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상담원, 경쟁이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고객님. 제가 일주일 동안 도와드렸는데 정말 서운하고 화가 납니다."
통신사 상담원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객에게 보낼까 말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야겠다는 의지가 단호했다. 휘리릭 첫 문장을 보자마자 문자메시지를 지워버렸다. 지문을 닦는 도둑처럼 죄의 증거를 덮어버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꽤 오랫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따금씩 서비스직으로 단련된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떠올랐고 이내 감정을 드러낸 문자메시지가 생각났다. 이질적인 두 목소리. 높은음으로 고객님을 부르던 소리가 화로 변해 돌아온 이유는 태블릿 PC 때문이었다. 나는 일주일간 세 번이나 그녀와 통화해 태블릿을 예약했는데 마지막에 다른 상담원이 전화해 계약을 채 간 것이었다. 그들 사이의 실적 전쟁에 나는 무지했고 결과적으로 애먼 사람에게 트로피를 쥐어주었다. 기자로 치면 설득을 다 해놓은 취재원이 느닷없이 다른 회사 메인 뉴스에 나오는 기분이랄까.
친절이 과도했으므로 목적은 투명하게 보였다.
결국 팔고야 말겠다는 의지. 상담원은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방탕한 할부의 세계로 초대했다. 나를 무너뜨린 건 그녀가 제안한 '데이터 요금 0원' 혜택이었다. 와이파이 없이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며 내 안의 간악한 소비 요정을 깨워냈다.
더 얇고 더 가볍고 더 예쁜 태블릿에 무료 인터넷까지. 그녀의 제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되어 근검절약을 부르짖는 머릿속 최후의 계산기를 불살랐다. 철의 장막은 무너졌고 자본주의의 모순은 해소됐다. 할부를 통해 역사의 종언이 실현되려는 찰나. 지갑에 신용카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드 번호를 불러야 계약이 완성되는데 항상 가지고 다니는 체크카드로는 할부 거래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카드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1시간 뒤 전화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나를 둘러싼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
거래의 관계는 다른 상담원의 전화 한 통에 무너졌다. 공교롭게 1시간 뒤 전화가 왔고 받아보니 통신사 상담원이였다. 안타깝게도 상담원의 목소리는 모두 비슷했고 나로서는 구별해낼 능력이 없었다. 전산 자료를 통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던 새 상담원은 자연스레 카드번호를 요구했고 계약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의 밝고 상냥한 톤으로 상담원이 신용카드를 찾았느냐고 물었다. 말을 더듬으며 그새 다른 사람이 전화를 했고 계약을 완료했다고 답했다. 그녀는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고 한 시간 뒤 화가 났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저 태블릿 PC를 구입했을 뿐인데 나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를 위해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통화하며 노동한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그저 스쳐가는 감정이라면 글을 쓰지도 않았다. 명치 속 깊은 곳에서 티백이 우러나 듯 미안한 감정이 가만하면서도 진득하게 꽤 오랫동안 번졌다.
통신사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지금도 그녀는 시내 어느 사무실에서 오래된 헤드마이크를 쓰고 상냥한 목소리로 경쟁을 견디고 있을 터였다. 억대 연봉으로 유명한 본사 직원들이 정규직이라는 신분으로 중산층의 삶을 영위할 때 자회사의 협력회사에서 계약직과 무기계약직으로 나뉘어 일하는 상담원은 계약 한 건에 마음을 졸이며 매일의 실적을 초조한 눈으로 좇을 게 분명했다. 슈뢰딩거의 전화기랄까. 상담원은 전화를 받기 전까지 통화의 내용이 항의인지 구매 문의인지 장난전화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노력과 관계없는 무작위적인 전화가 자신의 평가와 실적을 결정한다. 부당했다. 내가 어느 상담원과 통화해서 계약을 하든 전화를 건 통신사는 동일한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코로나 집단 발병 사태를 취재하러 구로의 한 콜센터에 들렀을 때 그녀가 다시 떠올랐다. 콜센터에 출근하기 전 여의도에서 녹즙 배달을 했다는 상담원의 동선을 보며, 내게 화낸 상담원에게 실적 한 건이 얼마나 중요했을지 가늠해보았다. 상냥한 목소리가 상냥하게 대접받는 세상이 올까. 기사를 쓰면서 계속 맴도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