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밑 주민의 피난처
내가 알고 있던 프런트 데스크(front desk)를 이곳에서는 리셉션(Reception)이라고 했다.
완전히 개방이 되어 있고 그곳이 식당과 풀장과 바닷가를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길목이어서
매니저라는 사람은 동행이 없는 나에게 언제나 한 마디씩 말을 걸어왔다.
어떠냐며 기분과 방의 상태를 묻고 나면 반드시 오늘은 무엇을 할 예정이냐고 물었는데
여행 초보의 딱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던 처음 며칠간의 나는 신경 써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헌데 며칠 지나고 보니 호텔에서 알선하는 이벤트로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을 권하는데
내가 상상하면서 기대했던 호텔에서 무료로 해 주는 것은 거의 미끼 수준이었다.
떠나 오기 전에 무조건 열심히 움직여 보자고 했던 결심을 실천하려고
발리의 열대우림과 농촌의 모습과 멀리 화산을 볼 수 있다는 트레킹을 신청했다.
매니저는 긴팔과 긴 바지를 입고 모자도 챙기라면서 물은 자기들이 준비하겠다고 하더니
적어도 두 명은 되어야 하는데 혼자여서 두 명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조금 깎아 주겠다고
다정하게 권했을 때와는 다른 표정으로 돈 계산에서는 철저히 했다.
차로 산 위까지는 데려다 주어 내리자마자 물리지 않으려고 온몸에 모기퇴치 스프레이를 뿌렸는데
반바지에 반팔의 안내자는 필요 없다며 상관없다는 표정이 자신 있어 보였다.
나는 머리에 땀이 많아 모자를 써 본적도 가지고 있는 것도 없어 이번에 양산을 대신 사 들고 왔는데
오후 3시여서 그런지 나무가 우거져서 그런지 그늘이 많아 땀이 나는 손으로 들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열심히 걸으면 두 시간에 마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땀이 나기 시작하고 가지고 간 작은 타월로 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닦아 내는데
트레킹의 길이라고 해서 닦아 놓은 길이 있는 곳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진 좁은 길로
헛디딜까 봐 땅바닥만 쳐다보면서 걸으려니 걷는 일이 전부가 되어 다른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조금 걷다가 이러려고 걷는 것은 아닌데 하면서 안내자를 세워서 주위를 돌아봤는데
내가 확실하게 발리라는 열대지방의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안내자가 멀리 산을 가리키며 저게 아궁 화산이라며 알려주는데
발리에 오면서 가졌던 막연한 불안이 뭐였냐 싶은 정도로 편안하게 보였다.
열대 우림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다니는 벌레들과 인내심을 경쟁하면서
바나나 꽃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붉은색 파인애플에 신기해서 물었더니 속은 노랗다고 했다.
이 나라의 벌통은 저렇게 나무에 매달아 놓은 거라고 하는데 그럼 꿀을 어떻게 꺼내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 투성인데 내 짧은 영어로 물어볼 능력이 안되어 꾹 참았다.
나무의 생김새도 신기하고 벌레도 전혀 달라 한번에 그렇게 많은 여러 종류의 나비는 처음 봤지만
여기저기에 연붉은 개미가 득실거리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계속 눈에 들어와 힘들었다.
농촌의 풍경은 내가 아주 어릴 적 기억에 있는 우리나라의 농촌 풍경과 비슷했는데
길 언저리에 버려지거나 구덩이에 모여져 있는 쓰레기가 시대에 따라서 종이였던 것이 플라스틱으로
발리까지 와서 이런 걱정을 왜 하냐고 하는데도 저 플라스틱들은 어떻게 치울 것인지
종이는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플라스틱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난 흐르는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상황으로 얼굴도 더위에 익어서 후끈거리니
어디든 에어컨이 있는 곳에 들어갔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정신이 나를 버린 것 같은데
이런 집을 보면서는 역시 자연에 있는 것으로 지은 집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간사한지 두 가지 마음이...
마을 입구에 회관인지 넓은 지붕으로 된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안내자가 그들을 가리키며 아궁 화산 바로 밑에 사는 사람들이 피난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이 안내자는 이 지방의 출신으로 걷는 내내 만나는 사람들과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곳에 와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고 나를 소개하더니 나에게 기부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들을 보면서 난 관광이나 하고 있구나 했는데 얼마나 그 말이 고마운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기부금으로 내고 이름과 주소를 적는데 South of KOREA라고 크게 적어 뒀다.
아궁 화산은 지금 하얀 수증기만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