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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12. 2018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고

대학 때 지하철 역마다 강아지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대역에도 매일같이 한 아주머니가 3번 출구 계단의 중간 부분에 앉아 있곤 했다. 앞에는 뚜껑이 없는 과일상자 크기의 작은 박스가 놓여 있고 안에는 태어난지 한달이 될까 싶은 어린 강아지들 7-8마리가 서로 붙어서 꼬물거렸다. 말티즈, 요크셔 테리어, 슈나우저, 골든 리트리버. 한동안 후문에서 바로 타기만 하면 되는 버스 대신 일부러 멀리 돌아 지하철역까지 걸어다녔다. 강아지들을 보기 위해. 아주머니가 ‘싸게’ 준다며, 만져보라고 권하면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러던 어느날인가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강아지들을 만지고 말았다. 말티즈 한마리가 내 손가락을 물었다. 간지러웠다. 그런데 손가락이 물린 순간 전기라도 흐른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품안에 강아지가 있었다. 7만원이었다. 부모님께는 친구네 집에서 쫓겨난 강아지를 데려간다고 말했다. 아빠는 좋아했고, 엄마는 화를 냈다. 그때는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어서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강아지는 엄청나게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상태였다. 잘 씻기고 먹이고 정성스럽게 돌봤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엄마도 어느새 정을 붙여 귀여워했다. 한달 정도 잘 놀던 강아지는 어느날인가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개에게 치명적인 파보와 코로나 장염이었다. 병원에서는 둘 중 하나씩만 걸려도 치사율이 70, 80%인데 둘 다 걸렸으니 95% 확률로 죽을 것이라며 안락사를 시키라고 했다. 됐다고, 안된다고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울고난 다음날 지하철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따졌다. 건강하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병든 강아지를 팔면 어떡하냐고. 다 죽게 생겼다고.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그럼 대신 다른 강아지를 하나 골라서 데려가라고 했다. 교환해준다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미안해보이는 얼굴도 없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돌아섰다.

집에 돌아온 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강아지를 다시 동물병원에 데려가 소용없다는 수의사에게 난리를 쳐서 링거를 맞추고, 온가족이 일주일 넘게 달라붙은 끝에 어찌어찌 살려냈다. 그 강아지가 올해로 15살이 되었다. 이후로도 가끔씩 박스에 담겨있는 강아지들을 보면, 그때의 강아지들이 생각나곤 했다. 장염은 전염성이 강해서 아마 그 박스 안에 담겨있던 녀석들이 전부 감염이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죽었겠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괴로워졌다. 강아지는 간신히 살려냈지만 그 때의 기억이 너무 괴로워서, 지금은 햄스터 한마리조차 기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생명을 기르는 것은 너무나도 무거운 일이다.

하재영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번식장, 개농장, 유기견 보호소, 도축장, 보신탕 업소 등을 다니며 한국 개 산업의 실태를 다룬 르포이다. 소설가인 하재영 작가는 어느날 우연치않게 지인으로부터 처치곤란 신세가 된 피피를 떠맡게 되고, 동물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동물복지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본격적인 르포를 쓰게 된다. 책에는 번식업자, 개농장주, 유기견 보호소장, 개 미용업자, 도축업자 등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간혹 동물농장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참한 상태로 살아가는 개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태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눈물이 나와 읽기가 어려웠다. 번식장의 개들은 평생을 강간(개들도 강간을 당하면 충격을 받는다. 암컷 뿐 아니라 수컷인 종견들도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계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수컷을 인간들이 억지로 발기시킨 후 암컷의 생식기에 강제로 집어넣고 빼지 못하게 붙드는 방식으로 교배가 이루어진다고)을 통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그렇게 낳은 새끼를 바로 빼앗기는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체념하거나 미쳐버린다.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개농장의 개들이나 관리가 안되는 유기견 보호소의 평생을 제대로 된 물을 마셔보지 못하고, 학교 급식소 등의 음식물 쓰레기 등을 먹으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음식물 수거 업체로 인증을 받기 위해 유기견을 데려다놓고 그대로 방치하여 좁은 우리에서 몇십마리의 개들이 굶어 죽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한국은 동물관련법안이 매우 약한 국가여서 옥상에서 강아지를 떨어트려 죽이거나 남의 개를 훔쳐다 불에 구워 먹어도 벌금 몇십만원으로 끝난다. 그나마 ‘재물 손괴죄’를 적용할 경우에 이렇다.

책에서는 이와같은 개의 복지 관련한 문제의 근본원인이 개식용에 있다고 지적한다. 흔히 애완(반려)견과 식용견은 따로 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개는 가축이지만 축산물 관리 위생법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식품으로서 관리가 되지 않는 무법지대에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유기견을 비롯하여 타인의 반려견을 그냥 데려다가 잡아먹는 경우도 생기며 온갖 개들이 쓸모(애완, 번식, 기타 등등)가 없어지면 최종 결말이 고기로 전락한다. 살이 없는 소형견은 개소주를 만들 때 이용된다. 그럼에도 개는 식품이 아니기에 규제에서 벗어난다. 가축으로서 관리되지도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거나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된다.


“거기다 개들에게 정상적인 걸 먹이는 개 아니잖아. 온갖 독성을 내뿜는 썩어빠진 음식물 쓰레기를, 그것도 그대로 먹이면 애들이 장염에 걸려서 살 수가 없으니까 항생제를 잔뜩 타서 주잖아. 축산물이 아니니까 투약에 기준치도 없도 휴약 기간도 없어.
개들이라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싶어서 먹는 줄 알아? 그거밖에 안 주니까, 안 먹으면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야. 이렇게 사육된 개들을 몸보신한다고 먹는데 보신은 무슨, 병이나 안 걸리면 다행이지. 이런 걸 국민이 먹도록 내버려두는 건 국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내팽개치는 거야.” -p.175

그렇다면 ‘합법’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합법화에도 비용이 들기에 점점 줄어드는 제한적인 개식용 인구를 위하여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식용견’은 결코 식용이라 상관없다고 따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개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서로 얽혀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보신탕 논란이 있을 때마다, 보신탕을 먹지 않지만 보신탕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개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을 먹고 있고, 앞으로도 안 먹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미 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상황에서 무언가를 취사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소고기는 먹지만 개고기는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생선은 먹지만 랍스터는 먹지 않을 수도 있다.(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에세이 <랍스터는 생각해봐>에는 랍스터를 산채로 물에 끓이는 요리 방법을 예로 들면서 실은 랍스터가 보기와 다르게 엄청나게 통증에 예민한 생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 앞에서 그럼 소는? 돼지는? 닭은? 오리는? 생선은? 이라고 조롱하듯이 반박하지만, 이와 같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이야말로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문제에 관심이 있어도 계급문제에는 무심하거나, 노동문제에는 관심이 있어도 여성문제에는 편협한 사람들이 적지 않듯이, 빈민계층을 위해 애쓰면서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도 있듯이 모든 사람이 모든 부분에 대해 무결할 수 없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는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종”이나 “생명” 별로 차등을 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책에서는 말한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잖아요.”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더 괴로웠다. 채식 문제는 상당히 예민한 주제이다. 채식 뿐만이 아니라 먹는 문제가 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과 서평은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하고 또 불쾌할 수 있다. 채식과 관련한 첨예한 논란들이 떠오르니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불편함과 괴로움만이라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평생동안 고기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더라도, 그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알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은 육식을 비난하거나 금지를 촉구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니다. 계몽적이지도 않다. 다만 우리에게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저 개들은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 그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워요.”
비탈길 위에서 개농장을 내려다보던 유 팀장이 말했다. 화난 목소리처럼 들렸는데 얼굴을 보니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마지막으로 개농장을 바라보았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올드팝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p.17

우리나라에서 개는 가장 나은 처지인 반려동물이자 최악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식용동물이다. 동종의 동물을 가족이자 음식으로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이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연민을 확장할 수 있을 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가장 가까운 동물과 가장 먼 동물 사이의 가교가 되길 바랐다. -p.53

보호자가 없고 품종견이고 중성화 수술(불임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그 개는 언제든 번식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p.64

“난 이 세상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곳이 경매장이라고 생각해. 경매장이 있기 때문에 불법 번식장이 난립할 수 있고, 불법 번식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번식견이 저 모든 학대와 고통을 당하는 거야. 핵심 고리인 경매장이 없어지면 번식업자들은 그 많은 개들을 다 팔아먹을 재주가 없어. 불법 번식장이 이렇게 많이 생길 이유도 없어.” -p.94-95

“만약 그 사람들이 억울하다고, 왜 내 생계을 건드리느냐고 한다면 내가 할 말은 딱 하나야. 자정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것.” -p.97

아파트 11층에서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내던짐 사람은 벌금 5만원, 자신이 기르던 개를 20여회 때린 뒤 내리쳐 죽인 사람은 기소유예, 고양이를 덫에 넣고 불태운 사람은 벌금 20만원이었다. -p.103

동물복지를 떠나서 개 값이 100만원 대 밑으로 떨어지면 소비자가 자기 손에 들어오는 상품의 질을 따질 수 없는 거예요. 지금의 저품질, 저가격, 대량 생산 구조를 고품질, 고가격, 소량 생산 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유기견은 절대 줄어들지 않아요.
지금 상황은 어때요? 가뜩이나 정서적으로 불안전한 강아지들을 개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소비자가 사가잖아요. 소비자는 아무것도 모르니 자기 생각, 자기 기분대로 막 키우고요. 그런데 어떻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결국 소비자는 감당 안 되는 상품을 쓰레기처럼 갖다버려요. 그렇게 생긴 게 여기 있는 수많은 유기견이에요. -p.120

제 생각에 진짜 문제는 마구잡이로 만들어내는 생산업자도 아니고 쉽게 버리는 소비자도 아니에요. 정부예요, 정부. 나라에서 제대로 된 동물 관련법을 만들지 않아서 생기는 일을 힘없는 개인이 독박 쓰고 감당하는 거예요. 단지 얘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p.120

“나도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 많이 봐. 개새끼들 도와줄 여력 있으면 사람이나 도와주라고.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개새끼가 대수냐고.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여기 돕지 말고 저기 도와라, 얘를 구하지 말고 쟤를 구해라, 그런 소리는 누구도 구해본 적 없고 누구도 살려준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 -p.150

데려가는 사람은 반려견으로 입양하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아니면 개장수 왔을 때 팔아먹으려고 데려가는 거야. (....) 그런데 이걸 처벌할 방법이 없어. 입양하겠다고 와서 입양 보냈는데 뭐가 잘못이냐? 내가 그 사람 속내를 어떻게 아냐? 이렇게 나오면 할 말 없거든. 뒷 돈 받고 팔았다는 근거가 있으면 처벌하겠지만 그걸 자료로 남겨놓을 리가 없잖아. 이게 주로 믹스견과 대형견한테 일어나는 일이야.
개식용 문화가 있는 한 믹스견과 대형견을 무분별하게 사육하는 현실은 절대 해결되지 않아.” -p.155-156

“유기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점은 똑같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람,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있는 사람만 동물을 키워야 한다는 거.
그런 환경을 만들려면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해마다 등록세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세금이 동물복지를 형성하는 데 쓰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짬밥 처리하고 담뱃값 하려고 개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질 않아. 그 사람들은 말하겠지. 개는 원래 그렇게 키우는 거라고.” -p.156

축산물로 법제화된 동물이 있잖아. 소, 돼지, 닭, 오리, 염소 등....그러면 정부는 축산물로 지정되지 않은 동물을 도살, 유통,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 축산물에 포함되지 않는 동물은 유통 경로 확인도 안 되고 검사도 안 받아. 도살된 동물이 무슨 병이 있는지, 그 동물을 먹은 사람에게 어떤 위해가 생길지, 문제가 생기면 어디를 추적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거야.” -p.174-175

거기다 개들에게 정상적인 걸 먹이는 개 아니잖아. 온갖 독성을 내뿜는 썩어빠진 음식물 쓰레기를, 그것도 그대로 먹이면 애들이 장염에 걸려서 살 수가 없으니까 항생제를 잔뜩 타서 주잖아. 축산물이 아니니까 투약에 기준치도 없도 휴약 기간도 없어.
개들이라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싶어서 먹는 줄 알아? 그거밖에 안 주니까, 안 먹으면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야. 이렇게 사육된 개들을 몸보신한다고 먹는데 보신은 무슨, 병이나 안 걸리면 다행이지. 이런 걸 국민이 먹도록 내버려두는 건 국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내팽개치는 거야.” -p.175

한번씩 개식용 관련 기사가 나거나 복날에 이슈가 되면 “난 안 먹지만 남의 음식 취향은 존중한다” “개식용은 한국의 문화다” “개고기 합법화하자” 이렇게 이야기하지. 자기들이랑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진짜 아무 상관도 없어? 육견업자들은 세금 한푼 안 내는데 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흘려보내는 핏물 똥물은 다 하수처리장으로 들어가. 그거 국민들 세금으로 운영하는 거야. 왜 육견업자들의 고질적인 불법 행위에 전 국민의 돈을 써? 왜 일주 사람들 보신탕 먹자고 토질, 수질 오염해가면서 국민 혈세까지 낭비해?
이쯤 이야기하면 꼭 나오는 소리가 개고기 합법화하자는 거지. 합법화해서 투명하게 운영하자고. 난 하라고 해.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한국 정부는 수십년 동안 개를 축산물 등록도 안 하고 합법화도 안 했을까? 간단해. 대중 식품도 아니고 수요도 줄고 있는 개고기 인정해주자고 국가적 손실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까.”  -p.176

개식용 문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개가 축산법에는 포함되면서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포함되지 않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p.199

개식용과 관련된 한국 동물보호단체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예요. 이제는 입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오늘 재판 결과도 그렇지만 기존의 동물보호법 안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문제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입법으로 가는데, 자기는 개를 안 먹지만 남이 먹는 건 존중한다는, 그게 똘레랑스고 다양성이고 멋진 건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이잖아. 키우던 개를 유기하는 사람은 비난하면서, 키우던 개를 개장수나 도살자한테 팔아넘기는 사람은 비난하지 않잖아.
어떤 사람들은 반려견, 유기견, 식용견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죠. 내가 가장 나중에 입양한 순돌이는 유기견이었던 동시에 식용개가 될 뻔했던 애예요. -p.223

진심으로 농장동물의 고통을 우려한다면 평등을 위해 새로운 동물을 축산 체계에 포함하자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미 축산 체계에 들어와 있는 동물의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농장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자고 말할 것이다. -p.226

개고기는 번식장의 폐견, 유기견, 개농장에서 사육된 개의 고기다. 질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동물의 고기고, 부패한 음식 폐기물과 축산 폐기물을 먹은 동물의 고기며, 때로는 동족의 장기까지 먹은 동물의 고기다.
또한 국가가 통제하지 않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피해를 관리할 데이터가 없으며, 그래서 안전과 위생을 담보할 수 없는 축산물이기도 하다. -p.226-227

누군가는 이런 음식을 먹는 것도 우리의 권리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권리는 필요없다.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음식이 유통되도록 방치하는 정부에게 분노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다. -p.228

그전까지 나는 키우는 개와 먹는 개를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일단 나 자신이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불쌍한 개들을 거둬서 함께 살다보니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겁니다. (...) 도덕이라는 것도 어쩌면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가깝냐 안 가깝냐, 나와 함께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도덕이 뭐 대단한 양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이토록 이기적인 ‘나’에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p.239

제가 이 대목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해서도, 함부로 단죄해서도 안 됩니다. 개를 죽여서 먹고산다는 이유로 그들이 악한인 양 매도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촬영을 허락해준 사람들, 그들은 아마 노숙자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협조해줬을 겁니다. -p.242

특히 우리나라는 동물보호법이 약하기 때문에 법률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에요. 경찰이나 공무원도 동물학대 사건은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p.266

동물을 사랑하는 일이 사람을 증오하는 일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요. 사랑해서 시작한 일인에 때때로 제 안에 증오가 더 많다고 느껴요.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까봐 겁이 나요. -p.267

예전엔 사람들이 동물보호단체를 유기동물 데려가는 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기동물뿐 아니라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게 어디예요. 동물보호단체에 맡겨놓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도 늘어났어요. 결국 시민단체에 가장 힘이 되는 건 시민이잖아요. 그래요, 앞으로 더 나아질 거예요. 그냥 가다보면 나아질 거예요. -p.268

우리나라에서 개에 관한 문제는 개식용이 시작이자 끝일 수밖에 없어. 개식용이 종식되고 번식견과 유기견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 내가 보기엔 30년, 40년, 아니면 반세기쯤 걸릴 것 같아.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 하지만 끝을 못 보더라도 가야 해. 우리가 시작해야 다음 세대가 완성할 수 있어. -p.270

동물보호 선진국을 견학한다는 취지로 독일과 일본을 갔다 왔잖아요.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그거야. 어떻게 이 나라들은 유기동물을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간단해요. 유기동물이 적으니까 안락사를 안 하는 거예요. 그런 왜 유기동물이 적을까? 함부로 동물을 키울 수 없으니가 적은 거예요. -p.272

나는 여전히 가장 보수적인 입장,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전부 없애진 못하더라도 고통은 언제나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통의 최소화를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죽는 것은 같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온갖 고문을 당하며 서서히 죽는 것과 고통을 최소화한 방식으로 단번에 죽는 것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면 ‘어차피 죽는 것은 같으니 상관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삶과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죽을 테니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고 말하지도 못할 것이다. -p.276

나는 동물을 존중하는 일과 인간을 존중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p.278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존재가 목적이라는 인식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으로서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p.281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인권 수준이 높고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인권과 동물권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관계다. -p.281

나는 비거니스트도, 실천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늘려가려고 애쓰는 사람일 뿐이다. -p.292

모든 사람이 윤리적인 선택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을지 결정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질문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응답하는 데에는 아무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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