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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Apr 27. 2019

아버지의 취미 생활

중년에게 남겨진 일

아버지는 취미로 장기도 좋아하셨고 바둑도 두셨다.

테니스 시합은 아버지의 의지로 끊어내지 못해서 70이 넘어서도 하셨는데

몸이 힘들어도 시합이라고 하면 쑤시는 것도 사라지는지 열심이셨다.

테니스를 치셨던 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에는 수영을 하러 가셨는데  

비바람이 거세어지면 바람의 흔들림을 보려고 바다나 숲을 찾아가셨다.


한마디로 낭만적으로 멋지게 사신 거다.


그렇게 숲이나 바다로 가시면 웅장한 자연에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찍으셨는데 내가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하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카메라도 여러 번 바뀌고 그러는 사이에 자동카메라가 나왔는데 

아버지는 수동을 고집하시면서 어떻게 자동으로 사진이 찍히냐고 해서

그냥 한 번은 써 보시라고 내가 일본에서 자동카메라를 사다 드렸다.

그 카메라에 아버지는 납득을 하시고는 렌즈를 사 모으셨는데

약 10년 전에 아버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무료한 시간을 가지게 되어

가라앉지 말았으면 해서 큰 동생이 추천한 카메라를 사 드렸다.

아버지는 그 비싼 것을 왜 사냐고 하기에 잘 쓰시다가 나중에

나의 아들에게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니 승낙하셨다.


아마도 그 당시에 그 엄청 무거운 카메라는 최고였는지 

아버지는 그 카메라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곁에 와서 카메라를 보여 달라고

그래서 이야기가 되어 좋았다고 하시며 거의 매주 원정을 나가셨다.


난 지금 어떤가...

자꾸 더 앞으로 나오려고 하는 배를 보면 움직여야 하는데 하면서

딱 여기까지 고민은 살그머니 먹을 것 앞에서 사라진다.

늘어져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세상 모든 부귀영화보다 좋은데

그렇다고 이 나이에 하는 취미생활은 아니라고 나도 반성은 하면서

집중력도 끈기나 오기도 없는 내가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러니 의사로서 자신의 일도 해 가면서 이것저것을 해 오셨던 아버지는

나에게는 신과 같이 보이는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존재였는데

이 나이가 되어 보니 모자란 머리 말고도 한소리 들을만한 것이 많아

그래서 서운하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들을 수 있었구나 하고 납득이 되었다.


이런 존재의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숙제 같은 이것들...

한가득의 사진들로 여기에는 몇십 년 전의 필름과 사진이 종이봉투와 있는데

그것들과 같이 몇십 년 된 먼지도 같이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

사진을 정리하려고 봉투 몇 개를 꺼내면 확 피어오르는 먼지가 눈에 보인다.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면서 무엇이 어떤 형태로 사진이 되어 남아 있는지

혹시 아버지의 모습이나 언제나 같이 다녔던 엄마의 얼굴이 남아 있다면

그냥 상자체로 버려서는 안 될 것 같아 이 오피스텔까지 가지고 왔었다.












사진 정리는 조금씩 하면 될 거라는 그 조금씩이라는 것이 선뜻 잘해지지 않았다.

사진만 들어 있는 상자의 것은 전부 인물들이 있어서 아예 손을 대지 못하고

필름과 같이 들어 있는 사진들 중에 풍경만 있는 것을 우선 구분해 내고 있는데

그게 언제가 되면 끝날 건지 한번 정리를 하면 봤던 사진이 나를 꼭꼭 씹어

다시 할 마음이 생기려면 머릿속에 있는 사진이 사라져야 했다.


이 사진들... 이 사진들은 내가 한국에 없을 때의 것들로

가족들이 같이 나들이를 하거나 같이 식사를 하는 그런 모습인데...

엄마는 내가 불쑥불쑥 드나드는 한국 방문에 다들 불편하다고 

나를 많이 미안해하도록 만들어 선물이나 식사 대접을 하라고 했었다.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땐 아무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동생네 가족들을 불러 같이 식사를 하고 식비를 내가 지불했었는데...

그랬던 내가 미국에 가서 한국인들에게서 알게 된 사실은

먼 곳에서 가족이 오면 집으로 초대해서 한 끼 식사를 같이 한다며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고 외식을 못한다고 했다.


그럼 나는 그동안 어떤 존재였을까...

환하게 웃는 사진들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참아야 하는지

결국 사진을 치우고 풀풀 날아다니는 몇 년 묵은 먼지를 잡으려고 애를 쓰면서

이 먼지까지 나를 비웃나 보다고 짜증을 내다가 생각을 한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나의 가치에 대해서...


아버지의 취미였던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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