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바다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법
4장에서 인간은 과잉 보호된 유토피아 속에서 선택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그려졌고, 5장에서는 내면이 없는 사고 객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인간성의 마지막 방어선임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모든 판단이 최적화되고, 모든 반응이 모사되며, 모든 고통마저 연출될 수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이 여전히 ‘실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오래된 사고 실험을 호출하게 된다. 중국어 방의 문제다. 방 안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입력된 중국어 문장에 대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완전한 중국어 문장을 출력할 수 있다. 외부에서 관찰하는 사람에게 그는 중국어를 이해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단 한 글자의 의미도 모르며 단지 기호를 기호로 치환하고 있을 뿐이다. 이 사고 실험이 던지는 핵심은 단순하다. 정확한 반응은 이해를 보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명제는 5장에서 다룬 비인간 사고 객체의 문제와 정확히 겹친다. NHTO는 고통을 호소하고, 분노를 표출하며, 위로에 반응한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를 이해한 결과가 아니라 구문적 규칙이 완벽하게 작동한 결과다.
AI가 처리하는 것은 구문(Syntax)이다. 입력된 기호를 내부 규칙에 따라 변환하고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출력을 생성한다. 이 과정에서 의미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의미의 부재야말로 AI가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빠지는 오해가 있다. 인간은 의미를 이해하고 AI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간의 선험적 특권 혹은 본질적 우월성으로 선언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역시 태어날 때부터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다.
그 형성 과정에는 언제나 비효율적인 요소가 개입한다. 경험, 책임, 그리고 실패다. 아이는 뜨거운 불을 보았다고 해서 곧바로 ‘위험’이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손을 데고, 울고, 다음에는 피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실패 가능성을 포함한 선택의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인수하는 과정 속에서 의미는 축적된다. 의미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결과를 떠안은 경험의 밀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통찰이 등장한다. 성공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기보다, 이미 형성된 의미가 아직 유효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할 뿐이다. 예측이 맞아떨어졌을 때 우리는 안도하지만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지는 않는다. 반면 실패는 기존의 인식 틀을 파괴한다. 예상과 결과가 어긋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로 그 균열 지점에서 의미가 생성된다.
물리주의적 세계관은 이 논의를 불리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의식도, 감정도, 의미도 모두 물리적 과정의 부산물이라면 인간 역시 고도로 복잡한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저항 지점이 드러난다.
물론 인공지능도 학습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잘못된 출력은 손실(Loss)로 계산되고 다음 학습에 반영된다. 그러나 그 실패는 어디까지나 시스템 최적화를 위한 계산 비용일 뿐이다. 실패라는 결과를 겪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AI는 실패로 인해 시간을 잃지 않고, 관계를 상실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이 바뀌지도 않는다.
인간의 실패는 다르다. 인간은 실패의 비용을 신체로, 시간으로, 관계의 붕괴로 지불한다.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흔적으로 삶에 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 비용이 의미를 생성한다. 책임이 귀속되지 않는 곳에서는 의미도 축적되지 않는다.
유토피아의 문제는 이 실패 비용이 제거된다는 데 있다. 시스템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실패를 사전에 차단하고 오답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이상 결과를 인수하지 않게 된다. 선택은 남아 있지만 책임은 사라진다. 이때 선택은 경험이 아니라 소비로 전락한다. 의미는 발생하지 않는다.
의미론적 실재론이란 의미를 머리 속의 관념적 장식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힘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의미는 세계 위에 덧붙여진 해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충돌하며 남긴 흔적이다. 실패와 책임을 통해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따라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행위 방식이다.
실패할 수 있는 선택을 감행하고, 그 결과를 시스템이나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인수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실패를 제거한 세계에서 인간은 의미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 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과 AI를 가르는 기준은 지능의 크기나 처리 속도가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그 구조를 우회하는가의 차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는 언제나 실패와 책임이 놓여 있다.
이제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다시 선택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의미를 생산하는 존재로 남기 위해 인간은 어떤 선택을 감행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할지 말지는 더 이상 시스템이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