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저항정신 비판
인디게임은 인디게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존재했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메타버스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디게임을 만드는 사람부터 플레이하는 사람들까지 '인디'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명확성을 통해 오해와 논쟁을 이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런 불명확성으로 인한 모호함의 경계에서 철학적 비판을 통하여 느낌표를 던지고자 한다. 우선 기존 인디게임을 정의하던 형이하학적이고 절대적 기준을 버리고 형이상학적이고 상대적인 이념으로 정리하여 인식을 전환하고자 한다.
그럼 우리가 이제까지 인디게임을 규정하기 위해 선봉에 세웠던 단어들을 비판해 볼 시간이다. 그리고 '인디'가 가진 진짜 독립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간이다.
인디는 해적선이다. 이 글은 개인의 부활과 저항의 창조성에 대한 글이다.
인디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규모가 작은 게임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과정, 그리고 지배 질서에 균열을 내는 창조적 저항의 행위다. 나는 인디게임을 바라볼 때마다, 그것이 하나의 작은 산업이 아니라 “개인이 이 세계와 싸우기 위해 선택한 방식”처럼 느껴진다.
2019년 11월, <저니(Journey)>를 만든 댓게임컴퍼니의 제노바 첸 대표는 디스이즈게임과의 인터뷰에서 인디를 이렇게 정의했다.
“유니크하고, 진정 독립되어 있고,
리스크를 지고 가는 것이 인디다.”
“인디는 해적선 같아야 한다.”
그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 말은 인디라는 세계를 떠받치는 정신의 뿌리를 정확하게 짚어낸 문장이다.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 바다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해적들은 스스로의 깃발을 올리고 출항한다. 부유한 왕의 안전한 항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향해 대가를 감수하고 나아가는 존재들—
그것이 바로 인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해적선이 사라져 버린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에게 “정체성”이라는 깃발을 쥐어주기보다, “집단 속에서의 자리”를 주입하며 살아가게 한다.
서양은 오래전부터 개인의 정체성 형성이 집단의 출발점이라고 믿어왔다. 개인을 먼저 세우고, 그 개인이 서로 모여 집단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반대로 동양은 “집단이 없는 개인”을 상상하지 않는다. 개인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집단 내부의 관계망 속에서만 설명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서양에서는 개인의 자기실현이 집단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여기는 반면, 동양은 여전히 계층과 위계라는 틀을 벗어난 자기실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 독립적으로 빛나는 능력은 지배계층이 아닌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독특한 현상이 있다. 정부기관, 기업, 브랜드, 조직이 마치 “한 명의 인간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정작 그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개별적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한다.
집단이 인격을 갖고, 개인은 부속품으로 변한다. 우리는 하나의 실체가 없는 유령 같은 집단과 싸우면서도 항상 패배해 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령은 이름을 가질 수 없고, 정체성이 없으니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실 특정한 집단이 아니다. 바로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회적 관념과 내면화된 복종의 습관이다.
저항은 집단의 이름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역사가 증명하듯, 항상 한 개인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혁명’이 거대한 무리가 한꺼번에 들고일어나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그 무리를 움직인 것은 군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개인들”이다.
개인이 없으면 저항할 힘도 없다. 집단 속 구성요소, 부속품, 톱니바퀴로 존재하는 한 누구도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집단이 부여한 역할만 반복하게 된다.
저항의 첫발은 외부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나는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정체성을 잃은 개인은 언제나 지배자에게 가장 다루기 쉬운 존재가 된다. 지배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순종적인 시민도, 기술을 가진 인재도 아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서로 연대하는 것이다.
개인이 깨어나고,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지배 질서는 균열되고, 혁명은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제노바 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인디는 해적선 같아야 한다.”
해적선은 무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항로를 그리는 존재를 뜻한다. 왕의 보호도 없고, 규칙을 보장해 주는 플랫폼도 없으며,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주는 안전망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해적들은 가장 먼 세계를 보았고 가장 거대한 발견을 이뤄냈다.
인디 개발자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이 원하는 트렌드에 복종하지 않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맞춰 자신을 왜곡하지 않으며
펀딩 구조와 유통 구조가 부과하는 길들임에 저항하고
스스로의 언어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한다.
그렇기에 인디의 창작물은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본질적으로 아름답다.
그 안에는 플랫폼이 요구하는 ‘정답’이 아니라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과 세계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적선의 항해는 언제나 위험하다. 그러나 땅에 남아 안전과 복종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인디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시점에 있다. AI가 모든 분야를 뒤흔들고, 플랫폼 경제가 계급 구조를 고착화하고, 집단이 개인을 지워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인디라는 말은 더 이상 게임 개발의 한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부활, 그리고 저항의 선언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시작은 언제나 같다.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집단이 부여한 역할이 아닌 나 자신의 욕망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규정해야 한다. 그렇게 독립된 개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연대할 때 비로소 새로운 혁명이 시작된다.
창조의 힘은 저항에서 나온다. 저항은 개인의 발견에서 나온다. 그리고 개인의 발견은, 우리가 다시 해적선의 깃발을 들고 세상을 향해 출항하려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인디는 산업의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주체적인 인간이 되는 것, 그리고 지배 질서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행위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고, 아무도 보장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그 세계에서
나 자신의 깃발을 들고 해적선처럼 떠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새로운 창조를 하고, 새로운 혁명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