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언제부터 했는가 말하면 다들 놀라는데, 대략 2007년부터였나 그랬다. 그야말로 조상신 같은 존재인 셈. 트위터는 생각 외로 늦게 2010년부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거나 그거나 인터넷 잉여인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하여간 그렇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더 오래 사용했기는 하지만 실제 사용기간은 대략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인들이 대거 쏟아져 들어오던 시점은 둘 다 2010년 즈음부터였고 그전까지는 아무도 없는 빈 광장에서 홀로 독백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때부터 9년이 흘렀다. 페이스북은 잘 활용하는 것을 넘어 중독 수준의 헤비 유저가 된 반면, 트위터는 여전히 계정만 가지고 있는 상태다. 간혹 좋아하는 작가들 트윗 보거나 뭐 정보를 검색하거나 혹은 재미있는 짤을 찾으러 들어가곤 하는데, 그나마 아주 잠깐씩일 뿐이어서, ‘트위터를 한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이상하게도 트위터에는 뭔가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
일단 나에게 있어 트위터 유저라고 하면, 뭐랄까 솔직히 말해 약간 미친 사람들 같다. 물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동시에 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도 양쪽을 할 때의 분위기는 꽤나 다를 것이다. 트위터의 경우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처럼 굉장히 까칠하고, 예민하고, 계속 혼자 중얼중얼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나쁜 인상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와 동시에 타인의 아주 작은 기쁨이나 슬픔에도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남다른 공감능력과, 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을 함께 지녔다는 느낌도 있다. 이 느낌을 어디선가 받아봤는데,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디씨인사이드가 떠오른다.
결혼 전 연극이랑 뮤지컬을 엄청나게 많이 봤다. 지금은 돈도 시간도 없어 못 보지만.... 그렇게 공연에 빠지기 시작한 초창기 무렵, 구하고 싶은 티켓이 있는데 전부 매진이라 기도하는 심정으로 매일 밤 중고나라를 뒤지다가 흘러 흘러 디씨인사이드의 연극 뮤지컬 갤러리(이하 연뮤갤)라는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혹시 X월 X일 OOO 티켓 2장 양도하실 분 있나요?”란 글을 올리고선 잠시 후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 봤더니 티켓을 양도해줄 귀인이 나타나기는커녕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이다.
- 거지새끼야 꺼져
- 구걸 ㄴㄴ해
- 분위기 파악 못하냐?
댓글에 온갖 험한 말이 가득했다. 아니 내가 뭘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공짜로 달란 것도 아니고, 어차피 표 양도할 사람 있으면 수수료 떼이지 않게 내가 제값 주고 사겠다는데 왜. 손이 덜덜 떨리고 억울해서 눈물까지 났다. 뭐 저런 미친 애들이 다 있지 싶고 밤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올 정도였다. 나쁜 새끼들, 내가 다신 거기 가나 봐라, 하고 욕하면서 막 울었는데, 그러다가도 연뮤갤만큼 공연 관련 정보가 넘쳐나는 곳이 없었기에 결국엔 다시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히 알게 되었다. 원하는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엄청난 노오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인지라 저렇게 양도받으려는 행위 자체를 프리라이더로 간주한다는 것을.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한 이후부터는 그렇게 실수하는 일도 없고 서서히 거기에 적응해갔는데, 엄청나게 살벌하고 까칠한 것만 같았던 사람들의 내면에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둥부둥하는 묘한 느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뭐랄까, 찌질이들끼리 서로를 안아주는 그런 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나 역시 찌질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찌질이들끼리 부둥부둥하는 느낌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창 공연 많이 보던 시점에는 그렇게 연뮤갤 안에서도 대략 즐겁게 지냈던 것 같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가 희한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면이 있었다. 엄청나게 부둥부둥하다가 뭐 하나 잘못하면 마구 몰아붙이는 그런 느낌.
트위터를 보면 딱 그때의 연뮤갤이 떠오른다.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익명’이라는 데서 오는 느낌일 것이다, 다만 그런 익명성에 부담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나와 다르게 거기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페이스북이 아닌 트위터를 하는 것이겠지.
정유민의 <아무튼 트위터>는 트위터 헤비유저의 트위터에 대한 사랑의 찬가이다. 트위터를 하며 만났던 이상한 사람, 트위터를 하며 있었던 좋은 일들, 트위터를 하며 알게 된 것들, 트위터가 좋은 이유 등등 트위터에 관한 것으로만 책 한 권을 써냈는데, 비록 트위터는 아니지만 어차피 넷잉여의 삶이나 성향이란 대략 엇비슷한 것이므로 많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가 트위터에 대해 좋다고 느끼는 지점이 대략 내가 좋아하지 않는 지점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웃겼던 것은 “페북을 싫어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최고는 ”배고파 라면 먹고 싶당“ 따위의 아무 말을 적었을 때 반드시 한 명 이상의 댓글이 달린다는 점이다. 대충 혼잣말인 거 같으면 제발 그냥 지나가주면 안 될까.” 같은 부분인데, 사실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간다. 혼잣말을 텍스트로 왜 쓰는지. 혼잣말은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되잖은가. 대꾸는 하지 말고 내가 무슨 상태인지만 알아줘. 뭐 이런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 인간의 어떤 성향(?)이랄까가 드러나는 것 같다.
하여간 트위터에 대한 구구절절한 찬가를 보고 나니 나 역시 페이스북에 대해 이런 글을 써보고 싶어 졌다. <아무튼 페이스북>, 아주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바로 페이스북 조상신입니다. 저에게 청탁을...
이것들은 과연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허상일까. 가볍고 피상적인, 곧 사라져버릴 트위터의 유희일 뿐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한 동물 친구들이 궁디를 흔들며 귀여움을 뿜뿜 내뿜고, 다정하고 고마운 마음들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피상적이면 어떻고 가벼우면 어떤가. -p.58
회사 다닐 때 부지런히 트위터를 하면서 빼먹지 않은 건 저자들의 계정을 사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감 기한이 지나도록 원고는 주지 않는 저자가 쓴 이런 트윗을 보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아, 마감해야 되는데.”
이런 트윗을 볼 때마다 당장이라도 멘션을 보내 독촉하고 싶었다.
“선생님, 마감해야 된다고 트윗을 쓸 시간에 마감을 하십시오.”
그러나 아는 척을 하면 아예 숨어버릴까 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트위터에는 나의 저자뿐 아니라 마감해야 되는데 일하기 싫다고 징징 울고 있는 마감노동자들이 정말 많았다. -p.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