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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학예회 음악을 바꾼 날

소다팝보다는 모두가 함께 무대에 서는 게 더 중요해서

by Seunghwan Connor Jeon

1. 설렘으로 시작한 준비,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올해 연말 학예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음악이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소다팝'이었다. 아이들이 워낙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데다 비트도 재밌고, 동작도 역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서, 머릿속으로만 떠올려도 “와, 이거 무대에서 하면 진짜 귀엽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도 음악을 들려주자마자 어찌나 신나들 하는지 반응이 좋았다. 몸이 절로 들썩이고, “선생님, 이 부분에서 이렇게 해도 돼요?” 하며 자기 아이디어를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아, 올해 연말 무대는 이걸로 가면 정말 대박이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 한 통의 메시지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한 학부모로부터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대략 이런 뜻이었다. “선생님, 그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음악이 우리 가족에겐 조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이 음악을 계속 사용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이번 공연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문자를 읽는 순간, 솔직히 말하면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나도 나름의 그림을 그려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도 갔다. 제목에 들어 있는 ‘demon’이라는 단어, 문화적·종교적 배경에 따라 충분히 불편할 수 있다. 특별히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같은 문화적 이벤트도 각자의 신념과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3. 나의 첫 감정: 솔직히 말하면, 아쉬움과 씁쓸함

메시지를 처음 읽고 난 뒤, 내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걸 바꿔야 하나…’ 하는 아쉬움. ‘굳이 참여를 안 하겠다는 말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조금의 씁쓸함. 그리고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생기겠지’라는 현실적인 체념 비슷한 것. 그래도 나는 꽤 빨리 결론을 내렸다. “이건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이 지점에서 마음이 조금 정리되었다. 나에게 연말 학예회의 핵심은 “우리 반 아이들이 빠짐없이 다 같이 무대 위에 서 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4. 그래서 나는 바로 이렇게 답장했다

그래서 나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바로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그렇다면 그 음악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예전에 사용했던 음악으로 바꾸겠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학부모님의 답장은 역시 짧았지만 빨랐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아이들도 공연에 참여하겠습니다.” 그 순간 약간 허탈함과 함께,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다시 음악을 편집하고, 동작도 조정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설명도 해야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분명 추가 노동이 생긴 셈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 이게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5.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

이런 상황을 겪으면 늘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그럼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나?” “한 가정의 신념 때문에 전체를 바꾸는 게 맞는가?” 솔직히 말해서, 정답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 상황마다, 맥락마다, 학교마다 다르게 결정될 수도 있다.

다만 이번 경우, 음악을 바꾸는 것이 아이들의 안전이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미 해 본 적 있는 음악도 교육적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선택지였고 무엇보다도 한 아이가 “나는 빠지고 싶다”라고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이 세 가지를 놓고 봤을 때, 나는 “바꾸는 쪽이 더 낫다”라고 판단했다. 누군가 내게 “그래도 좀 속상하지 않냐”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조금은 그렇다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교사로서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장면은, 내가 선택한 어떤 요소 때문에 아이 한 명이 스스로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이다.


6. 미국 학교, 그리고 ‘모두의 무대’라는 목표

미국 공립학교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키워드는 아마 “다양성”과 “포용”일 것이다. 각자의 언어, 문화, 종교, 가족의 역사, 상처와 믿음이 다르다. 그 속에서 교사는 매번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싶은 ‘멋진 그림’보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무대 위에서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 무대는 결국, 선생님의 작품이 아니라 아이들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7. 음악이 뭐든, 결국 무대를 채우는 건 아이들

연말 공연 날, 아마 우리는 다시 예전에 했던 곡을 틀고, 아이들은 제각각 약간씩 다른 박자로, 하지만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무대 위를 채우겠지. 누군가는 동작을 반 박자 늦게 따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무대 위에서 관객석에 있는 부모를 찾느라 한동안 안무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모든 모습들이, 교사인 내 눈에는 다 담고 싶을 만큼 소중하다. 어떤 음악으로, 어떻게 공연을 하든, 아이들은 늘 귀엽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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