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자존감에서 벗어나 세상을 두드리며, 솔직한 나를 알아가기 위해
나는 "질문"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서슴없이 적극적인 아이였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만큼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시도하고 도전했었다.
학교에서 반장, 회장역할을 자주 맡았고,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사교성이 좋은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 스스로에게는 굉장히 조급하고, 생각과 걱정이 가득하며 계속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어쩌고 보면 내성적이고 예민한 이면적인 아이였다.
학교 복도에 쓰레기가 보이면 '쓰레기가 공공장소에 있으니 내가 먼저 깨끗하게 치워야지'라는 생각보다 '반장이니까, 남들이 보니까'라는 이유로 쓰레기를 주웠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내 관점에서보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시선을 신경 쓰다 보니 내 주장이 크게 없고 모난 것 없는 그냥 순리대로 흘러가려고 하는 Yes맨이 되어가고 있었고,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순간 그런 내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궁금한 것에 대해서만큼은 주저하지 않고 질문했고, 호기심이 생긴 것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탐구하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는 질문이 정말 많은 학생이었다. 중, 고등학생 때는 하도 수학과학 선생님 책상에 찾아가 질문을 하다 보니 가끔 다른 선생님들이 '왜 이렇게 많이 찾아오냐', '교무실에 살고 있는 거 아니냐'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모르는 게 생기면 무조건 선생님을 붙잡고 질문하고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끊임없이 캐나 가고 알고 싶어 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철학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벗어나 서울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아직도 Yes맨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보내고 싶었기에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가식적으로 대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건강하지 못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솔직하게 대하지 않다 보니 인간관계도 진실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환경이 바뀌고, 다양한 경험이 쌓이고, 나의 시야와 관심사가 넓어질수록 항상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래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질문했다.
나는 어떤 것에 가슴이 뛰는가?
숨이 막힐 정도로 좋아하는 것을 좇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것들을 하나씩 해내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를 위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여행. 가장 솔직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
독도경비대. 내 자존감을 찾기 위한 도전
콜드메일. 최대한 많이 묻고, 배우고 싶었다.
스타트업. 세상을 향한 나의 메시지와 도전
언어. 세상을 향한 새로운 관점과 이해, 또 다른 기회의 문
Paying it forward.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친절
음악. 잃어버렸던 어렸을 적 꿈을 다시 되찾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가슴이 뛰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내 한계를 극복해 내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국토종주길 660km를 횡단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아버지와 남동생을 이끌고 한 번 더 다녀와서 그렇게 총 2번의 '자전거 국토종주'를 완료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 강을 따라서, 드넓은 들판을 따라서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 보면 저 멀리 지평선에 커다란 산이 온 사방을 뒤덮고 있는데, 그때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내 인생에서 미치도록 무언가가 좋았다거나 가슴이 쿵쾅거릴 만큼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을까 되묻게 되면서 지금이 그 순간 중 하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벅차오르는 소중한 순간 중 하나가 되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냈다는 큰 성취감을 안겨준 경험이었다.
군대에 입대하기 한 달 전에 계획 없이 배낭 하나메고 전국을 돌며 국내여행을 다녀왔다. 몇 달 뒤 입대를 해야 하는 사실에 막막했고,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불안했고,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안 될 것들에 대한 이유에만 매몰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뭐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방을 뛰쳐나왔다. 대책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운이 좋게도 친절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전통시장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에어비엔비 숙소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다. 그분들이 전해준 이야기 덕분에 나조차도 확신이 없던 나의 선택에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의 정의를 사전에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즐거움과 기쁨을 줄 만큼 예쁘고 곱다.
2. 감탄을 느끼게 하거나 감동을 줄 만큼 훌륭하고 갸륵하다.
그런데 여기서 표현을 살펴보면 '~답다'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아름'과 같다, '아름'스럽다 와 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사실 '아름'은 '나'를 뜻하는 단어이다. 즉, 나는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뜻을 의미한다.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솔직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이고, 가장 나다울 때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에게는 중요한 시간이다.
입대시기가 다가올 무렵, 사실 독도경비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체험학습으로 방문한 인연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 자존감을 위해서, 좀 더 내 심장이 뛰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독도경비대를 선택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던 혼란 가득한 시기에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21개월 모든 시간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냈고, 그 누구도 쉽게 방문할 수 없는 한국인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인 곳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울릉도 주민, 여행객과 친해져 보기도 했고, 독도를 방문한 관광객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가슴이 뜨거워져 보기도 했다.
특히, 울릉도를 떠나 오랫동안 꿈꿔왔던 독도에 접안하여 나의 독도에서의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그 배 창문너머로 보이는 독도를 보고 오로지 내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만 귓가에 맴도는 순간, 나는 엄청난 자부심과 열정을 느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을 좇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순간이었다.
독도경비대 덕분에 애국심이 커졌지만 무엇보다도 자존감이 많이 올랐고, 내 인생에 있어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알고 싶어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나의 부족함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많이 묻고 배웠어야 했다.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정말 절실했기에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질문하려고 했다. 그 용기에 박수쳐주는 사람들, 귀 기울여준 사람들 덕분에 넓은 세상을 볼 기회를 얻었고, 용기를 얻어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 제대로 파헤쳐보고 싶어 우선 닥치는 대로 네트워킹 파티, 컨퍼런스, 설명회 등 도움이 될 만한 주제를 다루는 행사는 다 참여하려고 했다. 쭈뼛쭈뼛 거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온 적도 많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스타트업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스타트업을 초기부터 교육해 주는 기관 같은 게 없을까 하고 찾아보다가 1년 정도 체계적으로 글로벌 스타트업교육을 계획 중인 교육기관을 알게 되었다. 신나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쓰는 도중 야속하게도 프로그램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쉬운 마음에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고자 인터넷을 뒤져가며 대표님의 이메일을 알아내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간절했기에 팔로우업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나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8 - 10번째 이메일즈음 되었을까? 진심이 통했는지 대표님이 사무실로 나를 초대한다는 답장을 주셨고, 그렇게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도 여러 미팅사이에 있던 3분 남짓에 불과했고, 나는 명함과 함께 프로그램은 무기한 연장이라 도와줄 수 없다는 애석한 답변만 들은 채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내가 원한 만남은 아니었다.
뭐 10번도 이메일을 보냈었는데 이제 명함을 받았으니 엄청난 진전이 아닌가라고 한 번 아쉬움을 다스리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바로 대표님께 휴대폰으로 문자를 드렸다. 한 번 더 만나 뵙고 싶다고. 다행히 그 주에 한 번 더 찾아오라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내 PR을 확실히 하기 위해 발표자료를 만들어가서 짧은 시간에 임팩트를 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두 번째 만남 때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나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 열정을 좋게 봐주셨는지 발표중간 즈음에 나에게 제주도에서 준비하는 스타트업&디지털 노마드 프로그램이 있는데 함께 돕지 않겠냐며 뜻밖에 새로운 제안을 주셨다. 그렇게 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기회를 받게 되었다.
절실했기에 9번 넘어지면 10번째 일어난다는 심정으로 문을 두드렸고, 그 끈질긴 시도가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때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면 가능하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제주도에서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여러 스타트업들을 만나면서 스타트업 창업과정을 가까이서 배울 수 있었고, 내가 몰랐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보이는 세상이 넓어지면서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함께 다시 한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에게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제주도에서의 뜻깊은 시간 이후 early-stage startup, coworking space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래저래 기사며 비즈니스를 찾아보다가 global coworking space 회사의 co-founder분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인터넷에 연락처를 검색했고, 연락을 드린 끝에 감사하게도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그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왜 스타트업이 하고 싶은지 내 이야기를 물어보시면서 그분의 이야기와 함께 스타트업을 통해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진심을 다해 나의 입장에 서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래 이야기를 첨언하셨다.
사실 아까 점심때, 동료와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 내가 너 이야기를 했고,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료가 '모르는 학생인데 굳이 왜 만나고 도와주냐, 시간낭비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너처럼 모르는 때가 있었고, 열정적이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너의 열정이 담긴 메시지를 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냈다. 그러니 부디 좋은 시간이었기를 바라고, 내 조언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너의 도전을 응원하겠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조언에 가슴이 뛰었고, 뭔가 멍한 느낌도 들었다. 사실 이때 처음으로 내 꿈에, 콜드메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간직접적으로 받아봤다. 인연이 없는 누군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봄과 동시에 도와줄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기에 거절과 실패를 가볍게 털어버리고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도전을 하는 데 있어 수많은 거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물어보면서 배워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도움의 손길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고, 그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다시 일어나는 정신으로 그렇게 도전을 이어나갔다.
누군가 나에게 왜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되었냐라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가진 비전으로 직접 세상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임팩트를 끼칠 수 있는 도전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단순한 Follower가 아닌 Pioneer로서 주체적으로 세상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시대의 흐름에 앞서 cutting edge 기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임팩트를 전하고, 세상에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일에 가슴이 뛰었다. 나의 비전과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나의 도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행복한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몰입해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안 될 이유부터 찾기 시작해서 시작도 못한다면 후회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아이디어를 최대한 빨리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마침 학교에서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의 차이점에 대해 배울 기회가 생겼다. 문장만 읽어서는 크게 와닿지 않았고, 막연하게 경쟁자가 없으니 블루오션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직접 내가 이 문제에 도전하면서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길거리 장사'를 선택했다. 내가 가진 자금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흐름을 만든다는 것이 무서우면서도 꼭 경험해보고 싶은 나에게는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 블루오션이면서 많은 허들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장을 찾다 '성인용품' 시장을 선택했다. 문화적, 심리정서적으로 보수적이고 경쟁자도 거의 없지만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산이라고 판단해서 도전할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포인트는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컨셉이었다.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데이트코스처럼 부스공간을 기획하고, 상품 디자인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아기자기하게 꾸며 심리적 거리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트전시회 같은 느낌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재미난 섹슈얼 아트사진들을 벽에 걸었다. 성인용품을 커스터마이징 할 때, 귀엽거나 재밌는 사진을 스티커로 만들고 빨강, 초록 색상으로 패키징하여 귀여운 제품으로 포지셔닝을 하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팝업 이벤트성으로 시도했지만 부스공간의 퀄리티, 제품의 안정성, 고객 동선 파악 미흡 등의 문제로 제대로 상품 판매조차 해보지 못한 채 실패해 버렸다. 하지만 직접 제품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생각에만 그쳤던 단계에서보다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피부로 와닿은 가장 큰 배움은 아이디어만 생각하는 단계와 그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단계는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 시장과 솔루션을 끊임없이 탐구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넘어 그 싸이클을 이해하고, "직접 부딪히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탐구했다. 그 차이는 엄청나다.
제품을 만드는 제작자는 소비자가 신경 쓰지 않는 귀퉁이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계획하고 설계하면서 설득력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블루오션, 즉 제대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내 제품을 판매하는 것부터 왜 이 제품이 당신에게 필요하고, 어떤 가치를 어떻게 줄 수 있는지 등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설득을 해야 하는 허들이 존재한다.
이 도전을 해보기 전과 후에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구했었다.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아쉬웠던 반응이
'어차피 뭐 안 되는 거였는데 왜 하냐?', '도전을 위한 도전 아니냐. 이런 도전은 영양가가 없지 않냐', '이런 거 그만하고 남들처럼 커리어에 도움 되는 스펙들이나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
라는 말이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잘 안 될 줄 알고 있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는 배움이었다. 하지만 안 될 이유부터 찾기 시작하면 그 어느 것도 시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안 될 이유보다는 어떻게 해야 그 도전을 해낼 수 있고, 솔루션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고, 그 시도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이미 과거에 누군가에 의해 증명되었더라도 상황이 다르고, 방법이 다르고, 내가 다르다면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 벽을 깨면서 나아가야만 나의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보고 성장할 수 있다. 직접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배움에서도 마음가짐에서도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묻고 배우면서 몸으로 부딪히며 실패하고, 또 한 번 배워나갔다.
내가 직접 경험했고, 평소에 관심이 많은 문제를 소프트웨어 기술로 해결해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전달할 수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가슴 뛰는 행복한 도전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상생활부터 주변 사람들의 대화, 행동을 포함한 내 생활반경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되새김질해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시 돌이켜 보았다.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비전이 무엇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찾는 동시에 나에게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학가 앞에 거주했기 때문에 새벽이나 아침에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길을 따라 쓰레기가 줄을 맞춰 버려져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회식, 음주 문화, 대학생들의 과음 등이 고스란히 음식물쓰레기 배출로 연결되는 안타까운 환경오염 문제였다. 매일 접하는 의식주와 맞닿아 있으면서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여러모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나로서 이 문제해결을 통해 건강한 식문화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통기한 임박상품, 재고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도전하게 되었다.
서울 내에 있는 번화가와 술집이 많은 지역을 리스트업 해서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했고, 카페부터 술집, 식당 등 다양한 소상공인 분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듣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장사 마진, 물류 유통 등 외식업 장사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를 알아보고자 했다. 내가 직접 식당 창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고객"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거만하게도 초기에는 우리끼리 생각한 가설대로만 움직이고 서비스를 개발하려고 했었다. 충분히 소비자의 문제점과 니즈를 예상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였다. 역시나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우리가 예상한 가설과는 전혀 다른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웬만한 소상가게들은 크게 마케팅 전략은 따로 없고, 어떻게든 마케팅 채널 수를 늘리려고 한다. 가게노출빈도를 높이는 것이 곧 매출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매출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기에 소상가게들이 우리의 메인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유입되었다기보다는 우리 서비스를 하나의 마케팅 채널로써 이용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재고 상품이나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우리 서비스를 통해 판매하게 되면 이는 곧 소비자들에게 가게 매출의 부진을 방증하는 꼴로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점포의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리스크로 사장님들은 판단한다. 특히 주점 업종의 경우,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몰리는 특성이 강하므로 재고 상품을 판매하기보다는 손님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면서 재고를 소진하는 전략이 오히려 손님 재방물윤과 매출에 직결된다고 한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 커피를 살 때, 전단지를 돌리면서 등 물불 가리지 않고 많은 시간을 지역주민민들과 보내고, 잠재고객을 인터뷰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다양한 고객들의 상황, 니즈 등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로덕트를 만들기 전, 개발 중,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객 세그먼트를 넓혀가며 꾸준히 고객들을 만났다. 특히, 1개의 과일업체와는 긴밀히 협업을 맺어 함께 새로운 상품개발을 시도해 보고, 가게홍보를 위해 팸플릿 등을 만들어 주고, 추석연휴 대량주문에 대비해 가게 일도 도왔다. 직접 발로 뛰면서 물류, 주문, 재고확인, 판매, 홍보 등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매출증진 전략도 함께 모색하면서 외식산업 전반에 대해 빠르게 알게 되었다.
우리 가설을 협력업체와 함께 시장에 우리 서비스와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테스트하고, 피봇팅도 하면서 PMF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제시한 솔루션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우리가 고객이 필요로 하는 니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협력업체의 판매를 돕고, 나름 소액의 매출을 내기는 했지만 소상공인이라는 넓은 고객 세그먼트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솔루션과 PMF를 찾지 못해 아쉽게 서비스를 정리하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느끼는 바가 많았다.
고객의, 고객에 의한,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전달하고 싶은 대로가 아닌 활발한 교류를 통해 충분히 고객을 이해하고, 페인포인트를 캐치해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했고, 공감하는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직접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시장조사와 고객개발을 시도했다. 아이데이션하고 시장에 테스트하고, 고객과 협업도 했다. 다양하고, 치열한 시도들을 통해 실행력이 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나에 대해 더욱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이를 활용해 선두 할 수 있는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시대 era가 가지고 있던 관심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각 시대마다의 시대적 흐름에 파생되어 많은 연구와 발전이 이루어진 만큼 내가 도전하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깊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시대는 단연 AI이다. AI가 세상을 통째로 휘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AI agent를 넘어서, AGI, 다양한 산업으로의 AI 활용 등을 바라본다면 그 기회가 무궁무진하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넓은 관심사를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도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꾸준히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싶다.
나는 언어가 단순히 소통의 수단이 아닌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제시해 줄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어를 통해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다름을 이해하고, 각자만의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이미 차고 넘치도록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 밥을 먹듯이 습관처럼 해오고 있다. 그 덕분에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음을 실감한다. 나는 더 나아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를 통해서 미국문화와 글로벌무대를 향한 도전정신, 다양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통해서는 세계사를 이해하면서 역사의 흐름,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로도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는 그 나라 배경, 삶의 방식, 문화, 관점 등 다양한 면이 녹아들어져 있다. 한국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재밌었던 경험은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sept이라는 숫자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September라는 단어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이 호기심이 sept과 September을 연결 지었고 자연스럽게 Julius Caesar을 시작으로 세계사, 종교의 시대흐름, 미술, 음악에도 연결이 된다는 점을 깨우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에게 아무 생각 없이 September을 9월이라고 외울 때와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나라는 관심의 표현으로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아이고 살이 많이 빠졌네',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아무래도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다 보니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언급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외국에서 외모에 대한 지적은 매우 무례한 일이다. 각자만의 개성이 다르고, 그 다양함을 존중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언어도 배경도 각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교류하다 보니 그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깊고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반도지만 섬 같은 나라다 보니 아직 다양성을 알아가고 있는 걸음마 단계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유교적 문화와 공손함이 배경이 되어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뒤에 말하거나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반면 서구권 국가는 명확하게 의견을 전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어는 욕이 일상적이고 깊이 스며들어 있다. 솔직하게 감정표현을 하고, 더욱 친근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니 다양하고 창의적인 욕이 많다. 때로 가족 앞에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도 많다.
프랑스는 저녁 전에 식전주라고 하는 apéritif를 마시고, 코스 저녁을 시작한다. 스페인은 점심은 2-3시, 저녁은 10시 정도 먹는 걸로 유명하다. 하루 리듬이 우리나라처럼 12시, 6시에 식사를 하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닌 것이다.
언어별로 가지고 있는 문장구조가 다르다. 그 배경에는 그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문화와 인간관계의 관점이 녹아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는 주어, 목적어, 동사의 순서를 가지고 있다. 라틴어계열의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의 순서를 가지고 있고, 아일랜드어(Celtic language)나 아랍어는 동사, 주어, 목적어의 순서를 가진다. 우리는 상대방과의 관계, 공동체의식이 중요한 나라라 상대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라틴어계열은 주어의 주체성과 개인의견이 중요하다. 언어는 사고방식, 문화를 담아낸 거울인 것이다.
관점의 차이를 깨우치다 보면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꼭 정답은 아니구나'라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으로 나와 다른 의견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경청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부족한 면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다는 점. 그 변화가 나의 다양한 경험들을 연결 지어주고 ( connecting the dots)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내가 성장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준다. 그래서 꾸준히 언어를 곁에 두면서 다양한 문화, 관점, 방식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계속해서 "열린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small talk'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문화는 아니다. 낯선 사람에게 갑자기 인사를 하면 당황해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특히, 외국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인사하거나 small talk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오히려 나서서 도와주거나 말을 먼저 거는 편에 가깝다. 오지랖일 수도 있고, 굳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굳이 작은 미소와 오지랖 같은 친절이 나의 하루를, 나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기다 small talk으로 한 번 더 웃을 일이 생긴다면 더 땡큐고 말이다.
특히나 내 나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나의 작은 배려가 그들에게 큰 의미로 와닿을 수 있고, 나의 배려가 그들에게 한국을 좋은 인식으로 남게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라고 하면 무척이나 뿌듯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친절이 결국은 내 인생을 밝게 비추는 친절과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려고 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세상이 비춰보이기에 내 인생을 긍정적인 세상으로 만들고자 한다.
한 번은 강원도 지역을 여행하다가 한 에어비엔비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호스트는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떠돌며 꾀죄죄해진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나의 여행이야기에 흥미롭게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러더니 아는 지인이 근처 스키장에서 일하고 있어 공짜로 리프트권을 구해줄 수 있으니 한 번 가보지 않겠냐며 나에게 제안을 해주었다. 그 지역은 하루에 버스가 두 대만 다니고, 심지어 막차가 오후 1시 반이라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예상할 수 없을 짜릿한 모험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제안을 따랐다.
역시나 스키를 탄 이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고,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스키장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약 2시간 동안 도시방향 도로를 걸으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말을 걸어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고, 모두가 나를 모른 채 했다. 그렇게 의기소침해져서 계속 걸어가는데 다행히 국도로 진입하는 마지막 구간에서 가까스로 트럭운전자 한 분이 나를 태워주셨다.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웃으면서 가까운 도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나에게 과분한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대가도 없이 그냥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친절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다시 내 마음을 돌려줄 수 있을까? 오랜 생각 끝에 내가 내놓은 답은 나 또한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친절을 베풂으로써 내가 받았던 친절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내가 대우받고 싶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내 주위에 결국 따뜻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온 세계가 따뜻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어렸을 적에 가지고 있던 꿈들이 현실에 부딪히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7대 불가사의를 탐험해 보겠다
의사가 되어 우리 가족과 전 세계에 아픈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주고 싶다.
우주을 탐험하고 싶다.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어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원대한 꿈이 있었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꿈이나 생각만 하면 신이 나는 꿈을 품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음악도 그중 하나였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고, 피아노도 7년 정도 쳤다 보니 내가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은 태초부터 타고난 사람들만이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과 창작영역은 나와는 거리가 먼,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피아노도 그만두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고 대학교에서 짧지만 밴드활동을 해보고, 대학교축제도 가면서 음악을 자주 접하다 보니 다시금 스멀스멀 음악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했던 이야기를 좀 더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데 음악으로 풀어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전의 내가 왜 나 스스로 내 꿈을 제한하고, 나를 작게 보고 믿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친구가 녹음할 수 있는 마이크를 선물로 준 것이 트리거가 되었다. 음악, 작곡에 대해서 무지했지만 무작정 내가 할 수 있는 커버녹음부터 일단 해보기 시작했다. 노래와 화성 쌓기를 잘하는 친구가 내 꿈을 지지해 주고 같이 도와준 덕분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일단 해보았다. 그렇게 피아노를 다시 공부하고, 화성학, 작곡, 미디 프로그램, 오케스트레이션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하면서 어렸을 적 가졌던 작곡과 오케스트라의 꿈을 조금씩 실현시키고 있다. 들리지 않던 악기소리가 음악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음 하나하나를 화성에 쌓는 것에 신이 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삶이 몽글몽글해지고, 보이지 않던 예술적인 면까지 다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삶에 치여 하고 싶은 것 없이 무미건조하게 사는 게 아니라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파고들고, 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다채로운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나에게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있어'라며 응원하고 자신감 있게 믿어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인생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싶다.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살아갈수록 새로운 경험이나 내 열정이 다시 불타게 될 기회가 자연스럽게 적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사는 세상에 무감각해지고 의미를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말랑말랑한 호기심을 품은 채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향해 두드리고 도전할 수 있는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 되는 이유부터 찾고 비판하기보다 , 어떻게 하면 실현시킬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그 꿈을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꿈을 꿀 때 그리고 그 꿈을 이뤄낼 때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이 다채로웠으면 좋겠다.
다채로운 인생을 그리기 위해 계속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