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기스에 있는 조용한 호텔
일단 왔으니 체면은 세운 것이라며 그냥 집으로 갈까 하면서 고민을 했는데
겨우 이틀을 보내고 이곳에 오면서 했던 기대가 모두 사라진 것을 알았다.
이 여행은 60 생일의 선물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남은 선택이었다.
멋진 가방도 몸에 걸치는 웃도 반짝이는 뭔가도 선물로 탐이 나지 않았는데
내가 계획해서 혼자 떠나 본다는 경험은 내가 나에게 멋지다고 칭찬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떠나서는 무엇을 할 건지 어떤 호기심도 발동하지 않았는데
떠났으니 머물러야 하고 그럼 그 시간 동안... 난 관광에도 쇼핑에도 관심이 없었다.
얼마나 많이 나를 쥐어짰는지 모른다.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그러면서 애써 그곳까지 날라 간 보람이 있다면 더욱더 좋겠다는 꿈을 꾸면서...
발리로 결정을 하면서 나에게 부탁했던 것들
1. 호텔에서 제공하는 이벤트는 가능한 모두 참여해 보자.
2. 영어를 많이 사용해서 입이 조금은 열리도록 하자.
3.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카페에 앉아 컴퓨터 안을 정리해보자.
4. 틈만 나면 수영장에 가서 걷도록 하자.
이것들은 내가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서 세워진 것들로
간혹 구태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발리까지 와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지에 대해서
나를 설득할 만한 변명이 필요했지만 일단 떠나는 것에는 이유가 확실하고
이런 일들을 착실히 잘 이행한다면 조금 여유 있는 날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엄청 잘 짜여진 나를 위한 맞춤 여행이 될 뻔했는데...
이런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셔가면서 컴퓨터 안을 정리할 작정으로
미국에서 사는 3개월 동안 정말 마음 놓고 나중에 할 거라고 미뤄 뒀는데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카페에 발리의 커피는 한국의 커피와는 달랐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도 땀은 손바닥을 끈적이게 만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수영장에서 걷는 것 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렇게는 안되었을 것 같다.
난 처음부터 모래사장의 해변가보다는 절벽에 세워져 바닷물이 철썩이는 이런 곳을 원했는데
기대처럼 수영장은 깨끗했고 수영장 주변도 무척 아름답고 조용해서 마음에 쏙 들어
첫날 아침을 먹고 수영장 옆 의자에 앉아 흡족한 얼굴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확신을 했다.
이번 여행으로 이 수영장 덕분에 나는 엄청 날씬하게 되겠구나 하는...
그런데 수영을 못하는 내가 걷기에는 너무 너무...
수영장의 깊이
호텔로 올 때 운전사가 했던 말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유럽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보이는 나이가 지긋하게 들은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으로
그들은 키가 맞는지 아침이면 수영장에 들어가 놀았고 수영도 잘 하는 것 같았는데
보기만 해도 아득해 보이는 바닥에 내가 숨을 쉬지 않고 걷는다고 하면...
곁에 있는 아이들 용의 풀장에라도 가서 걸어야 하는 건가...
사진을 너무 신용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사진 속의 수영장으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사진 속에서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는 것을
난 혼자서 에어컨도 달아 놓고 수영장의 깊이도 나에게 맞게 조절을 해 둔 것이었다.
이래서 거창한 포부에 길게 잡아 놓은 일정이 부담스럽게 되었다.
엄청난 습기로 침대도 소파도 축축하고 테이블도 끈적거려 큰 타월을 깔아 놓고 물건을 꺼내 뒀는데
꼭 새벽이면 내리는 비는 굵게 세게 내려 어쩔 수 없겠다는 것에 받아들이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덕분에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 길은 푹 젖어 시원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데
그것도 해가 나오면 순간에 비의 흔적이 사라져 이래서 식물들이 잘 자라는 거구나 했다.
식물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도마뱀붙이 한 마리가 저녁이 되면 꼭 찾아와 플라스틱 봉지를 뒤지고 다니는데
처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엔 정말 기겁을 했었다.
도마뱀붙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의 소지품과 가방을 항상 꼭 잠가놓고 지냈는데
떠나 오기 전에 단것이 필요하면 먹자고 사 온 초콜릿은 아예 금고에 넣어 두었다.
달리 쓸 일도 없었던 금고가 이런 용도로 쓰이게 될 줄이야...
처음엔 사람이 있으니 도망가겠지 했는데 뭐든 적응을 하면 나아진다고
도마뱀붙이도 나도 서로서로 상대를 겁내지 않고 때가 되어 오지 않으면 찾을 정도가 되었다.
새벽이 되어 조금 밝아 오면 꼭 내 방의 베란다에서 크게 들려오는 새소리
컬컬한 투박한 음성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게 새소리라고 인정하고 정말 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는 말에 인정을 하고도 놀랬다.
얼마나 크면 그런 소리를 낼까 해서 다시 물었더니 웃으면서 작다고 하면서
작은 새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낸다고 했다.
멋지게 보이는 이 베란다...
비가 오면 간혹 나와 잠깐 서서 구경을 했는데 축축해진 의자에는 앉을 수가 없고
해가 지는 석양을 느끼자고 나와 의자 끝에 걸터앉아서 몇 분만 지나면 땀이 나는데
이런 작고 예쁜 베란다가 있다면 하면서 가진 상상과는 너무나 현실은 달랐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다음에 또 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해 보자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트레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