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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May 04. 2021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사진 버리는 방법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면서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들고 온 것들로

그 해에는 사진에서 보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나만 빠진 가족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는 씁쓸한 소외감으로 정리한다는 일이 진행이 되질 않았는데

이제 3년이나 지나고 나니 사진을 보면서도 감정이라는 것은 생기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와의 대화는 거의 돌아가시기 전 일이 년이 가장 많았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파악하는 일방적인 소통이어서

지금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서운하다던지 그립다는 그런 느낌보다는

내가 타국에 있으면서 아버지는 한국에 계셨던 그런 기분이다.


추억이라는 것이 너무나 적어서 이렇게 덤덤한지 덕분에 사진을 정리했다.


아버지가 취미로 찍은 사진으로 커다란 상자 하나를 정리한 것인데

실버타운으로 가면서 내가 이 사진들은 상자에 꽉 채워 보여드리면서

심심할 때 뭘 찍었는지 기억도 하시면서 정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적적한 시간을 메꾸는데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었는지

아버지는 그때 한번 보시고는 다시는 건드리시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그 상자 속에 있던 가장 오래된 것은 70년대 초의 필름이 있었는데

필름이 들어 있던 비닐이 삭아서 부스러져 날아다녀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90년대부터는 사진의 색도 좋았고 필름을 넣어 둔 비닐도 튼튼해서

왠지 사진 현상의 발전을 손끝으로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듯했다.


맨 처음으로--- 사진을 현상하면 반드시 종이봉투에 넣어져 받게 되는데

거기에는 부탁을 한 아버지의 이름이 있어 그것도 오려내어 찢어 버리고

종이봉투는 종이 재활용으로 분류를 했는데 몇십 년의 먼지가 날아다녔다.


그다음으로는--- 사진과 필름에 인물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면서

건물이나 나무 꽃들이 있는 풍경 사진은 그대로 버리자고 마음을 정했다.

처음엔 아버지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드리는 것이 맞다고 덤볐는데

사진은 면장갑을 끼고 찢었는데도 손끝이 얼얼해서 며칠은 쉬어야 했고

필름은 잘 드는 부엌 가위를 썼는데 이것도 손에 가위 자국이 남아 아팠다.

그래서 사진과 필름에 인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냥 버리자고 구분을 했는데

워낙 양이 많아서 그런지 해도 해도 한 것 같지가 않아 한동안은 모르는척했다.












필름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와 사진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는 재활용으로 모으고

사람이 들어간 사진은 찢고 필름은 가위로 자르면서 터득한 것이 있는데

가족이 들어 있는 사진들은 섣불리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의 얼굴이 들어 있는 사진을 보면 버려도 되는지를 결정하는데 너무 힘들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가면 왠지 성과도 없이 시간만 흘러서 맥이 풀려 버렸다.


이 커다란 상자가 이 공간에 와서 거의 3년 만에 정리를 마치고 자리를 비우게 되어

이 상자만 사라져도 넓어 보이겠구나 하니 갑자기 섭섭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아버지의 흔적이었는데 하는 미련이 나를 흔들려고 하는데 정신을 차리자고 

내 손으로 한 장씩 모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찢어진 사진들에 무슨... 하면서 나무랐다.


그동안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만의 취미가 나를 떠나면 그저 짐만 된다는 것에 내가 모아 두었던 것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꽃이 피면 그걸 시간별로 계속 관찰하면서 찍어 둔 것에

집에 있는 화분들에 관심이 많으셨구나 하며 꽃을 많이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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