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없는가?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없는가?”
이 질문은 원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세운 가장 핵심적인 구분선이다. 생산 수단(means of production)을 소유한 자는 자본가, 그렇지 못한 자는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그런데 오늘 한국 사회, 특히 70~80년대생에게 이 질문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상한 풍경이 나온다. 월급 없이는 살 수 없는 노동자인 동시에, 퇴직·노후·자녀 교육을 감당하려면 “투자자”가 되라고 강요받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고전적인 의미의 ‘노동자 vs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이자 자본가”라는 이중 정체성을 강제로 부여받고 있다.
마르크스에게서 자본주의의 본질은 단순하다.
자본가는 공장, 기계, 토지, 자본금, 즉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
노동자는 오직 자신의 노동력만을 가지고 시장에 나와 이를 판매한다.
이 둘의 관계 속에서 잉여가치(surplus value)가 발생하고, 그 잉여분은 생산 수단을 가진 자에게 귀속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비참함”은 단순히 임금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시스템 그 자체를 통제할 수 없고, 거기서 나오는 과실을 구조적으로 소유하지 못한다”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소외(alienation)다.
1. 노동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 내 일의 결과를 내가 통제하지 못함
2. 노동 산물로부터의 소외 – 내가 만든 가치가 나에게 귀속되지 않음
3.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소외 – 동료도 경쟁자가 되며, 인간관계가 시장화
4.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 내가 나를 하나의 상품으로 느끼게 됨
이 고전적 틀로 보면, 우리는 여전히 노동자 = 생산 수단 비소유자라는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21세기의 자본주의는 형태를 바꾸었다. 생산 수단 자체가 “물리적 공장”에서 “디지털 네트워크”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은퇴는 빨라지고, 은퇴 이후 인생은 길어진다. 동시에,
정년은 짧고,
연금은 불안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 구조는 복잡해졌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로만 살면 안 된다. 네 스스로 자산을 굴려서 노후를 대비하라. 부동산, 주식, 펀드, 리츠, ETF… 공부해서 투자자가 되어라.”
그 결과, 우리는 월급 없이는 버티지 못하지만, 동시에 투자에 실패하면 미래도 없는 ‘투자자-프롤레타리아’(investor proletariat)가 되어버렸다. 표면적으로는 “노동자도 주주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소유하는 건 대부분
지배력 없는 소액지분,
배당에 소홀한 기업문화,
가업승계를 위해 주주 가치를 희생하는 지배구조
속에서 ‘리스크만 떠안는 자본’인 경우가 많다. 즉, 우리는 이중으로 소외된다.
1. 노동자로서 생산 수단을 통제하지 못하고,
2. 투자자로서도 기업 통제권 없이 손실만 분담하는 구조에 놓인다.
이 상태에서 “노동자도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마르크스는 산업 자본주의를 “극단적 분업화”의 체계로 보았다. 포디즘(Fordism), 테일러리즘(Taylorism)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일을 최대한 잘게 쪼개서,
누구나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만들고,
표준화·반복·규율로 효율을 극대화한다.
이 구조에서는 노동자의 숙련과 개성은 오히려 방해물이었다. 하지만 AI의 등장은 이 분업 구조를 다른 방식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매뉴얼 업무, 단순 지식 처리, 반복적인 사무 작업은 LLM과 각종 자동화 도구가 흡수. 반대로,
특정 도메인에 깊게 파고든 전문성,
그것을 AI와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장인형 노동,
인간의 감수성과 판단이 필요한 기획·해석·창작은, 오히려 레버리지 되는 노동이 된다. 그래서 “풀타임 근무제를 기본값으로 하는 기업 중심의 노동 문화”는 구조적으로 유지되기 힘들어진다. 대신,
프로젝트 단위,
커뮤니티 단위,
네트워크 단위로 묶이는 유연한 노동 구조가 늘어난다.
이론적으로 보면, 이는 “노동자의 개인 브랜드와 도메인 지식이 ‘소규모 생산 수단’처럼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현재의 지배적 생산 수단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특히 디지털 경제에서의 핵심 생산 수단은,
서버와 인프라를 장악한 거대 플랫폼,
그 위에 축적되는 데이터,
사용자·창작자·광고주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효과다.
이른바 플랫폼 자본주의다. 이 구조에서는,
사용자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동시에 콘텐츠를 소비하고,
창작자는 콘텐츠를 제공하며 플랫폼에 의존하고,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통제하고, 수수료 구조를 설계하고, 데이터와 네트워크 효과를 독점한다.
전통적인 봉건제에서 농민이 영주의 토지에 의존해 살아가듯, 오늘날 창작자와 노동자는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영지에 묶여 지낸다. 그래서 Web2.0은 자주 “디지털 봉건제”로 불린다.
유튜브, 인스타, 틱톡, 스팀, 앱스토어…
토지는 플랫폼의 것,
수확물의 룰도 플랫폼이 정한다.
노동자는 콘텐츠를 만들고, 유저를 모으지만, 데이터·알고리즘·정책·광고 수익 구조는 플랫폼의 손에 있다.
다시 묻자. 이런 구조에서,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가?”
형식적으로는 영상, 글, 이미지가 “나의 창작물”일 수 있지만, 실제 유통 구조와 수익 구조를 통제하는 생산 수단은 여전히 플랫폼의 손에 있다.
여기서 Web3와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하나의 이론적 시각이 생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반의 컴퓨팅 시스템 자체를 새로운 형태의 생산 수단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전통 자본주의에서 생산 수단이 공장·기계·토지였다면,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생산 수단은,
네트워크 프로토콜 (블록체인, 레이어 1/2,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그 위에서 돌아가는 스마트 컨트랙트와 애플리케이션,
그 네트워크를 굴리는 컴퓨팅 자원과 토큰 이코노미다.
Web3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다음을 지향한다.
네트워크의 지분을 토큰으로 쪼개, 다수가 나눠 가진다.
네트워크 운영에 대한 거버넌스(규칙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한다.
네트워크에 기여(개발, 검증, 콘텐츠, 유동성 공급)한 만큼 보상하는 메커니즘을 설계한다. 이게 제대로 작동하면, 노동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단순히 이 플랫폼에서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이 네트워크의 지분을 소유한 자본가이면서, 동시에 이 네트워크에 꾸준히 기여하는 노동자다.”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 수단의 공유 소유”를 국가 소유가 아니라 네트워크와 커뮤니티 수준의 공유 소유로 재구성하는 실험이 바로 Web3의 여러 프로젝트들이다. 물론 현실의 Web3는 투기·사기·과대포장으로 얼룩져 있지만, 아이디어 자체의 이론적 의미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처음 제시한 새로운 관점이 이론적으로도 중요한 포인트를 찌른다. “결국 지속가능한 투자가 가능한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GDP가 늘어나는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 되는 젊은 국가와 같이 일을 해야 된다. 그 해답은 내 도메인이 힘을 발휘하는 커뮤니티 기반 네트워크의 지분을 소유하고 기여하는 것이다.”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하면,
1. 생산 수단의 디지털화
생산 수단이 공장에서 네트워크·프로토콜로 이동했다.
이 네트워크는 국경을 넘어 작동한다.
2. 노동자-자본가 이중 정체성의 구조화
우리는 임금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네트워크 지분(토큰, DAO 지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몫)을 가진 소규모 자본가가 될 수 있다.
3. 노동 소외를 줄이는 방향성
내가 기여하는 커뮤니티와 네트워크가 나에게 지분·보상·거버넌스 참여권을 준다면,
나는 단순 공급자가 아니라 공동 소유자(co-owner)가 된다.
4. 도메인 전문성과 네트워크 자본의 결합
단순 금융투 자(부동산, 주식) 대신,
내가 이해하고, 기여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도메인 기반 커뮤니티에 시간·노동·자본을 함께 투입하는 구조.
이건 “투자하라, 부자가 돼라”라는 자기 계발이 아니라,
“어떤 생산 수단을 누구와 함께 소유하고, 어떤 네트워크에 평생 기여할 것인가”
라는 정치경제적 질문에 가깝다.
한국의 현실을 다시 보자.
인구 구조: 초고령화, 생산가능 인구 감소
부동산: 빈집 증가, 지방 소멸, 가격·금리 리스크
주식 시장: 낮은 배당성향, 지배구조 리스크, 가업승계 편향
노동 시장: 고용 안정성 하락, 플랫폼 노동 확대, 청년층 자산 격차 심화
이 구조에서 “노동자가 부동산과 주식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하라”라고 말하는 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경기하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국가-플랫폼-자본”의 삼각형 밖에서 다른 형태의 소유와 기여를 상상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국가를 초월한 네트워크 단위의 경제,
플랫폼 독점 대신 프로토콜 기반의 개방형 인프라,
주주 중심 지배구조 대신 커뮤니티 기반 거버넌스.
Web3가 완성된 답은 아니지만, “디지털 봉건제를 넘어서려는 여러 시도들”을 한데 묶은 이름 정도로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선언해야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건 단순한 공정성의 감정적 주장 이상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담고 있다.
1. 가치 창출의 주체와 가치 분배의 주체를 일치시키려는 시도
지금은 플랫폼이 분배를 통제한다.
Web3/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가치를 만드는 자가 네트워크의 지분을 가져가게 하자”는 방향이다.
2. 노동 소외의 완화
내 창작물이 어디로 흘러가고,
그로 인한 수익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내가 어느 정도 통제·참여할 수 있을 때 소외가 줄어든다.
3. 노동자이자 자본가인 삶의 구체적 형상
나는 단순히 월급을 받고 끝나는 노동자가 아니라,
내가 기여한 커뮤니티·프로젝트·네트워크의 지분을 갖는 자본가가 된다.
이때의 자본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시간, 명성, 창작물, 관계, 토큰 등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처음 질문을 다시 묻는다.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없는가?”
고전적 자본주의의 답은 “그렇다. 그래서 노동자는 구조적으로 소외된다.” 오늘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의 질문은 이렇다.
“디지털·AI·Web3 시대에 노동자는 어떤 형태의 생산 수단을, 누구와 함께, 어떤 네트워크 안에서 소유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부동산과 전통 주식만 바라보고 싸우는 게임에서 벗어나,
도메인 전문성과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결합한 새로운 생산 수단을 상상하고,
그 네트워크의 지분을 나누어 가진 자본가이자,
동시에 그 네트워크에 기여하는 노동자로 살아가자.
그때 비로소 우리는, 비록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노동의 소외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삶”을 현실의 전략으로서 고민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