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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11. 2018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을 찾아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하고는 한다. 화가들은 눈에 필터가 달렸나? 평범한 나무가, 꽃이, 풍경이, 지나가는 행인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특별한 모습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에게는 단순한 색이 다양한 빛깔로 표현되는 것은 볼 때마다 놀라웠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는 유명한(비록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사진 작가인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그림들이 1-2줄 정도의 짧은 단상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사진에 문외한이며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한 눈에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특별한 작품들이었다.

좋은 사진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름에도 무언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한, 그 전과 후를 상상하게 만드는 사진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진과 그림을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한 장 한 장이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 같았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에서는 하다못해 마네킹마저도 살아 숨쉬는 듯 했다. 예술가의 눈이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마네킨, 사울 레이터





사울 레이터는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가 사진을 해보라는 권유를 듣고 사진가로 전향했다. 이후 30년간 성공적인 사진가로 활동했는데, 영화 <캐롤>의 감독인 토드 헤인즈 역시 캐롤을 제작할 당시 사울의 사진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캐롤>은 내용도 좋지만 영상이 특히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 책에는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그림들도 같이 실려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같이 작업을 하면서도 밤마다 그림을 그렸다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정말 아름답고 독특한 작품들이라 놀랐다. 더불어 자신의 분야에서 그토록 인정받는 예술가였음에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열망과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요하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울 레이터의 그림들
사울 레이터의 그림들


사울 레이터의 그림들



사진 및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그림(사진)과 아주 짧은 글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동안 싱크대 앞에 서서 다 읽었다. 참고로 사진을 볼 때는 꼭 제목을 같이 봐야 한다. 단순하지만 기가 막히게 특징을 포착해낸 제목에서 그의 은은한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장례식으로서의 결혼식, 사울 레이터


몬드리안 분위기의 인부, 사울 레이터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 -p.91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p.104

나는 색의 선구자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내가 선구자인지 몰랐지만, 선구자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저 쭉 계속하기만 하면 선구자가 된다! -p.161

사진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사울은 늘 자신이 화가라고 생각했다. 매일 작업하며 수천 점의 작품을 그렸다. -p.274

사울 레이터에게는 휙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을,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것을, 일상의 은밀한 순간을 보는 눈이, 화가의 눈이 있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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