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이념과 생물학적 중앙집중의 상호비교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를 구성하는 방식, 권한을 분산하는 철학, 인간 사회의 조직 원리를 새롭게 재설계하려는 시도다. 그 이념의 핵심은 ‘탈중앙화(Decentralization)’이다. 하지만 생물의 세계, 특히 고등 생물의 진화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정반대의 현상, 즉 철저히 중앙화된 시스템—중추신경계—를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생물학적 구조와 기술철학 간의 간극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탈중앙화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을 거스르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중앙화된 구조가 진화의 결과로 선택된 것이라면, 블록체인은 ‘비자연적’ 진보인가?
이 글은 이 질문을 생물학적 진화, 철학적 구조, 기술적 패러다임의 교차점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진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이라 생각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진화는 단지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의 생존과 번식’일 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선택’이지 ‘향상’은 아니다. 인간은 지능을 발전시켰지만, 여전히 손가락을 자르면 재생하지 못하고, 몇 분간 산소 공급이 끊기면 뇌는 영구적 손상을 입는다. 반면 플라나리아는 잘린 머리를 재생할 뿐 아니라 이전의 학습된 행동을 일정 부분 보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중추신경계가 가장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 시점에서 가장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진화된 것임을 시사한다. 인간의 신경계는 고도로 집중된 구조를 갖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자연의 최적해는 아니다. 우리는 종종 ‘진화된 = 우월한’이라는 오해 속에 살아가지만, 진화는 그저 우연과 필연의 교차로에서 효율성을 따랐을 뿐이다.
중추신경계는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며 에너지 효율적이다. 외부 자극을 일원화된 시스템에서 판단하고 반응하는 구조는 빠르고 강력하다. 그러나 동시에, 치명적인 리스크도 내포한다. 뇌가 손상되면 인간은 ‘존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블록체인 이념이 지적하는 중앙화 구조의 치명적 결함과 유사하다.
블록체인에서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을 제거하려 한다. 이는 곧,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서버’, ‘중앙기관’, ‘지배 엘리트’를 분산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블록체인은 플라나리아처럼 ‘기억이 조직의 여러 부분에 나뉘어 존재하고, 어떤 부분이 손실되어도 전체 기능이 유지되는’ 구조를 꿈꾼다.
실제로 탈중앙화와 유사한 생물학적 구조는 존재한다. 산호초 군락, 개미나 벌의 군집 시스템, 혹은 해파리와 같은 신경총 기반의 생물들은 분산된 판단과 협력으로 생존한다. 이러한 구조는 중앙집중적 판단 없이도 복잡한 패턴과 행동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등 생물들은 규모와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결국 중앙화된 시스템을 선택했다. 이는 정보 처리 속도와 에너지 효율성 때문이며, ‘중앙화 = 생존’이라는 공식을 강화시켰다. 다시 말해, 진화는 효율성 중심의 경제적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중추신경계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블록체인은 생물학적 진화의 모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적 진화와 제도적 실험의 결과다. 인간은 자연의 연장선에서 문명을 만들었지만, 그 문명은 자연의 모방이 아닌 ‘재해석’이다.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는 생물의 조직 구조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이러한 기술은 생명과 달리 물리적 한계가 덜하며, 다중 실패 지점을 견디도록 설계될 수 있다. 블록체인의 노드들은 기억을 나눠 갖고, 일부가 손실돼도 전체 네트워크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플라나리아식 재구성, 혹은 산호 군집처럼 **‘자율적 재생성 가능 조직’**과 유사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조심스럽게 도출할 수 있다.
1. 탈중앙화는 생물학적으로 ‘비자연적’이라기보다, ‘다른 전략’일 뿐이다.
생명계에는 다양한 생존 방식이 존재한다. 블록체인은 기존 중앙화 전략과 다른 ‘문명적 진화의 갈래’다.
2. 중앙화는 생존을 위한 최적화였지만,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고등 생물의 중앙화는 특정 조건 하에서 생존에 유리했을 뿐, 블록체인처럼 분산을 택한 시스템도 적절한 환경에서는 지속가능할 수 있다.
3. 블록체인은 이제 ‘살아남는 것이 우월한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철학으로 시작된 이념이 기술로 구현되고, 시장과 인간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블록체인을 또 하나의 진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중추신경계는 수억 년의 실증을 거쳤고, 블록체인은 이제 겨우 수십 년의 실험을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혁명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때로, 자연이 선택하지 않은 길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