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정치부25│스마트폰 없이 못 살아
열이 펄펄 났다. 포니의 몸이 화르륵 타올랐다가 급히 식었다. 까무룩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포니는 여의도 63 빌딩 58층에서 감기에 걸렸다. 체열이 60도까지 치솟았다. 나는 격렬하게 포니를 흔들며 두드려댔다. 포니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하얀 몸이 차게 식었다.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식사를 마친 정세균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정진석,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새까만 양복을 형제처럼 똑같이 입고 걸어나왔다. 기자들이 쫓아가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자 별 일 없었다고만 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으로 별 일 없었다는 싱거운 대답을 사내에 보고했다. 창 밖에 밤 비가 속살거렸다. 장마가 막 시작될 참이었다.
하늘에서 세숫대야로 비를 퍼부었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었다. 굵은 밧줄 같은 빗줄기가 경주마를 채찍질하듯 사방에서 몰아쳤다. 그렇게 질척거리는 신발을 끌며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은색 벤츠가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입구를 달리며 시원하게 물을 갈겼다. 물방울이 턱까지 튀었다. 흰 어깨가 보였다. 벤츠 뒷자리에 앉은 교복 차림의 소녀는 빗물의 위협으로부터 경호받으며 안락하게 고급 아파트로 들어갔다. 마을버스를 타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짜증낼 새도 없이 젖은 맨다리를 끌고 저벅저벅 빗길을 뚫었다.
스마트폰을 고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었다. 언제 무슨 전화가 걸려올지 몰랐기에 스마트폰이 고장 나자 시시각각 초조해졌다. 여전히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60도까지 뜨거워졌다가 식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원 버튼을 두드려도 켜지지 않았다. 전화기가 고장 났는데 이상하게도 내 일상이 고장 난 것 같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주말에 자는 것 빼고는 일상이랄 것도 없는데 왜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해졌다기보다는 자조에 빠졌다.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스마트폰이 망가졌다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욕을 하는 내가 모래만큼 작아서 자조에 빠져 웃다 보니 이상하게도 유쾌해졌다. 곰곰이 따져보니 왕궁의 음탕은 왕궁 출입기자가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자본주의는 분업에 기초해있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전화 좀 하지 마!"
그는 빼애액 소리를 지르더니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내 속에서 열이 치솟았다. 정치인들은 63 빌딩 58층에서 별 일 없었다고 현장 기자들에게 대답해놓고는 전화로 몇몇 기자들에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내려놓기'에 합의했다고 흘렸다. 인터넷에 기사가 나오자 현장까지 가서 직접 얼굴 보고 물어봤던 기자들은 바보가 됐다. 한 밤 중에 언론플레이를 해놓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두 사람은 안 받고 한 사람은 되려 화를 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가 2020년이었고 4년이나 남았다는 뜻이었다. 잠시 가까스로 켠 스마트폰이 다시 꺼졌다.
"부품이 없어서 고칠 수 없어요. 고객님 책임은 아니지만 규정상 교환은 안 되고 기다려 보세요"
꺼졌다 켜졌다 반복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멍청하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말하는 마론인형처럼 수리 기사는 영혼 없이 똑같은 말을 읊고 있었다. 그냥 갑자기 고장 났으니 고객 책임은 아니고, 품질보증기간이지만 교환은 안 되며, 수리는 해줄 수 있지만 부품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아무것도 안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어제 내게 짜증낸 정치인이 떠올랐다. 유권자 책임은 아니지만 규정상 교환은 안 되고 무턱대고 4년 기다려봐야 하는 그들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왠지 내 불평이 과대 포장된 것 같아서 멋쩍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대의를 상실해서 짜증이 치밀어 오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스마트폰이 고장 나서, 내가 고작 고장 난 스마트폰 때문에 종일 초조하게 산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을 뿐이었다. 어젯밤 내게 짜증 낸 정치인도 트위터에 "기자님들 제발 전화하지 마세요. 저도 좀 살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온종일 울려대는 전화기 때문에 인생이 엉망진창이 된 건 나만이 아니었다. 기자도, 정치인도, 여기서 내게 부품이 없다고 해명하는 스마트폰 수리기사도 모두 피곤하게 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걸 만들어 놓고서 정작 자기는 세상을 떴다. 치사한 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