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감>
마감의 고통
작년에 서평 쓰기 수업을 할 때 수강생 중 한 분이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도저히 글이 안 써질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대답했다.
"일단,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시구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쭉 적어 보세요. 두서 없이. 그리고 그걸 조합해서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또 다른 수강생 한 분이 물었다.
"도저히 생각나는게 없을 땐 어떡해요?"
나는 또 다시 답했다.
"그럴 땐 생각이 안 나는 이유에 대해서라도 써보세요. 이 책을 읽고 왜 생각나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는지."
아마 그 분들은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말은 쉽지...'
나 역시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말은 쉽지....'
실제로 나는 그때 마감 두 개인가를 못 끝내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들은 일기 쓰고 나는 마감을 하는 중이었는데, 아이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종이 접고 책 읽고 자꾸만 딴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런 아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빨리 자리에 앉아서 써야지. 엄마랑 약속했잖아.”
“아, 생각이 안 나. 어제 뭐했는지.”
“앉아있다보면 생각 날거야. 앉아있는 것도 연습하는 거야. 너 좀 전까지 입으로 중얼중얼 했잖아.”
“근데 못 쓰겠단 말야!!”
“너무 잘 쓰려고 하니까 그렇지. 그냥 생각나는 것만 써.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못 하겠는데 어떡해. 안 써진단 말야.”
“그냥 생각나는 것만 쓰면 되잖아. 자꾸 이럴거야?”
그리고 그 말을 한 순간 문득 남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나 잘하세요.'
어쩌다보니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해 남을 가르치는 경험까지 해보았지만, 이번달에도 예정되어있지만, 그리고 아이의 일기 숙제 등을 매일 봐주고 있지만, 당장 마감을 해야 하는 글들이 쌓여 있지만, 솔직히 말해 글쓰기는 내게 있어서도 늘 두려운 일이다.
3년 넘게 마감을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머릿속에 뭔가 떠올라 아! 이걸 쓰면 되겠다 하고 기뻐하다가도,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깎아지른 벼랑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마감할 때마다 매번 그렇다.
그럴 때마다 이번에야말로 펑크가 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그러다보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간다. 편집자나 담당 기자의 비난의 목소리, 사람들의 실망스러운 눈초리, 기사에 달릴 악플, 그리고 연재에서 '드디어' 잘렸다는 소식 기타 등등.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망상에 빠져들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거나 페이스북을 하고 있기 일쑤다. 그러면 나는 더욱 심한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며 다짐하곤 한다. "내일부터는 정말 다르게 살아야지. 내일은 정말 아침부터 마감할거야. 피의 맹세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다시 전날과 같은 일과의 반복.
다신 이러지 않는다고 다짐해도 마감 때마다 매번 그렇다. 신기한 것은 그러다가도 정말 마감 직전에 어찌어찌 글이 써지긴 써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쓰고 나서 생각한다. '휴, 다행이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운이 좋은 채로 몇 년 째를 보내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글 잘 쓰는 다른 유명한 작가들, 유명한 작품을 쓴 대문호들은 마감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한 적이 없겠지? 나 같은 쪼랩이나 마감 때문에 징징거리는 거야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창작의 영감이 마구 솟구쳐서 미친듯이 글을 많이 썼던 그런 작가들. 그럴 때마다 나에게도 그런 재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을 또 다시 시작하고, 그러다 정신차려보면 또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토록 유명한 작가들이라 할지라도 마감은 늘 괴롭고 두려운 것이라고 한다. 안은미 번역가가 엮고 번역한 에세이집 <작가의 마감>을 읽다보면 나쓰메 소세키부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대문호들이 마감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알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마디로 말해 '마감의 변'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작가들이 하도 마감을 못 지키니 편집자들이 도대체 뭣 때문에 글을 못 쓰는 것이냐고 닦달을 하다가, 여하튼 도저히 못 쓰겠다고 죽는 소리를 하니 그럼 못 쓰겠는 이유에 대해서라도 쓰라고 해서 쓴, 그야말로 '사죄의 말'들이다. 처음부터 완결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은 아니고, 안은미 번역가가 여기 저기 글쓰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징징대는 글을 모으고 모아 이번에 새롭게 펴낸 것이라 한다.
읽다보면 정말이지 너무 웃겨서 소리내어 웃게 된다. 마감을 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위경련이 일었다느니, 우연히(?) 마감 일정에 맞추어 독감이 걸려버렸다느니 하는 지나치게 뻔한 변명들도 우습고, 마감을 못하겠다는 사죄의 말을 차마 직접 전할 수 없어 편지로 쓴 뒤 부인에게 대신 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심정이 짠하고 공감이 가면서도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도 나처럼 이렇게 찌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 한 켠에 흐뭇한 마음이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사실 핑계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나도 마감을 하려고만 하면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예전에 한번은 친구가 제일 가까운 마감은 언제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급격하게 배가 아파 화장실에 달려가야 했던 경험도 있다. 아마도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처럼 내가 못할 땐 비극이던 마감이, 남이 못한다고 쩔쩔매며 징징 거릴 땐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야말로 '꿀잼' 그 자체이기에, 순식간에 읽어내렸다. 이렇게 뛰어나고 재능 있는 작가들도 마감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동시에, 본래 마감은 힘든 것이므로 그냥 저항할 생각말고 고통을 받아들이자는 생각 또한 하게 되었다.
그토록 재능이 충만한 사람들도 마감을 힘들어 한다는 것은, 역시나 마감이 '자발적'으로 취미 삼아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일'이 되면 힘이 들고, '마감'이라는 데드라인을 통해 약속이 되면 버거워지는 것이다. 거기에 마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감'이 아닌 '출근', '공부' 등 각종 사회적 약속과 목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은 '마감의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그야 당연히 '마감을 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감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마감을 하는 것 외에는 없다. 공부도, 출근도, 시험도, 일도, 모두 모두 마찬가지. 그러니 다들 마감합시다. (다시 한번, '나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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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쓰려고 마음먹은 날이 되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위경련이 일었다."
(...)
"책상 앞에 앉으니 위가 아파 왔다."
-p.57, 위가 아프다, 사카구치 안고
“또 못 썼어요?”
아내가 묻는다.
“안 돼, 안 돼.”
“속 썩이네요.”
“오늘 밤, 할 거야. 오늘 밤이야말로…….”
이렇게 말하고는 양지바른 툇마루를 걷거나 정원의 나무 사이를 거닌다.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흥이 샘솟기를 기다리면서.
T 잡지의 편집자가 오는 것이 무섭다. 틀림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어코 원고를 손에 넣지 않는 한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색을 한껏 내보일 텐데……. 당신은 빨리 쓰니까요, 이런 말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교차한다. 쓴다, 하찮은 글을 쓴다. 그것이 세상에 나온다. 비평된다. 이 생각만 하면 몸도 마음도 구석의 구석의 구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더는 어찌해도 쓰지 못할 것처럼 , 느껴진다. 조바심이 난다. 이제껏 글을 쓸 수 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재료고 뭐고 엉망진창이다. 예전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도 시시하기 그지없다. 어째서 저런 소재로 글 쓸 마음을 먹은 걸까.
“안 써져, 안 써져.”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내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 p.79~80, 또 못 썼어요?, 다야마 가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