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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Jul 26. 2020

박원순 얼룩 닦는 서울시 …모르쇠 혹은 입막음

박원순 성추행 의혹, 잘 모른다면서 피해자는 근거 없다고 주장하는 모순

서울시청은 깨끗하게 표백된 편의점 같았다

핏물이 흐르면 하얀 멸균복이 달려와 박박 닦는 곳


박원순 시장이 죽자 공무원들은 태연히 얼룩을 지웠다. 그들은 시장이 사라진 것도, 출근을 안 한 것도, 고소당한 사실도 모른다고 했다. 락스로 뇌를 닦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고있었다. 경찰보다 일찍 실종을 눈치채 찾아 나섰으며, 결근을 확인해 일정을 취소했고, 성폭력 문제를 두고 회의까지 했다. 참혹하게도 이기적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던 서울시는 시장이 숨진 다음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거나 근거 없는 내용을 유포하는 일은 삼가주길 바란다" "법적으로 엄중히 대처하겠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했으면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틀렸다고 주장했다. 지독히 비논리적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사건이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고 근거없는 내용'이라서 유포하면 '법적 조치'하겠다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문미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다.


공무원들은 주저 없이 피해자의 입을 막았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예고한 날, 서울시는 기자들에게 또 메시지를 보냈다. "유족들이 온전히 눈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자회견을 재고해주길 호소한다" 유족보다 먼저 눈물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오히려 피해를 주장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수시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피해자 측이 기자를 만나는 건 막아섰다. 뒤늦게 여성가족실장은 "막는 게 아니라 미루려던 것이었다" 해명했고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막지 않았다"며 빤히 쓰인 글씨 조차 부정했다. 구구절절 책임회피가 장마처럼 지리했다.


피해자에게 기자회견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한 서울시의 문자메시지. 공동 장례위원장은 여당 대표인 이해찬.


서울시가 조사하겠다고 밝힌 건 사건 6일 뒤였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부르며 의혹을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폄하해놓고 갑자기 셀프 조사를 선언했다. 의혹을 '일방의 주장'이라 일축해놓고 느닷없이 "2차 피해를 방지하겠다"라고 젠체했다. 추상적인 단어들이 황망하게 뒤얽혔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시장이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 우리는 모른다. 모르면 알기 위해 조사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모르면서 피해자를 비방했고, 여론이 악화되자 급히 조사단을 꾸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위선이었다. 서울시는 조사단을 만들겠다고 밝히기 전,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고 발표했다. 그는 피해자가 비서일 때 무려 비서실장이었다. 조사단도 안 꾸렸는데 사건이 일어난 부서의 간부는 책임질 게 없다는 결과부터 내놓은 것이다. 기사로 쓰기 민망할 정도로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서울시는 조사단을 꾸리지도 않았는데 서정협 권한대행은 관련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거짓말하는 서울시만큼

아무것도 모르면서 쓰는 기자들 상황도 암담했다


폭우처럼 가짜 뉴스가 쏟아져 실종 첫날부터 범람했다. 시신이 발견됐으며, 병원으로 이송됐고, 유서가 나왔다는 이야기들. 곳곳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사가 솟아났고, 두더지 잡 듯 방망이로 두드려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힘에 부쳤다. 언론사에서 서울시를 출입하는 기자는 시청뿐만 아니라 대개 여성가족부와 행정안전부도 함께 챙긴다. 그런데 서울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숨지자 시청뿐만 아니라 여가부도 불이 났다. 이 와중에 서울시 수돗물에 깔따구 유충이 나왔고 재개발 이슈도 커졌다. 폭우가 내리니 행안부에 속한 소방청도 시시각각 뉴스를 쏟아냈다. 온전한 마음으로 사실을 쫓기 버거웠다. 기자실에 앉아있으면 아무거나 닦는 걸레가 된 기분이었다. 조선일보 기자가 시청에서 서류를 훔치다가 걸렸다는 뉴스를 보았을 땐, 결국 터질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공정에 매몰돼 진실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현장은 참담했다.



그리하여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데, 얼굴들이 떠올랐다. 미간을 구기며 모른다고 화내는 얼굴. 눈을 피하며 쟤가 안다고 미루는 얼굴. 무표정으로 매뉴얼처럼 모른다를 읊는 얼굴. 이 와중에 모두에게 비친 기자의 얼굴은 어떤 모양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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