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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09. 2020

보이지 않는 벽

<하틀랜드>

넷플릭스에 <힐빌리의 노래> 공개되면서 원작인 동명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힐빌리의 노래> 비롯하여 <배움의 발견>, <하틀랜드>  폐쇄적이고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백인 계층을 다룬 괜찮은 책은 알고 보면  많다. 시간이 나서  책을 모두 읽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중   권만 고르라면 <하틀랜드> 꼽고 싶다.

<하틀랜드>  8월에 읽기 시작해서 어제야 겨우 끝낸 책이다. 완독 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오랜만이다. 400페이지가량으로 아주 길지도 않은데. 물론 짧다고도   없지만. 문장도 좋고 읽기 쉬우며 서사의 구조가 소설과 비슷하여 재미있다. 그럼에도  읽는데 이렇게나 오래 걸린 것은 아무래도 읽다 보면 속이 갑갑해지는 순간이 많아 한번에  읽지 못하고 여러 번 쉬었기 때문인  같다.

이건 <힐빌리의 노래> <배움의 발견> 마찬가지이다.    미국 내에 존재하는  빈부격차와 넘어설  없는 계급적 한계를 고발하는 성격의 책에 가깝고, 문제가 너무 입체적이고 복합적이어서 그걸 인식한다고 현실을 타개할만한 뾰족한 수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읽으면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다만 <하틀랜드> 경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 등이 보다 입체적이고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다른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망적이기도 하고. 여기서 희망적이라는 것은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거나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저자가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배움의 발견> 불행 포르노적 성격이 느껴져서 읽는 게 무척 힘겨웠고 아직   읽었다. <힐빌리의 노래> 후반부로 갈수록 자아도취적인 면모가 느껴져서 그것 역시 조금 버거웠고. 물론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고 앞서 말했든 기본적으로  좋은 책들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점점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과연 ‘교육 역할과 효과가 이들이 생각하고 주창하는 것만큼 영향력이 있는가의 측면이다.  역시  교육을 강조하고 보편적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들처럼 엄청나게 각박한 환경에서 특별한 롤모델이 없음에도 초인적인 의지와 정신력과 지능으로 뚫고 일어나는 이들을 보게 되면, 결국은 교육과 무관하게 유전자가 관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전히 교육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교육의 역할은 사실 누군가를 성공시킨다기보다는 낙오되거나 반사회적 성향을 띄지 않도록 단도리 하는 것에 가깝다. 사실 그것만도 어려운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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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를 영영 가난하게 살도록 내버려둔 나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어떻게 가난한 아이 이야기를   있겠니? 사실 전에는 나도 그런 생각은 못했어.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도록, 스스로를 시궁창에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생각하도록 배웠으니까. 그렇지만 실제로는 환경이 결과를 좌우하지.
아니면,  모어로 말하자면 이런 거야.
거두는 것은 날씨 나름이잖여? 좋은 씨앗은 우짜든 간에 싹이 트겄지만 그래도 우박이 쏟아져불믄 말짱 헛짓이여. -p.11-12

가난한 백인은 백인성에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 안에서 특히 불편한 존재야. 우리 사회에서는 백인을 인종적 표준으로 삼고 나머지 인종은 ‘타자 간주할  아니라 백인성을 경제적 안정과 동의어로 취급하기도 . 그러니 계급과 무관하게 백인은 유색인의 타자성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하게 되지만, 부유한 백인의 입장에서 가난한 백인을 보면 신체적으로는 자기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백인 노숙자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비슷하다는 데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거야.
비율로 따지면 유색인 빈곤층 비율이  높긴 하지만, 미국에는 백인 인구가 가장 많기 때문에 숫자로는 백인 빈곤층이 다른 인종 집단보다  많아.   가지 사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있지만, 인종과 계급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하나만 참일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워. 우리 가족에게는 인종적 특권이 있었으나 나날의 경제적 분투 속에서는 특권을 누린단 사실을 인지하기가 힘들었어. -p.192

1994년에 캘리포니아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복지 수혜자의 전자 지문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 전문가들이 불필요한 제도고 부정 수혜자를 가려내 절약하는 돈보다 시스템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고 비판했지만 입법자들한테는 비용을 아끼는 것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했던 거야.
전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메시지를 확실하고 뚜렷하게 들었어.   20 동안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는  줄었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전혀 줄지 않았는데도.
내가 어른이  뒤에 캔자스 의회에서는 현금 지원금으로 오션 크루즈 티켓을 사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었단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으로 바하마 휴가 여행을 떠나는  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같은 법으로 복지 수혜자가 현금으로 인출할  있는 돈에도 한도가 정해졌어.  달에 받는 지원금이 얼마건 상관없이 ATM으로  번에 25달러 이상은 인출할  없게 됐지. 카드에서 돈을  때마다 수수료를 챙기는 은행 말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조치였어. 처음에는 가난이 그저 수치이기만 했다면,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가난이 점점  부유한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바뀌어갔어. 가난한 사람들의 돈이 이율, 연체료, 벌금 등의 형태로 은행 금고로 흡수되었어. -p.194-195

미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판단 착오는 누구나   있는 거야. 다만 가난한 사람들은 실수를 감당하고 극복할 여유가 없어서 곤궁한 상태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린 미혼모가 낳은 아이는 세금으로 공짜 급식을 먹겠지. 가난한 알코올 의존자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거고. 가난한 도박꾼은 자기 힘으로 갚을  없는 빚을  테고. -p.197

 시대에 여성 해방이 찾아왔다고들 하지만, 현실에서 가난한 여성들은 독립을 쟁취할 힘이 없었어. 때로 남자에게 의존해서 사는  죽음의 위험을 안길 때가 있었는데도. 가정 폭력은 사회경제적 계층 어디에서든 일어나는 일이지만 남자를 떠날 능력이 없는 여자들이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거지. -p.318

가난한 여자들은 살아가기만 해도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어.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임신하고, 서빙을 하면서 예사로 성희롱을 당하고, 반복적인 육체노동으로 몸은 통증에 시달리지. 그리고 남자들에 의한 폭력이 있어. 가난한 계급 남자가 중간이나 상위 계급 남자보다  폭력적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경제적 수단이 없는 여자가 폭력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야.
나는 나를 뒤쫓아 오는 남자를 죽이는 꿈을 꾸곤 했어. 가끔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럴  어떻게 싸워서 빠져나올까 생각하곤 했지. 하지만 맞서 싸우는 것보다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가장  힘이라는  알게 됐어.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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