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수 있을까>를 읽다가
나는 가난에 대한 연민이 강한 사람이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여러 기관에서 자원봉사로 저소득층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간혹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도 만났다. 학교가 끝난 후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의 언니, 누나, 엄마가 되어 숙제를 봐주고, 문방구에서 파는 조약한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참 좋았다. 간혹 나를 엄마라 부른 아이들을 만날 때면 마음 한편이 참 아팠다.
가난한 사람을 지나칠 수 없는 건 나의 유년시절 때문이다. 부모님은 성공보다 실패를 자주 맛보셨고 어린 나는 여유로움보단 빠듯하거나 부족한 것에 익숙했다. 부모님은 늘 맞벌이를 하셨지만 우리 남매의 급식비나 등록금을 해결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은 학교에서, 나라에서 때론 이름도 모르는 어른들이 채워주었다. 덕분에 동생과 나는 예민하긴 해도 삐뚤지 않은 인간으로 성장했다. 좋아하는 지인들에겐 스스럼없이 나의 유년시절을 말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동생과 나 사이엔 알 수 없는 동지애 같은 게 있다. 스무살이 된 이후 아르바이트와 군인이란 직업을 찾아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진 탓에 일찍이 찾아온 삶의 피로감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공유한다. 또 (부유하진 않지만 부족할 것 없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종종 뷔페에서 식사하는 일이, 지하철 역 노숙인들을 지나치는 일이 불편하다. 넘치는 것에 대한 어색함일 수도, 또 허기짐에 대한 공감일 수도 있다.
요며칠 테오도르 칼리파티테스의 <다시 쓸 수 있을까>를 읽는다. 그리스에서 스웨덴으로 이민해 성공한 소설가 테오도르는 77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더 이상 무얼 쓸 힘이, 감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를 멈추고 그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도처에 널린 가난과 그리스 난민, 이방인들을 아파한다. 부분 부분 그의 글이 마음에 남는다. 문장마다 그에겐 아직 쓸 힘이,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걸 느꼈다. 결국 그는 은퇴를 번복하고 그 기간 동안의 수필을 엮어 책 <다시 쓸 수 있을까>를 완성한다.
가난한 사람은 죽을 힘을 다해 선다. 그리곤 누군가 건넨 격려 한 마디, 호의 하나를 추진체 삼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내가, 내 동생이 그랬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시간을 쏟은 것도 자라면서 남들에게 받은 것들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성장의 팔 할은 누군가의 착한 마음이다.
가난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시대다. 초등학생들은 교실에 앉아 어느 브랜드 아파트, 몇 동(동에 따라 몇 평인지 알 수 있다.)에 사느냐 묻는다. 학원에 가야만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서로의 연봉과 집안을 저울질한다. 주머니 가벼운 부모는 은퇴마저 쉽지 않다. 가난보다 있는 사람의 세속적인 가치관이 배려받는 시대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 서도 괄시받기 쉽단 뜻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순수했던 탓인지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다. 하고 싶던 미술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느라 불편하고 답답했지만 그게 자존감을 긁진 않았다. 선생님들은 나의 부족함을 메워주기 위해 늘 이것저것 알아보셨고, 부모님은 물질 대신 마음으로 어린 나를 안아주었다. 모두 선의와 사랑이다. 그런 마음이 어른이 된 나에게 남아 있는지 되돌아본다. 시대 탓을 하기에 나도 너무 차가워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