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훈 Hoon Lee Oct 25. 2016

전주에서 스탠포드까지의 여정기

"학벌/커리어 집착쟁이가.. 꿈과 자유를 찾게된 이야기입니다"

2016년 7월 10일, MBA 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 남겼던 노트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열흘 남았다. 자연스레  인생을   뒤돌아본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항상 강한 상대가 나타났다나는  상대를  번도 한 방에 무찌른 적이 없다. 신나게 얻어 터지다가 막판에 겨우 이겨냈다평화가 찾아올만 하면  강한 상대가 나타났다다시 신나게 맞다가 막판에 이겨냈다 과정이 반복되었다. “   약한 상대가 나타나 독자가 편하게 감상하게 해주면 안되나?” 안타까운 바램으로 읽던 만화책  법칙은 인생에 똑같이 적용되었다
 

1막: 전주에서 서울까지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 입학) 

나는 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시절, 지방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나에겐 컴플렉스였다방학마다 서울 이모집에 놀러갔는데, 그 곳에서 만난 서울/경기권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팔방미인 같았다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원도 다니고, PC 통신에 글도 쓰고외국도 나갔다 오고키도 크고.. 학교도 전주 대비 선진화 되어있고...  나는 그들 대비 무색무취하고, 경쟁력 낮은 학생같았다. 그래서, 대학만큼은 서울에 있는 가장 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 이를 위해, 전주에서 붙잡을  있는  교과서와 문제집그리고 모의고사 시험 뿐이었다.
 
그렇다고, 노력한 만큼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지는 않았다모의고사의 경우머리좋은 학생이 노력하는 학생보다 점수가  나오는 구조였는데, 나는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생활지도부에도 머리좋다” 라는 말은 단  번도 없었고, “엄청나게 성실하다” 라는 표현만 가득했었다개미형 학생이었던 나는배짱이 & 천재형 친구들이 부러웠다
                                                                                 
수능을 보았고운좋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그런데 입학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사실 경영대가 가고 싶었다.이유는 커트라인이  높고 인기학과였기 때문이었다. 가장 입학하기 어렵다는 곳에 가서 우월함을 느껴보고 싶었다그래서 다들 대학 1학년을  즐길 전과 준비를 위해 고등학교 이상으로 공부하였다그렇게 2년을 공부를  후에 경영대로 전과를 하였다


2막: 더 높은 곳을 향한 쉼없는, 끝없는 투쟁 (대학교 ~ 취업) 

그런데경영대로 전과를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당시는 와국계 회사 (컨설팅투자은행에서 대학생 인턴 선발을 늘려가던 시기였다 곳에서 인턴을 했다는 것은 나는  달라 상징하는 뱃지 같았다. 나는  뱃지가 달고 싶었다그래서 온갖 회사를을  지원했지만 (Bain, BCG, Monitor, AT Kearney, KPMG, Deloitte, Accenture, ABN AMRO, Leman Brothers) 모조리  떨어졌다그리고, 그 당시  다른 필수코스였던 경영대 동아리들에 지원했지만역시나  떨어졌다. (SMIC, MCSA  떨어졌다). 
 
객관적으로  보다 준비된 친구들이 많았다대학 입학 전부터 영어를 어느정도 마스터하고내가 전과를 준비하던 1학년 시절 어학연수도 다녀오고인턴을 이미 하나 정도 마친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포기하는 법은 잘 몰랐다그래서 계속 지원해서결국당시 대학생 인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여어떻게 인턴을 뽑아야 하는지 잘 몰랐던 국내 회사 KT 마케팅  인턴으로 들어갔고신생 연합 경영 동아리 S& 합격하게 되었다. KT 면접에서 "뽑아만 주시면 시키는 것 다 하고 진짜 열심히 하겠다" 라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S&D 면접에서  시간을 평생 바치겠습니다” 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 땐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인턴을 마치고동아리에 입회했지만, 역시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수능 영어 우쭐하고 살았던 내가 처음으로 실전 영어의 장벽과 마주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동아리 세션은 1주일에 1, 6시간 동안 하버드 비즈니스 케이스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6시간 세션   3시간은 영어로만 진행되었는데외고를 나온 형들과외국에서 살다 온 누나 사이에서 나는 정말 꿀먹은 벙어리였다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아분노의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다그런데영어는 열심히 한다고 단시간에 정복할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결국영어 세션은 포기하고일주일 노력해서 잘할  있는 길인 한국말 세션에서 잘하기 선택했다독하게 business case  연구하고분석자료를 치밀하게 준비해서, 물량으로 토론을 압살하려는 노력을 반복하였다영어세션에선 벙어리였지만한글세션에서 한풀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4 간 동아리를 했다그리고 취업 시즌이 다가왔다나는 당시 가장 입사하기 어렵고소수만 뽑고뭔가 있어 보였던 골드만삭스 IBD  취업하고 싶었다그래서 IBD 인턴을 중간중간 지원했지만영어 때문에 모두 떨어졌다. IBD  영어가 native 급이어야하는데 영어는 전주에서 50 이상의 선생님들께 배운 것이 전부였고 마저도 대학 입학  놓아버렸었다그래서당시 외국계 투자은행 IBD 만큼의 명성이 있으면서도영어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던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지원해서 좋게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BCG 라는 좋은 회사에 입사했지만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평가를 받았는데, 나는 1 (최고 등급)이 너무 받고 싶었다. “나는  달라”  상징하는 뱃지같아 보였기 때문이다하지만, 1점을 받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특히해외 전문가 인터뷰를 영어로 많이 했어야 했는데나는 영어로 하는 인터뷰는 정말 잼병이었다영어로 물어보는 것도영어를 알아듣고 정리하는 것도 힘들었다그래서찾은 나만의 생존법은 인터뷰 전에 질문할 주제에 대해 정말 많이 찾아보고 연구하고 상상해서답을90% 정해놓고 인터뷰어에게 확인만 받자” 그래서다른 친구들은 인터뷰어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아서 정리할 때에나는 구글링을 하여 관련 기사자료를 연구하고상상해보고다시 찾아보고, CEO 인터뷰 클립을 찾아서 돌려보고  돌려보며영어가 부족한부분을 메꾸웠다그리고, 최대한 영어 프로젝트를 피하고정보력/추론력상상력이 중요한 케이스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3~4년을 버티다, 이력서에  다른 뱃지를 달기 위해 MBA  준비하였다. HBS  가고 싶었다당시 1 학교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준비가 부족하여  번째  MBA 도전 시엔 HBS, Stanford  지원하지 못하고토플 커트라인이 낮은 학교들에 지원하였다컨설팅 메리트를 받으며 MBA 서류는 통과하고 인터뷰까지 무난하게 갔지만인터뷰에서 대패했다. MBA 인터뷰는 100%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토플 점수도 낮았던 차에영어로 인터뷰 해야하는 상황에 완벽히 주늑들면서, 4 학교  4  학교 모두에서 인터뷰  불합격 통보를 받아야 했다
 

3막 1장. 나를 바꾼 질문.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

그런데 번째 MBA 준비 과정에서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스탠포드에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마음이  이유는스탠포드 MBA  명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Essay 1 What matters most to you 라는 질문에 마음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기있는 직장을 찾아 다니는 인생 보다는내가 진짜 좋아하는 삶을 찾아보라는 의도에서 던진  질문" 나는 이상하게 끌렸고눈을  없었다그래서 나머지 5 학교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스탠포드에만 집중하였다.

하지만 스탠포드 역시 인터뷰  아쉽게 떨어졌다영어 인터뷰의 장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다른 학교들 역시 준비를 전혀 못해서 인지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솔직히 조금 쪽팔렸다남들은  번에 가는 MBA , 2 도전해서 실패한 것이 민망했다. BCG 형/누나들이 “쟤 이제 어떻게하냐...” 진심 걱정해주는데동정을 받는 것 같아 엄청 쪽팔렸던 기억이 난다.  후배들에겐 진짜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스탠포드 MBA  가고 싶었다스탠포드 Essay  담았던 인생을 진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기 위한 시작점이었던 스탠포드 MBA   가고 싶었다물론 스탠포드 MBA 라는 타이틀에도 욕심도 있었다그래서, 엄청난 쪽팔림을 무릅쓰고, MBA 삼수스탠포드 재수에 도전하게 되었다.

스탠포드 재지원 essay  어렵지 않았다. “저는 작년 Essay  작성한 삶을 진짜 살아보고 싶습니다그렇게 세상을  좋은 곳으로바꾸고 싶습니다진심입니다. 하지만, 그 삶을 살기 위해 저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스탠포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기적적으로인터뷰 인비테이션을 다시 받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영어로 하고 나오기 위한 최선의 준비를 했다 진심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고내가 구사할  있는 영어로 전환해보고, back-up 자료도 제작하며 준비를 했다
 
막상 인터뷰에 들어가니 머리가 다시 하얘졌다준비한 멘트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내 마음 속에 분명히 있었다.쪽팔렸지만부족한 영어로 더듬더듬 최선을 다해 이야기 나갔다얼마나 엉망인 영어로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스스로도 느낄 있었다그래도 끝까지 이야기 했다.  인터뷰가 인생 최초의 후회가 남지 않는 영어 인터뷰” 였다하늘에 결과를 맡겼다그리고 운좋게 합격했다
 

3막 2장: 더 넓은 세상과의 소통의 시작

그렇게 스탠포드에 입학했지만여전히이제는 ..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우선 MBA 동기 400  영어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친구는 5~10명 내외에 불과했다그런데 곳은 수업 참여가 너무나 중요한 곳이었다수업은 보통 1시간 45 진행되었는데, 60 정원의 수업에서 모두가  마디 씩 참여하고, 교수님이 지휘자처럼 coordinate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참여가극도로 저조하면 LP (Low Pass, 한국으로 말하자면 C-)  받게 되는데, LP  받은 과목이 20~30% 정도 되면 퇴학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세상을 바꾸는 꿈이고 나발이고일단  곳에서 살아 남기위해 수업  2~3마디 하려고 하루에 14시간 씩 준비했다. 번째 쿼터  (스탠포드 MBA  학기제가 아닌 쿼터제로 운영되며, 4학기 졸업이 아닌 6 쿼터제로 구성되어 있다하루에 수업이 3~4 있었는데수업  3~4시간  수업을 준비해갔다수업  10마디 정도 적어가고  외워갔는데 (랩퍼의 마음으로 10마디  적었다), 수업 전개가 너무 빠르고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면  마디도 하지 못하고 수업을 나왔다
 
그런데 첫 번째 쿼터 수업  6명이서 듣는 Leadership Lap 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어느날 나에게 이야기 해줬다


친구들: “6명이서 진행하는 수업에서 듣는  생각이  좋고 진심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온다그런데  60 수업에서는 말을 잘 안하니?”

나: “59명에게 피해를 안주려면  해야 하는데나는  하려면 준비가 완벽해야해준비가 완벽하지 못할 때에는 말을 못하겠어

친구들: “그러면 수업에서 잘한다는 것의 의미가 뭐야?”

나. “…”

친구들: “59 친구들은네가  이야기 하는  보다는네가 어떤 사람이고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어해너에게  해야한다고 압박을 주는 것은  혼자밖에 없어다른 친구들은 네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정답을 이야기 하는  보다는 생각을 궁금해 네가 네 소신과 경험을 이야기 하는데잘하고 못하고가 있을까? 정답과 오답이 있을까?”

나: “.. .

친구들: “6 수업 시에는 네가 준비 없이도 이야기 하는거 같은데우리는 그 이야기가  좋아. 60 수업에서도 지금처럼만 해봐.우리는 너에 대한 책임감이 있으니다음 수업에서 이야기 안하고 있으면 문자보내서 압박할꺼야


 친구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수업  1~2 마디를 어떻게든 했다. 1~2마디를 하다 보니내가하는 말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기존에는 “LP 받지 않기 위해” 이야기 했다면수업 참여가 조금 늘어난 시점 부터는 친구들에게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때가 남들보다  해야 한다 부담을 내려놓은  인생의  번째 시점이었다나는 여기서 남들보다 잘하기 어려웠다.그리고 이곳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그닥 중요하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곳이었다 
 
그렇게 힘겨웠던 1쿼터가 끝나가던 무렵성파라는 나의 동기가 재밌는 자극을 던졌다. “스탠포드 학부 생들을 튜터로 해서한국에 영어서비스를 만들어 보지 않을래?” 
 

4막 1장: 사업, 새로운 도전 

처음엔, “이 녀석 스타트업  도졌나” 싶었는데시간이 흐를수록 영어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마음이 갔다성파가  서비스를 떠올리게  계기도 공감이 갔고영어를 피하며 살아온  과거도 생각이 났다

돌이켜 보면 인생은 영어를 피해다른 필살기를 연마하며 버텨온 인생이었다사실 피하기만  것은 아니었다영어를 연습하기 위한 시도를  많이 했지만나에게 맞는 영어교육을 찾지는 못하였다어렸을 적엔 전주에 좋은 학원이 많지 않았고서울에 있을 비즈니스 토픽에 대해 이야기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그런데 이상 영어를 피해 사는것도 싫었고 막상 여기까지 왔는데 다양한 국가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고 친구들에게  생각을 전해주고 싶기도 했다이젠 영어를 피하고 안피하고의 frame 에서 벗어나 곳에 모인 다양한 친구들을  깊이 알아가고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영어가  필요함이 느껴졌다그래서 영어를 마스터하기 위해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영어공부를 돕기 위해링글을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링글을 시작하며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처음엔 스탠포드 학생들과 시작했지만우연한 기회에 하버드 튜터들과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친구들과 계속 대화를 하다보니  친구들에게서 나와 유사한 고뇌와 그리고 열정을 느낄  있었다이들은 미래의 글로벌 리더로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동시에,  이들에겐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세상을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순수한 열정 공존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서울대와는 비교할  없는 좋은 환경과 기회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더 나은 세계 구현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며, 엄청나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Google Calendar  우연히  적이 있는데, 30 단위로 엄청나게 많은 일정들이 빡빡히 채워져 있었다왠만한 직장인들보다  바쁜 일정표였다. 이렇게 많은 스트레르를 받으며 바쁘게 사는 와중에 링글 수업을 책임감있게 리드하고그렇게  돈으로 학자금을 충당해 나가는 이 친구들이 대단하면서도 고맙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나와 나이 차가 10 넘게 났지만꿈과 고민이 비슷해서인지 대화가  통했고마음은 더욱  통했다특히스타트업을 주제로  세션 (how to start/grow a start-up)에서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링글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튜터에게 설명해줬는데갑자기  친구가 눈물을 글썽이며본인도 본인의 길을 어떻게 개척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좋은 이야기를 공유해줘서 고맙다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이 성장할  있는 플랫폼으로서 링글을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이 생겼다동시에 친구들이라면한국에 사는 많은 분들의 “함께 성장 파트너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4막 2장: Connecting the dots.
 
MBA 2년 간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달렸다. 그리고, 2  MBA 졸업을 하고이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우회했다고 생각했던 지점들이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전주에 살았던 삶이   스탠포드/팔로알토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City Life  부족한   팔로알토는 나에겐 고향처럼너무 편했다. 이 곳에서의 2년의 삶을 너무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사회복지학과 입학은세상을 돈이 아닌 사람 & 삶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BCG  나에게 다양한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  다른 사람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을 알려주었고덕분에 Ringle 교재를 재밌게쓰고 있다
MBA 삼수스탠포드 재수는나에게 why MBA  why Stanford  2 이상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고사업 동지 역시 만나게도 해주었다.
그리고비록 어렸을  영어권 국가에 살지 못해 영어를 컴플렉스로 느끼며 살아왔지만덕분에 나와 유사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위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거의 일들이 이어져 있음이 신기하다 선이 직선이 아닌 굴곡이 많은 이지만 굴곡이 지금의 나를 만든  같아 참 다행이다.
 
다시금 새로운 어마무시한 상대가  앞에 보인다. 그런데 이 상대과 과거의 상대와는 다르다. 이미 사업기반을 갖춘 멋진 직장에 들어가 비즈니스를 성장시켜 나가는 일이 아닌고객이 0명인 밑바닥부터 시작해 나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승진하기 위한 또 다른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팀과 머리를 맞대며 우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하는 것도 다르다. 다행히, 스탠포드/실리콘밸리에서의 2년은, 검소한 삶을 살게 해주었고, 세상의 성공기준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구현해 나가는 삶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다. 그 세상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런 세상들이 서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앞으로 우리 인생에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MBA 동기들을 모르고, 우리 튜터들을 몰랐다면... 내 삶은 부유했을 수는 있지만 뜻깊은 추억으로 채워지지는 못헀을 것 같다.
내가그리고 우리 팀이한국 & 아시아 사람들에게  넓은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길 희망한다. 그렇게 세상을 의미있게 바꾸는 서비스가 되길 소망한다.

큰 꿈을 품고, 새로운 서비스를 안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스탠포드 MBA/실리콘밸리에 살면서 느낀 이곳의 차별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