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오기
나는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에서는 돈을 안 쓰려고 엄청 애를 썼다.
가능하면 한국 물건을 일본에 가져다 썼는데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기저귀 빼고는 포대기 등 모두 한국 것을 썼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것보다 쌌다는 것으로 엄청 절약이 되었고
일본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언제나 특별해 보였다.
내가 하는 애국은 일본에서 버는 돈을 한국에 와서 쓰는 것으로
한 푼도 일본을 위해서 쓰게 되거나 도움이 되게 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말을 하면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 다들 웃는다.
그래도 난 이 정신으로 일본에 살면서 버텼던 것 같은데
IMF 때엔 한국에 있는 은행에서 일본돈이 없냐고 외화가 필요하다고 해
가진 것은 별로 없는데 하니 빌려서라도 가져오면 좋다고 해서
같이 살던 사람의 의사 면허증으로 일본 은행을 돌아다니며
빌릴 수 있는 만큼을 모두 빌려서 한국으로 가지고 왔었다.
지금도 나의 애국은 일본 물건에 대해 친구들에게 떠들지 않는 것이고
일본 친구에게 한국에 놀러 가라고 부추기면서 한국 물건을 자랑하고
한국 친구에게는 일본 물건의 선물도 사 오라는 물건도 안 사다 주는 것인데
그러다가 오해를 많이 받았다.
난 언제부터 일본이 싫었는지...
그런데 왜 일본에 사는 사람과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일본에 사는지
나도 내가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이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렇게 되어버린 삶을 잘 이겨내야 한다고 목숨을 걸고 지켰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너의 나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할 때엔
조선인이 뭐냐고 정색을 하고 묻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난 지독하게 무서울 정도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미움은 점점 체계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냈다.
누굴 미워해도 같은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것만은 지키기로 하고
나에게 조선인이라고 시비를 거는 일본 X에게도 예의는 차려가면서
하고 싶은 말은 또박또박 다 하는 것으로 기가 질리도록 만들었는데
난 일본 법무부에 비자 연장을 하러 가서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이런 내가 일본에서 산다는 자체가 굴욕인데
한국의 친구들이나 친지들은 그 사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이 터지고 불매운동이 시작되고
여기저기의 뉴스에서 일본이란 나라의 습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그게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을 떠난 이유라는 것을
이젠 다들 일본이 어떤지 알 것 같아서 속이 후련하다.
이번 기회에 일본이란 나라가 어떤지
얼마나 비열한지 얼마나 치사했는지 꼭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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