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인식전환 #8

인디게임 포용성 비판

by JuPD

인디게임은 인디게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존재했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메타버스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디게임을 만드는 사람부터 플레이하는 사람들까지 '인디'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명확성을 통해 오해와 논쟁을 이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런 불명확성으로 인한 모호함의 경계에서 철학적 비판을 통하여 느낌표를 던지고자 한다. 우선 기존 인디게임을 정의하던 형이하학적이고 절대적 기준을 버리고 형이상학적이고 상대적인 이념으로 정리하여 인식을 전환하고자 한다.


그럼 우리가 이제까지 인디게임을 규정하기 위해 선봉에 세웠던 단어들을 비판해 볼 시간이다. 그리고 '인디'가 가진 진짜 독립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간이다.




#8 인디게임 포용성 비판


나는 오랫동안 인디게임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다양성이라고 말해왔다.
다양성은 단지 “여러 취향이 공존한다”는 수준의 미덕이 아니다. 인디가 인디일 수 있는 이유—작은 팀, 제한된 자원, 불확실한 시장—그 불리함을 뚫고도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힘은 결국 다양성에서 나온다. 누가 봐도 정답인 길이 아니라, 각자 다른 배경과 다른 집착과 다른 결핍이 만들어내는 우회로가 인디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사건이, 내가 믿어온 그 가치에 작은 균열을 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Clair Obscur: Expedition 33)가 어떤 시상에서 수상했다가, 생성형 AI 사용이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주요 상이 철회되는 일이 있었다. 이 결정은 Indie Game Awards(IGA)가 FAQ에 명시한 ‘생성형 AI 사용 작품은 엄격히 자격 없음’ 규정을 근거로 진행됐다. “규정이 있었고, 동의했으니 끝”이라고 말하면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을 단지 “AI 찬반”의 문제로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 사건은 인디가 자주 외치는 구호—포용성—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인디가 그 포용성의 시험대에 오를 때 어떤 모순을 드러내는지 보여주는 표본처럼 보인다.



1. 포용성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결합의 방식’이다


‘포용성’이란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환영받고, 존중받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과 문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포용성을 너무 자주 감정의 문제로 오해한다. “나는 열린 사람이다”, “우리는 혐오하지 않는다” 같은 선언으로 포용성을 대체해 버린다.


내가 생각하는 포용성은 선언이 아니라 결합의 방식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이다.


나는 다양한 문화가 결합하는 형태를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해보고 싶다.


1) 기계적 결합
어떤 외력(규칙, 제도, 압력 등)에 의해 강제로 결합해 있는 상태다. 서로에게 영향을 거의 주지 않고 각자의 본성을 유지하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분리될 수 있다. 겉으로는 함께 있지만 실제로는 병렬로 존재할 뿐, 공동체 내부에서 창의적 교류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같이 있는 척”은 하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상태다.


2) 화학적 결합
겉보기에 가장 “조화로워” 보이지만 위험하다. 외력에 의해 각자의 정체성을 잃고, 공동체가 요구하는 단일한 규범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다양성은 구호로 남고, 실제로는 동질화가 강요된다.


3) 유기적 결합

정체성을 보존한 채, 내력으로 서로를 끌어안는다. 서로에게 필요한 창의성을 교류하며 공진화한다. 다름이 갈등이 되기도 하지만, 그 갈등을 관리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진짜 포용성은 3번, 유기적 결합에 가깝다. 포용성이란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다룰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 3T 이론이 보여주는 것: 관용은 도덕이 아니라 생산성의 기반이다


‘3T 포용지수’로 알려진 Global Creativity Index(GCI)는 이런 유기적 결합을 설명할 때 유용하다. 3T는 다음을 의미한다.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성(Tolerance)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관용성이 높은 곳일수록 재능이 모이고, 재능이 기술 혁신을 촉진하며, 그 결과 번영한다. 포용성은 “착한 선택”이기 이전에 “강한 생태를 만드는 선택”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관용성이 ‘좋은 사람 지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관용성은 공동체가 새로운 결합을 만들 수 있는 여지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표현, 새로운 툴체인, 새로운 유통 방식, 새로운 문화—그 낯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클수록, 창작 생태는 다양해지고 강해진다.


그런데 인디는 정말 관용적인가?
우리는 “관용”을 말하면서도, 때때로 특정 대상에 대해선 믿기 힘들 만큼 빠르게 등을 돌린다.



3. “규정 위반”으로 끝낼 수 없는 질문: 배제는 누구에게 유리한가


Indie Game Awards의 결정은 규정에 기반했다.
FAQ에도 “생성형 AI를 개발 과정에서 사용한 게임은 엄격히 자격 없음”이 명시돼 있었고, 그 규정에 따라 클레르 옵스퀴르의 GOTY와 Debut Game 등 주요 상이 철회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만약 우리의 목표가 “인디 생태를 더 윤리적으로 만들기”라면, 정말 이 방식의 배제가 최선일까?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에는 최소한 두 층이 섞여 있다.


윤리의 층: 저작권/동의 없는 학습 데이터, 노동의 가치 하락, 창작자 착취 가능성

정체성의 층: “인디는 인간 손맛이어야 한다”, “AI는 인디의 적이다” 같은 순혈주의적 정서


윤리의 층은 충분히 중요하다.
AI가 창작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시상이 “AI 사용작은 받지 않겠다”라고 선언할 수도 있다. 선택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체성의 층이 덧붙는 순간, 포용성은 급격히 약해진다.
‘윤리’가 ‘정체성’으로 변하는 순간, 공동체는 판단을 단순화한다. 그리고 단순화된 판단은 대개 약한 고리부터 끊어낸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역설을 본다.


엄격한 금지 규칙은, 윤리를 강화하기보다 투명성을 파괴할 수 있다.


왜냐하면 “AI를 한 번이라도 썼다”가 즉시 추방으로 이어진다면, 사람들은 더 조용히, 더 교묘하게 숨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동체는 AI 사용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정직한 사람만 손해 보는 생태’를 만든다.


포용성이 사라지는 순간은 종종 이런 형태로 온다. “선한 목적”이 “좋지 않은 구조”를 만들 때다.



4. 인디가 자주 범하는 ‘선한 배제’의 패턴: AI, Web3, 성인 콘텐츠


A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디 씬은 종종 다음의 것들을 “커뮤니티의 품격” 혹은 “인디의 순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분류하고 제거하려 한다.


AI

Web3

성인 콘텐츠

논쟁적인 장르(도박성, 정치성, 폭력성 등)


물론 이 영역들에는 실제 문제와 악용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저건 싫어”라고 말한다. 그 감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포용성은 “싫은 대상을 참아주는 미덕”이 아니다. 포용성은 싫은 대상을 다루는 기술이다. 싫다고 말하는 것과, 싫은 것을 다루기 위한 규칙을 설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감정이고, 후자는 구조다. 그리고 생태계를 만드는 건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5.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나는 인디가 앞으로 더 강해지려면, 포용성을 이렇게 재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용성은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결합을 위한 최소한의 설계 원칙이 필요하다. 나는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1) 규정의 기준은 ‘도구’가 아니라 ‘행위’가 되어야 한다


AI를 썼는가/안 썼는가가 아니라,


동의 없는 데이터로 만든 결과물을 최종 산출물로 사용했는가

노동을 대체하고도 이를 숨겼는가

소비자에게 인간 창작을 가장했는가


같은 착취/기만의 행위를 규제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2) 이분법 대신 ‘범주화’가 필요하다


AI는 하나가 아니다.


개발 초기의 임시 텍스처/레퍼런스/프로토타입

최종 아트/음성/시나리오 생성

접근성(장애 보조, 번역, QA 자동화)


이 모든 것을 “AI”로 묶고 한 번에 추방하는 순간, 규정은 현실을 잃는다.


3) 공개(Disclosure)는 처벌이 아니라 보호로 이어져야 한다


투명하게 밝히면 손해 보는 구조는, 결국 모두를 침묵하게 만든다. 공개는 “벌점”이 아니라 “검증의 시작점”이어야 한다.


4) ‘인간 창작’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별도 트랙을 만들 수 있다


“Human-made” 같은 인증 혹은 별도 부문은 배제를 줄이면서도 가치 기준을 분명히 할 수 있다. 포용성과 기준은 충돌만 하는 게 아니라, 설계에 따라 공존할 수 있다.


5) 공동체의 윤리는 ‘추방’이 아니라 ‘대화 가능한 긴장’으로 유지된다


유기적 결합이란 긴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관리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성장할수록 갈등은 늘어난다. 중요한 건 갈등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구조다.



6. 인디가 포용성을 잃는 순간: “다양성”이 스티커가 될 때


인디는 스스로를 다양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양하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우리는 쉽게 자기모순에 빠진다.


“우리는 다양성을 사랑해.”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다양성 말고.”
“그 기술은 빼고.”
“그 문화는 제외.”
“그 장르는 불쾌.”
“그 유통은 더러워.”
“그 돈 냄새는 싫어.”


이렇게 되면 다양성은 살아있는 가치가 아니라, 행사장 벽면에 붙이는 스티커가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인디는 화학적 결합을 시작한다.


“다양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동질화.
“윤리”라는 말로 포장된 정체성 정치.
“포용”이라는 말로 포장된 추방.



7. 결론: 포용성은 ‘불편함을 품는 능력’이다


나는 인디가 AI를 찬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Web3를 미화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성인 콘텐츠를 무조건 옹호하자고도 말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인디가 진짜로 포용성을 말한다면, 인디는 논쟁적인 것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혐오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대신 질문해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어떤 규칙이 착취를 막고 창작을 보호하는가?

무엇이 투명성을 높이고, 무엇이 숨김을 조장하는가?

어떻게 하면 서로의 정체성을 보존한 채 공진화할 수 있는가?


포용성은 “기분 좋은 다양성”을 사랑하는 능력이 아니다. 포용성은 “기분 나쁜 다양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인디게임은 포용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AI, Web3, 성인 콘텐츠—그 모든 것을 무조건 끌어안자는 말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 대해 혐오로 결론 내리지 않고, 유기적 결합의 규칙을 설계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되자는 말이다.


다양성은 결과다.
포용성은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인디의 미래는, 이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