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공포소설을 좋아하지만 자주 읽지는 않는데 이유는 당연하게도 무서워서. 특히 미쓰다 신조 작품처럼 아주 무서운 것들은 큰 마음먹고 읽어야 한다. 작년에 나온 신작들은 아직도 못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 유키코의 신작인 <이사>는 아주 가볍게 읽기 좋은 공포소설이었다. 가볍게 읽기 좋은 공포소설이라고 하니 다소 모순적인 표현 같지만, 정말로 그랬다. 약간 으스스하면서도 지나치게 무섭지는 않고 다 읽고 나서도 약간의 여운만 남는 정도. 읽었다고 밤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지고 괜히 혼자 있는 게 찜찜해지고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지루하진 않고.
간혹 네이버 웹툰 여름 특집 혹은 공포 특집, 혹은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가지 괴담들을 살피다 보면 굉장히 허술한 이야기들도 종종 포함되어 있는데 또 그렇게 허술한 이야기들은 없고, 나름대로 완결성을 갖춘 짤막한 단편 모음집이라 걱정과는 다르게 틈틈이 읽기 좋았다.
마리 유키코는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공략하여 읽고 나서 찜찜함과 불쾌함을 남긴다는 일본 특유의 장르인 이야미스(이야미 스릴러)의 대가라고 한다. 나도 이번 작품집을 통해서야 처음 알았다. 읽고 나서 음... 이 정도 가지고?? 하는 생각을 했는데, 번역가의 말을 읽어보니 기존 작품들보다는 조금 소프트하게 쓴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느낌이 많이 났다.
대부분의 작품들 주인공이 직장인이고, 그래서인지 일본의 직장(아마도 대기업으로 추정되는)이 배경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괴담’ 그 자체보다 일본의 직장 분위기가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더 눈치를 많이 살피고 표적을 잡으면 집요하게 이지메를 하는.
한국에도 왕따 문화가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왕따 문화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 한국이 그냥 대놓고 몰려들어 앞뒤 맥락도 없이 마구 패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까먹고 또 다른 사람을 패는 느낌이라면, 일본의 경우 타겟이 한 번 정해지면 굉장히 가늘고 길고 집요하게 패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괴담 자체보다도 그러한 직장 분위기가 느껴져서 오싹했던 책이었다. 물론 이야미스의 대가가 썼으므로 상당히 과장되어 있겠지만.
또 하나 특이점은 매 작품마다 기분 나쁘고 싫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인물의 이름을 모두 똑같이 해 놓은 지점이다. 예를 들어 악역 이름이 김나쁜(가명...특정 인물 아님)이라면 일곱 작품 내내 김나쁜이라는 이름이 나온다는 것. 당연히 캐릭터는 다 다름에도 이름은 매번 김나쁜이라는 것. 누가 봐도 작가가 김나쁜을 싫어해서 그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 같은데(의외로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만약 이런 소설을 쓴다면 그 이름을 뭐로 붙일까 잠깐 생각해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