논쟁은 감식안의 문제를 넘어 학계, 수장가, 미술관이 맺고 있는 복잡한 권력의 삼각구조를 보여준다. 왕기천은 단순한 수장가가 아니라 장대천의 친구이기도 했고 중국 및 미국 미술계 모두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그림이 진짜 동원 작품으로 인정받을 경우 그는 자신의 수장가로서의 권위와 컬렉션의 시장 가치를 함께 제고할 수 있었다. 한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이 그림을 입수할 경우 초기 문인화 컬렉션의 공백을 이 그림으로 채울 수 있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세계적 기관으로서의 문화적 권위를 재차 확립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학자, 수장가, 기관은 모두 진위 판단에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판단의 객관성과 독립성에 깊은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감정의 주관성이 가져오는 논란 탓에 최근에는 감정이 제도권 학문과는 분리된 단편적이고 직관적인 해석의 영역으로 치부될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각적 분석, 재료에 대한 이해, 미술사적 직관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감정은 미술 작품에 대한 결론과 판단이 아닌 기초적인 과정이 되어야 하며 과학적 분석, 출처 연구, 수집 맥락에 대한 윤리적 검토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즉, “누가” 감정했느냐보다 감정의 과정과 근거에 무게를 두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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