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가까워야 한다’는 내면의 폭력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존재할 수 있는가? 생명의 데이터를 승계하는 DNA 자체가 불완전성을 추구하는데 과연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는가? 만약 DNA가 완벽을 추구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이미 공멸해서 지구 역사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불완전한 자신을 불투명한 미래에 기투(企投)한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말부터가 이미 이상하다.
완벽하다는 것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살아 있지 않다는 뜻이니까.
DNA는 생명의 설계도이지만, 그 설계도는 처음부터 ‘정확한 복사’보다 불완전한 복제, 즉 변이를 허용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진화는 실수, 우연, 실패를 재료로 해서만 진행된다. 만약 DNA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복사’를 목표로 했다면, 변화도, 적응도, 진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한 시대와 환경에 맞게 최적화되었다가, 환경이 조금만 바뀌면 집단 멸종의 한 줄 기록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누구나 결핍을 품고, 한계를 안고, 상처를 달고 세상에 나온다. 누구도 전부를 가질 수 없고, 누구도 모든 능력을 획득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이 불완전한 자신을 불투명한 미래에 기투(企投)하는 움직임, 그 자체가 된다. 어떤 이는 결핍을 힘으로 바꾸려 하고, 어떤 이는 상처를 예술로 바꾸려 하며, 어떤 이는 자신의 약점을 끌어안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수성으로 변환한다.
‘완벽한 인간’이란, 아마 더 이상 배울 것도, 바꿀 것도, 성장할 것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실수하지 않겠지만, 더 이상 질문하지도 않을 것이다. 실수하지 않는 대신, 놀라지도, 감동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불완전한 나’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부정하는 사회, 불완전한 타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시스템, 그리고 스스로를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며 몰아붙이는 내면의 폭력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오늘도 자신의 결핍을 안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계속 기투(企投)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