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과 생활, 2018 SPRING VOL.60 기고
주말 오후를 맞아 겨울 동안 묵히다시피 했던 이불을 털어내고 산책을 나갔더니 개천변에 나란히 늘어진 개나리가 벌써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려 움찔거리고 있었다. 봄이 다가왔다. 곧 연둣빛의 이름 모를 새싹들이 돋아나고, 앙상하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도 새 잎이 파릇하게 돋아나겠지. 이런 날에는 그 아래 엎드려 흙냄새 한 모금을 마시며 대지가 선사하는 봄의 설렘을 느끼고 싶다. 가끔 이렇게 좋은 흙냄새를 만나게 되면 병 속에 담아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든 뚜껑을 열어 한두 모금 마실 수 있다면 내 삶에 긍정 에너지가 생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해오던 중, 최근 찾은 전시회에서 우연히 병에 담긴 흙냄새 같은 그림을 만났다. 바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 중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금강내산’이다.
많은 그림 중, 유독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작품의 미학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2002년 고등학생이었을 때 다녀왔던 금강산 여행의 감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려 16년 전의 일이지만 북한 땅으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대한 설렘, 옛이야기 속에서나 들어보았던 금강산을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을 설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속초항에서 설봉호라는 큰 유람선을 타고 4시간여를 항해하여 북한 고성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외금강, 해금강 위주로 여행을 즐겼었는데, 특히 외금강의 어느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본 금강산의 장대한 파노라마는 잊히지 않는다. 과연 옥황상제의 명으로 전국의 잘생긴 바위들이 모여 일만 이천봉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왜 생겼는지를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무수히 많은 바위 봉우리들이 제 나름대로의 형상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고, 하얀 구름들은 봉우리에 걸려 구멍이라도 뚫릴 듯 너무나도 가깝게 다가왔다. 여행 내내 태양빛도 강렬했다. 그럴수록 더 시원 해지는 그늘,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앉아 쉬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간간히 날아와 머리 위에 앉아 쉬어 가던 풀벌레들은 내가 사람인 줄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로 금강산의 풀이요, 돌이요, 꽃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녁이 되면 설봉호로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늦은 밤 선상에서 바라보았던, 쏟아질 듯한 별 무더기를 머금은 밤하늘은 금강산이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태초에 뜨거웠던 육지가 출렁이며 일으켰을 거대한 파도들이 일만이천 개의 봉우리를 만들고, 파도가 서로 부딪혀 일어나는 물보라와 같은 조각들이 하늘에 박혀 별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태초에 뜨거웠던 육지가 출렁이며 일으켰을 거대한 파도들이 일만이천 개의 봉우리를 만들고, 파도가 서로 부딪혀 일어나는 물보라와 같은 조각들이 하늘에 박혀 별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해설을 읽어 내려갔다. ‘금강내산’은 여러 봉우리와 기암괴석 같은 자연 풍경들을 하늘을 날며 내려다보는 듯한 관점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비록 작가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을 지라도 아름다웠던 명소들이 있다면 화폭에 함께 그려 넣기도 했다. 즉, 자연경관에서 받은 감흥과 정취를 반영하고 재해석하여 그려졌기 때문에, 진짜 경치를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인 동시에 추상화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렇게 해설을 읽다 보니 어떤 여행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읊었던 인상 깊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삼분실상 칠분상상(三分實像 七分想像). 여행을 할 때에 30%는 실상을 보고 70%는 상상을 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금강내산’은 ‘삼분실상 칠분상상’으로 구현해 낸 겸재 정선만의 독창적인 여행 기록인 것이다. 어쨌든 정선은 그림으로써 당시의 왕과 사대부들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금강산을 가보지 못한 후손들에게 그 감동을 대신 전해주고 있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더욱 감사한 일 일 것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겸재 정선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찾아보았다. 어느 날 겸재의 아내가 이웃으로부터 비단 치마를 빌려 왔다가 고깃국을 엎어 큰 얼룩이 지고 말았는데, 겸재가 그 얼룩진 비단 치마를 가져다 놓고 붓을 놀려 금강산의 봉우리와 계곡들을 그리고, 남는 자리에 해금강까지 그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림이 그려진 치마를 주인에게 돌려주었더니 기뻐하며 오히려 사례를 하였다고 한다. 이 정도로 여든 말년까지 금강산을 그리고 또 그렸던 겸재 정선. 금강산의 신선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금강산 제일봉의 큰 소나무가 되어 홀로 푸르를 것이라는 성삼문의 시와 같이 어느 바위 봉우리에 도포자락 펼치고 홀로 앉아 안개 자욱한 금강의 산맥을 관조하며 붓을 흘리는 정선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연히 ‘금강내산’을 만나고 나니 생각만 하고 찾지 못했던 수많은 우리나라의 명소들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 눈과 귀와 가슴에 품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보지 않고 만나지 않고는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는 어느 문인이 남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아름다운 문장을 되새기며 다짐해 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 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