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핵심 인물
과거의 많은 현인들은 스스로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석가모니.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이들의 사상은, 사실 대부분 곁에서 듣고 정리한 제자들의 기록 덕분에 살아남았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그가 쓴 책이 아니라, 제자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대화편을 통해 전해진다.
공자의 말은 제자 안회(안자), 자공, 증자 같은 이들과 후대 공문학파가 묶어 낸 『논어』를 통해 내려온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 같은 추종자들과, 복음서를 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기록으로 정리되었다.
부처의 설법은 제자 아난다와 가섭 등이 결집에서 암송하고, 후대가 이를 엮어 경전으로 만들면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역사 속 ‘위대한 사상가’들만큼이나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첫 번째 추종자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스승의 생각이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자기 언어와 시대의 언어로 번역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의 첫 번째 팀원, 특히 대표의 첫 번째 핵심 추종자를 떠올린다.
창업자에게도 공자에게 안자와 자공이 있었듯이,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인들의 말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곁에서 집요하게 듣고, 묻고, 정리한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철학적 대화편으로 구조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소크라테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토론할 거리조차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과 사건을 마태·마가·누가·요한이 복음서의 구조로 엮지 않았다면, 기독교 신학은 오늘날 같은 거대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다가 결집에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암송하지 않았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훨씬 더 빨리 희미해졌을 것이다.
스타트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대표의 머릿속에는 나름 일관된 비전과 그림이 있는데, 막상 말로 꺼내면 주변 사람들에겐 이렇게 들리기 쉽다.
“말은 멋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하지?”
바로 여기서 첫 번째 추종자의 역할이 시작된다.
창업자의 머릿속에 있는 비전과 아이디어는 일종의 원어(原語)에 가깝다.
머릿속에서는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밖으로 나오면 이런 특징을 가진다.
상징과 비유가 많고
구조는 대략 있지만, 문장은 두루뭉술하고
본인은 “다 이해했겠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팀, 투자자, 고객은 이 “원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상태로 바로 제품을 만들고, 피치를 하고, 마케팅을 하면 대표가 생각한 방향과 실제 결과물이 엇갈리기 쉽다.
여기서 첫 추종자는 고전 시대의 제자들처럼 번역자가 된다.
대표의 말을 듣고
→ 팀이 이해할 수 있는 업무 언어로 바꾸고
→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와 숫자로 재구성하고
→ 고객이 매력을 느끼는 문장과 화면으로 옮긴다.
대표의 비전이 ‘사상’이라면, 첫 추종자의 일은 그 사상을 제품 언어, 조직 언어, 시장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소크라테스가 오늘만큼 선명하게 남지 못했듯, 좋은 첫 추종자가 없으면 창업자의 비전도 회사 안에서 흐릿하게 퍼지다 사라지기 쉽다.
그래서 좋은 첫 추종자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표의 생각을 해석하고 다듬는 첫 번째 에디터에 가깝다.
회의에서 자주 보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대표가 30분 동안 비전을 이야기한다.
모두들 조용히 듣지만, 표정은 약간 멍하다.
이때 첫 추종자가 이렇게 정리해 준다.
“그러니까 이번 분기에 우리가 꼭 해내야 할 건 이 세 가지다.”
또는 팀원들이 다 같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이렇게 말한다.
“대표 말은 이런 뜻이다. 우리 입장에서 바꾸면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이 한마디가 팀의 방향을 다시 맞춘다.
첫 추종자는 늘
대표의 말을 요약하고
팀의 언어로 재번역하고
실행 가능한 할 일 목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대화”라는 형식으로, 예수가 “비유와 사건”이라는 서사로, 부처가 “설법과 게송”이라는 구조로 남아 있는 것처럼, 스타트업에서도 첫 추종자가 대표의 생각을 형식과 구조 속에 얹어 주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첫 추종자는 제품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문화의 샘플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창업자보다, 이미 안에 있는 첫 추종자를 통해 조직의 분위기를 체감한다.
“이 회사에서는 의견을 이렇게 내는구나.”
“대표의 말이 애매할 때, 이렇게 정리해서 결정하는구나.”
“갈등이 생기면 이 팀은 이런 방식으로 풀려고 하는구나.”
결국 첫 추종자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그대로 회사의 초기 문화로 굳어진다.
대표의 날 것 같은 성향이 그대로 복제되기보다는, 그 옆에서 그걸 현실에 맞게 다듬고 조율하는 첫 추종자의 태도가 조직의 기본값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첫 추종자를 한 번 정리해 보면, 대략 이런 사람에 가깝다.
추상적인 말을 듣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거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을 PPT, 노션, 로드맵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옮길 수 있는 사람
비전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동시에 리소스, 일정, 팀의 체력을 냉정하게 보는 사람
“이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 이쪽부터 만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사람(대표 개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식과 비전에 충성하는 사람
그래서 필요하면 대표에게도 “이건 우리 방향성과 어긋나는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뒷담화 대신 피드백을 선택하고
불평 대신 제안을 먼저 꺼내며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는 무언의 기준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첫 추종자로 있을 때, 회사는 초기에 좋은 관성을 얻는다.
플라톤, 마태, 아난다 같은 제자들이 혼자서만 위대했던 것은 아니다. 스승들은 끊임없이 대화했고, 질문을 받아줬고, 때로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리고 제자들은 묻고, 듣고, 기록하고, 정리했다. 이 둘의 관계가 맞물리면서 하나의 “사상 체계”가 탄생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첫 추종자를 만나는 건 운이지만, 그 사람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결국 대표의 준비 상태다.
대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는 단순하다.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짧은 메모
다이어그램
음성 녹음
노션 페이지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자꾸 꺼내는 습관을 들이는 것
정리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날것 그대로의 재료가 많을수록, 첫 추종자는 그걸 붙잡고 더 잘 해석하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다. 하지만 플라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토론할 수 있다.
우리는 부처를 만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난다가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하는 설법을 여전히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의 머릿속에는 말로 다 꺼내지 못한 비전과 질문들이 떠다닌다. 그 생각들이 공기 중에 흩어지느냐, 아니면 제품과 조직, 시장의 언어로 번역되느냐를 가르는 존재가 바로 첫 번째 추종자다.
스타트업 대표에게 첫 번째 추종자는 단순한 “첫 직원”이 아니다. 비전을 현실로 옮기는 첫 번째 가교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볼 만하다.
“나는 내 생각을 해석해 줄 첫 번째
추종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도 따라온다.
“나는 누군가의 첫 번째 추종자가 되어,
그 사람의 ‘원어’를 함께 번역해 보고 싶은가?”
이 두 질문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상을 가진 작은 팀,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남을 무언가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