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아이를 데리고 프랑스에 다녀왔다. 파리에서 시작하여 남부를 쭉 돌았다. 아이는 무척 좋아했고, 나에게도 평생토록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전까지 내게 있어 프랑스는 아주 싫어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어떤 특정 국가를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피씨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솔직한 마음은 그랬다. 아마 남편의 출장이 잡혀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김에 겸사겸사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계속 악감정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 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방문했던 프랑스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12년 전 나는 로마의 테르미니역에 창구에서 미리 예약해둔 파리행 열차표를 발권하려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다름 아닌 프랑스 철도파업 때문에 파리로 가는 모든 열차가 취소되었다는 것. 여행 중 돌방상황이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그 정도 가지고 뭘 싶을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유레일 패스의 유효기간이 그날이 마지막이었다는 데 있다. 거금을 들여 산 패스가 휴지조각처럼 변하고, 공들여 짠 여행 일정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최종 코스인 파리를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래저래 피 같은 돈을 몇십만 원이나 추가로 지출하며 간신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파리에 도착하고 보니 열차표가 휴지조각이 된 것 정도는 약과였다.
도시 전체에 지린내가 진동을 하고, 사람들은 유럽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친절하고, 지하철은 파업으로 매우 드문드문 운영하는 통에 미칠 듯이 미어터지고, 그렇게 하도 붐비다 보니 결국 사람들에게 치여 지하철 한복판에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자빠링을 하는 수치를 당하면서 엉엉 울음까지 터뜨렸던 데다가, 간신히 도착한 호스텔의 주인은 체크인하는 나를 보며 성희롱을 하질 않나(밤에 너 방에 올라가도 되니?), 인심은 야박하고, 말은 안 통하고, 물가는 비싸고, 열차표로 마이너스된 돈 메꾸느라 밥은 제대로 못 먹지, 정말이지 지옥이 따로 없었다. 더구나 날씨까지 협조를 해주지 않아 내내 비가 오고 추웠던 탓에 도대체 다른 사람들이 파리의 어디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파리가 프랑스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만난 프랑스인들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감정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를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싫다’는 감정이 떠오르게끔 세팅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에 두 번째로 방문한 파리는 완전히 달랐다. 날씨는 시원하고, 풍광은 아름답고, 음식은 맛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파리는 파리 나름대로 좋았고, 남부로 내려가면서 또한 많은 지역을 거쳤는데, 모든 것이 다 좋았다. 12년 전 파리를 떠나며 내가 두 번 다시 프랑스에 오나 봐라! 하며 결심을 했었는데 그때 이를 갈며 했던 결심을 지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기에는 나의 달라진 경제적 환경, 마음의 여유, 체력조건, 렌터카를 통한 손쉬운 이동, 날씨, 남편과 아이가 함께라는 어떤 안정감, 숙소의 환경, 모든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자연스레 이전보다 호기심과 관심이 생길 수밖에. 간혹 프랑스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도 이전과는 달리 단순한 서사 이상으로 사람들의 습벽까지 보게 되고.
이런 배경 덕분인지 오헬리엉 루베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에 거주 중인 프랑스인 저자가 쓴 책으로 TV를 잘 보지 않아 몰랐는데 비정상회담에도 출연한 적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프랑스인 특유의 까칠한 듯한 성격과 이미지에 대한 실제 프랑스인의 입장부터 가족관계, 음식, 옷, 대중문화, 정치, 사회, 경제, 차별 등 프랑스와 관련하여 뭇사람들이 궁금해하기 마련인 온갖 문제를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공통점이 없을 듯한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가 의외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굉장히 진보적이고 혁명적으로 보이는 프랑스인이 생각보다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 한국이 386(현재의 586) 운동권 세대 이후 많은 것이 변한 것처럼 프랑스 또한 68 혁명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 계급(빈부격차)이 점점 더 벌어지고, 세대 간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것 등등은 거의 한국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이런 걸 보면 어느 정도 사회 경제적 수준이 비슷해진 집단은 대개 비슷한 진통을 겪는 것도 같다.
한국과 비슷하게 스크린 쿼터제가 있고, 더 나아가서 라디오 쿼터제까지 있다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라디오에서 트는 노래의 30%는 반드시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여야 한다는데, 다들 딱 30%까지만 틀고 그 이상은 절대 안 튼다고 한다. 프랑스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취향을 가꾸고 그것을 내세우는 문화가 발달해있고, 그래서인지 ‘힙스터’ 기질을 매우 중시하고 한국영화제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해외의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그런 힙스터들에게 있어 프랑스 노래는 전혀 힙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영화나 프랑스 노래를 굉장히 ‘힙’ 또는 ‘분위기’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나라 힙스터들이 매우 열중하고 있는 어떤 영화감독이라든가 소설가라든가 음악가라든가는 막상 현지에서는 전혀 ‘힙’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긴 지구 반대편 어느 곳의 사람들은 한국의 뽕짝이나 R&B를 힙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상한 부분에서 보수적이고 이상한 데서 자유로운 것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경우 예의범절이나 규칙을 굉장히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데, 반면 술 담배는 굉장히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저자가 나온 고등학교는 가톨릭 스쿨이었는데 학교 안에 흡연실이 있었다고. 생각해보니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초반부에 고등학생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단체로 담배 피우는 장면을 보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와 비슷하게 성생활은 자유로운데 데이팅 문화가 없다는 것 또한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영미권이나 우리나라처럼 데이트하면서 썸타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단 몇 주라도 일정한 기간 만나면 딱히 commitment(우리 사귀자)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무조건 사귀는 사이가 되는 것이라는데, 남녀가 지속적으로 만나면 무조건 사귀는 사이가 되었던 우리나라나 70~80년대를 연상시킨다. 옷차림도 굉장히 보수적으로 화려한 색채는 안되는데 그렇다고 또 여성이 운동하는 상황도 아닌데 운동화를 신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뭔가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이래저래 사회적 제약과 암묵적인 관습이 존재하는 듯했다.
가장 쇼킹한 것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였다. 프랑스의 자녀교육은 엄격하기로 유명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프랑스의 교육법이 유행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처럼 철저한 예절교육과는 다르게 평생토록 부모에게 기대서 캥거루처럼 사는 자식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 성인이 되었는데 독립하지 않고 부모 집에 거주하는 사람은 굉장히 찌질하고 못난 이미지가 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그것이 매우 당연한 상황이라고. 심지어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용돈을 받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거나 원조를 하는 부분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식의 탄생은 부모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책임질 의무가 있고 자식은 부모에게 의무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한편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좀 너무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물론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저자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프랑스 북부 교육자 집안 출신인 30대 백인 남성이자 현재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저자가 바라보는 프랑스와 마르세유에 거주하는 50대 흑인 여성이 바라보는 프랑스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마치 서울 출신으로 대전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인 나와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의 한국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기야 나 개인의 경험만 따지더라도 12년 전 유럽여행하며 바라본 프랑스와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가족여행하며 바라본 프랑스가 완전히 달랐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일반화’ 할 수 없는 것과 별개로 프랑스인이 말하는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들인지라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한국인이 바라보는 외국, 외국인이 바라보는 외국에 대한 것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