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도면을 그려나간다
어느 날 갑자기 온 지인의 연락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승훈씨 아직도 목공 해요? 가구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기껏해야 밥이나 먹자는 이야기일 줄 알았던 나는 순간 벙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직접 그 말을 들었더라면, 나도 모르게 멈칫해 상대방에게 내 의도와는 달리 오해를 샀을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목공을 해왔다. 꽤나 많은 가구를 만들었고, 그 사이 '가구제작기능사'라는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뿐인가. 좋은 기회로 원데이 클래스 같은 수업에서 보조강사로 활동했고, 지금까지도 활동 중에 있다. 그럼에도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확신'때문이었다.
'내가 과연 주문자가 원하는 가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가 만든 가구 대부분은 모두 타인을 위한 가구였다. 지인의 생일선물이나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 시간과 돈을 들여 만들어주는 일종의 '선물' 개념이었다. 하지만 내가 돈을 받고 만들어주는 것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내게 가구를 주문한 사람은 지인이기 이전에 돈을 내고 상품을 주문한 고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구 제작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민 후 내린 결론은 돈을 받지 않고 선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처음 받는 주문과 나에 대한 확신의 부재 때문이 더 컸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바람과는 다르게 지인은 한사코 돈을 내겠다며 자재비와 인건비를 포함하여 알려달라고 통보했다. 결국, 고민 끝에 자재비와 제작비만 계산해 금액을 제시했고, 제작을 요청받았다. 그렇게 나의 첫 주문가구는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인에게 받은 도면
지인은 제작 요청과 함께 자신이 생각한 도면을 그려 내게 전달했다. 용도는 강아지 유골을 넣을 수 있는 함. 원하는 수치까지 나름 꼼꼼하게 그려 보내주었지만, 가구 제작에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했다. 지인의 도면을 바탕으로 평면도와 자재소요량을 뽑았다. 구조가 단순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같은 가구라 할지라도 모양은 아주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붕에서 만나는 두 나무를 똑같이 반으로 맞출지, 아니면 한 나무가 다른 나무 위로 올라가게 만들지,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방법으로 만들지. 고민 끝에 가장 깔끔한 첫 번째 방법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려면 각도가 필요했다. 지인이 보내준 도면 그대로 각도를 재고, 그에 맞춰 나무를 재단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꽤나 복잡했다. 각도가 1도만 틀어져도 지붕은 물론 밑에서 지붕을 받쳐주는 나무까지 다 맞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남는 각재로 미리 재단하고 맞춰본 후 제작에 들어갔다. 다행히 원하는 각도에 맞춰 재단할 수 있었다.
피스가 들어가기 힘든 구조라 타카를 박을지, 본드로 붙일지도 선택해야 했다. 무거운 것을 버티는 용도의 가구가 아니기에 타카를 박거나, 본드로만 붙여도 큰 무리가 없을 테지만, 공방 선생님과 의논 후 도미노로 작업하기로 했다. 도미노란 나무와 나무 사이에 구멍을 뚫어 그곳에 맞는 전용 목심을 박아 더욱 견고하게 결합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견고한 만큼 시간이 배는 더 오래 걸린다. 첫 주문가구이니만큼 더 정성을 쏟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립과 각인 작업
도미노 작업 후 본드까지 붙여 결합하기 전 각인을 새겼다. 지인에게 원하는 글자를 사전에 받아, 원하는 위치에 새겼다. 그 후, 모두 결합된 나무를 클램프로 여기저기 단단하게 조여주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단차가 생기면 안 되기에 이리저리 가구를 돌려가며 고정시켰다.
하루가 지나고 굳은 가구에서 클램프를 떼어낸 후 사포 작업에 들어갔다. 80방부터 320방까지 차례로 사포질을 해주니 그제야 부들부들한 느낌의 나뭇결이 느껴진다. 쌓여있던 나무 먼지를 털어내고, 이내 도장에 들어갔다.
도장까지 완료된 가구
사포질 후 참나무색으로 도장을 마쳤다. 내 가구였다면 월넛으로 했겠지만, 지인이 참나무 색을 원해 그대로 진행했다. 전에 말했 듯, '좋은 가구란 내가 아닌 주문자가 좋아하는 가구'이기에. 그렇게 내 첫 번째 주문 가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지만, 완성된 가구를 보고 있자니, 그간의 고생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 있었다. 가구를 받고 너무 마음에 든다며 연신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지인을 보고 있자니 내심 뿌듯했다.
또 언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문을 받아 가구를 만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제든 내가 만든 가구가 주문자에게 온전한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