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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Nov 23. 2021

아버지께 물어보고 싶은데...

진짜 내 생일

난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의 집을 정리해 드렸다.

구석구석 버티고 있던 물건들을 꺼내어 버릴 것을 찾았는데

아버지 방의 서랍장도 전부 뒤져서 비슷한 물건들끼리 모아 두며

아버지가 쓰시던 방식을 유지해가면서 정리해 드렸다.


그때 쓰지 않는 아버지의 낡은 지갑에서 사진이 나왔다.

많이 낡아진 귀퉁이가 달아난 그런 흑백사진이었는데

막내가 아직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가족사진이었다.


너무 신기해서 아버지께 이 사진이 왜 지갑에 있냐고 하니

월남 참전으로 가시면서 들고 간 사진이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달리 보였는데 사진 뒤에는 아버지가 직접 써 놓은 

가족들의 생일에 집에서 일하던 언니의 생일까지 있었다.

난 그때 그저 아버지의 특이한 글씨가 멋져 보인다며

그 작은 흑백 사진이 그때부터 지갑에 있었구나 했다.


그때 아버지의 의미 있는 물건들을 모두 잘 챙겨 두었는데

그 물건들을 그대로 실버타운으로 잘 가지고 이사를 하고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서는 아버지의 서랍장을 어쩌지 못해서

내가 사는 이 좁은 공간에 그대로 옮겨다 놨었다.

서랍마다 오래 쓰셨던 물건들이 들어 있어 감히 버리지를 못해

버려야 하는 이유를 찾을 때까지는 놔두자고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취미로 찍어 놓은 사진들은 정리하자고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진들이나 여행의 사진들은

놔두어도 의미가 없다고 버렸는데 그러면서 다시 나타난 이 사진!

아버지가 지갑에 넣어두었던 작은 흑백 가족사진이 나왔다.

왜 이렇게 낡았는지 하며 아버지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는데

사진 뒤를 보면서 아버지의 글씨는 정말 특이하다고 

아버지가 써 놓은 가족의 이름과 생일을 하나씩 읽었다.


아버지가 직접 쓴 이름과 생일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때는 어떻게 알아채지 못했는지

이젠 물어볼 수도 없는데 왜 지금 이걸 알게 되었는지

사진을 들고 한참을 고민과 의심을 했다.


아버지가 직접 써 놓은 내 생일이 진짜 내 생일과 달랐다.

호적의 내 이름과 아버지가 부르는 내 이름이 다른데

호적상의 내 생일과 아버지가 기억하는 내 생일도 다른가 하며

당장 물어보고 싶은데...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지만

난 엄마보다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었다.

그냥 원망도 미움도 없다는 것으로 추억도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로서 나는 아버지를 정말 존경했었는데

아버지와 딸로 한 대화가 너무 없고 나라 밖에서 살아서 그런지

떠나시고도 그냥 멀리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안 계신다는 것에 허전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는데

이 사진은 나에게 아버지가 정말 떠나셨다는 것을 가르쳤다.


내 생일이 왜 이렇게 적혀 있는 건지 아버지께 물어보고 싶은데

어느 쪽 생일이 진짜인지 정말 듣고 싶은데 안 계신다.

이렇게 안 계신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나에게도 수수께끼 같은 비밀이라는 것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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