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빌런 1] 매일이 교통사고

by 페퍼김

12년 전 신입사원 시절


팀에는 여섯 살 많은 사수가 있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배려심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쪼잔하지도 않았다.


좋게 이야기하면 자기 할 일은 똑 부러지는 스타일, 그러나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


매일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혹시나 사수의 마음을 그르칠까 긴장하며 업무 했다.



다행히 사수는 나의 그런 애티튜드를 썩 좋아했고,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다만, 그런 사수에게는 직장인으로서 치명적인 큰 병이 있었다.


바로 지각의 병



사수는 일주일에 약 세 번 정도 지각을 했다.


물론 지각하지 않는 날이라고 해서 10분 전, 아니 5분 전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간신히 58분, 59분의 커트라인이었다.


사수는 58분에 도착하는 날이면, 매우 뿌듯한 표정으로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날을 제외하면 대개 5분, 10분 정도의 지각이었고 간혹 30분씩 늦기도 하였다.


사수의 집은 차를 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지만 항상 늦었다.




처음엔 간단한 부탁이었다.


'페퍼야, 나 금방 도착하니까 미리 내 컴퓨터 좀 켜줘'


나는 그런 지령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컴퓨터로 가서 몸을 최대한 쓰지 않은 채 전원을 눌렀다.



'페퍼야, 컴퓨터만 켜면 어떡해, 암호 치고 로그인을 해줘, 그리고 사내 인트라넷을 켜놔, 메일도 하나 열어놔'


나는 매일매일 진화하며 지령을 수행했고, 최대한 팀장님의 눈을 피해 임무를 완수했다.



그렇게 사수의 일주일 3일 지각 패턴이 공고해지던 어느 날,


팀장님이 이른 아침 회의를 소집했고 9시이던 출근시간, 바로 10분 후에 회의실에서 모이기로 했다.


나는 그 소식을 사수에게 알렸고, 사수는 그날 처음 '교통사고'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것이 교통사고 빌런의 시작이었다.


사수는 지각이 몸에 밴 사람이었지만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보는 호기심이 남들보다 많았을 뿐이다.


햇살이 눈부시면 그 순간이 아까워서 최대한 천천히 걸었고,


벚꽃이 흐드러진 날이면 사진도 찍고 꽃잎을 손바닥에 놓고 만져보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행복했고, 햇살이 눈부시면 뚫어져라 쳐다보다 눈물을 맺었다.


그렇게 호기심을 충족하는 사이, 팀장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어느 날, 티타임을 하며 사수에게 물었다.


'교통사고 말고 다른 게 낫지 않아요?'



사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핑계 댈 게 많지 않아...'



나는 답답한 마음에 이야기했다.


'배탈도 있고 아니면, 감기도 있고...'



사수는 말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는 교통사고가 낫잖아'



나는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수가 읊조렸다.


'그리고 배탈이나 감기는 계속 연기해야 되잖아...'




2개월, 3개월이 지나며 사수의 교통사고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 사수가 팀장님께 교통사고가 나서 조금 지각한다는 사실을 밝힌 후,


참다못한 팀장님이 전화 너머로 일갈했다.


'너는 매일 교통사고냐? 내가 세어보니 석 달 동안 너 교통사고 난 회수가 20번이다'


전화가 끊기고 사무실엔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15분쯤 지났을까, 사수가 헐레벌떡이며 사무실에 도착했다.


씩씩대며 어떻게 교통사고가 났는지를 브리핑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팀장님은 마지막 경고라고, 한 번만 더 지각하면 인사팀에 근태불량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다.


고개를 떨구고 우울해하는 사수의 모습을 보며, 팀장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팀장님은 화가 덜 삭힌 듯 내게


'페퍼 너도 한 번만 더 몰래 인트라넷 켜고 메일 열어두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다음 날, 사수는 업무시각 10분 전에 도착했고,


그 다음날, 사수는 또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12년이 지나고, 사수는 결혼을 해서 예쁜 아이를 낳았고,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고, 나는 이직하여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수는 그동안 누적 횟수로만 보면 사수는 약 500번 이상 교통사고가 났다.


본인이 다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출근시간에만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신기하게 퇴근시간에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젠 사수의 출근길 교통사고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철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부지런해진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이 사라진 것인지, 이제는 시간을 잘 맞춘다는 소문이다.



가끔은 눈치 보며 역정 냈던 팀장님이 보고 싶은 것인지,


사수는 아직도 그렇게 팀장님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렇게 진심으로 역정내주던 팀장님은 그곳에 없다.


가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늦게 오는 와중에도 꽃잎을 주워다 주며 다이어리에 끼워두라던


사수가 생각난다.




하지만 어찌 됐건 지각은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