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단히 아름답지만 수상쩍고 소름 끼치는 마성적인 여자가 꼭 한 명씩 등장한다는 것. 대표작인 <만>의 경우 아름다운 미모와 요사스러운 화술로 한 부부를 자신의 신도처럼 만들어 파멸로 이끄는 여성이 등장하고, <살인의 방> 등의 단편에는, 마치 암사마귀나 거미처럼 대단히 위험해 보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성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이토 준지의 만화책 속 ‘토미에’를 떠올리면 된다. 물론 토미에는 결국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반면, 다니자키의 여성 인물들은 절대 그런 법이 없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다니자키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은 궁금증이 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니자키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마쓰코에게 쓴 편지를 보고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다.
“평생 당신을 모실 수만 있다면, 설령 그로 인해 몸을 망친다고 해도 그것이 저에게는 무상의 행복입니다. (...) 오늘부터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1932년 9월 2일 준이치로”
“주인님, 부디 부디 부탁드리옵니다.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어젯밤에는 돌아와서도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사진 앞에 절을 하기도 하고 손을 합장하기도 하면서 화가 풀리시기를 열심히 빌었습니다. 잠이 들어서도 이렇게 노려보시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무서웠습니다. 정말로 어젯밤이야말로 울어버렸습니다. 보잘것없는 저 같은 사람이라도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자비로운 분이시니 아무쪼록 용서하여주십시오. (...) 이런 주인님이라면 설령 저를 베어 죽이신다 해도 제가 바라던 바일 것입니다. 연애라고 하기보다는 보다 헌신적인, 말하자면 종교적인 감정에 가까운 숭배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서양의 소설에는 남자 위에 군림하는 위대한 여성이 나오지마는 일본에 당신과 같은 분이 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 결코 단연코 분에 넘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니 옆에 두시고 차 시중드는 아이처럼 생각하시고 써주십시오. 마음에 드시지 않을 때는 아주 못살게 구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제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말씀하실까봐 그것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 주인님께 시녀 1932년 10월 7일 준이치로”
“아씨님 부디 일전의 실례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미 뼈 속 깊이까지 당신의 충실한 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만 옛날 버릇이 나와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무례한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조심하겠습니다만, 또다시 하인의 신분을 망각할 시에는 그때마다 호되게 나무라시어 조금이라도 건방진 마음을 먹지 않도록 가르쳐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 아씨님 부디 화를 풀어주세요. 그 후로 매일같이 밤마다 사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고를 쓰는 것도 당신을 모시는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당신이 안 계실 동안 조금이라도 일을 해두려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 17일 밤”
*출처: 정순희 편역, <연애의 기술>, 글빛
다시 말하지만 소설 속 한 대목이 아니라 실제 연인에게 써서 보냈던 편지이다. 그러니까 성적 취향이나 판타지가 그런 방향이었던 것이다. 전문용어로 도미넌트 어쩌구 한다던가.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그 특유의(?) 느낌으로 인해 아주 대중적인 인기는 없지만, 매니아층이 존재하고 작품도 상당히 많이 번역된 편이다. 여성 캐릭터가 죄다 저모양(...)이긴 하지만 탐미적인 문체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썼다.
근데 생각할수록 넘 웃긴다는. 사진에 절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