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EST는 어려워
두 번이나 담임이 바뀐 SDC반에 새로운 담임 A가 왔다. A는 다정하고 사려가 깊었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마다 주제를 정해서 아이들의 의견을 서로 나누도록 하고 집단 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활동들을 준비했다. 그는 특수교육과 관련하여 석사과정을 밟고 있기도 했다.
A가 SDC의 담임으로 오게 된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전의 담임들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차이였다. 보조교사에 불과한 내가 이 학급의 학생들에게 작은 변화라도 줄 수 있음에 뿌듯했고 기뻤다.
이전의 담임인 M에 대해 내가 취한 행동은 사실 미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처신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교사의 학급운영은 교장이 평가하가 판단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들이, 특별히 보조교사가 개입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제껏 경험한 많은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권한과 책임에 매우 민감하고 가능하면 이 권한을 잘 쓰지 않는 쪽으로 행동하는 편이다. 심지어는 교장도 교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서로 어느 정도의 선만 지켜주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분위기이다.
새로 부임한 교사 A가 수학을 가르칠 때였다. 그는 아주 간단한 분수문제를 두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교사가, 그것도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이 그 간단한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확신이 섰다. 나는 미국의 교단에서 교사의 역할을 잘할 수 있다.
미국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 가정 먼저 거쳐야 하는 시험이 있다. 그것은 CBEST라고 불리는 시험인데 영어 쓰기와 수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CBEST를 통과하면 일단 기간제 교사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수학은 어렵지 않게 한 번만에 통과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 작문이었다. 주제를 읽고 나의 의견을 담아 작문을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두 번이나 떨어지고 말았다. 세 번째 시험을 봐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 길이 아니면 안 되었다. 한국의 교단을 떠나며 이미 불살라 버린 다리는 다시 건널 수도 없었다.
운명에 등을 떠밀리다시피 시험 등록을 하고는 세 번째 CBEST 시험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