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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Aug 29. 2018

한 평생의 흔적

중년의 고찰

부모님의 흔적을 거두어야 했다.

두 분이 다 병원에 계시고부터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살아 계신데 산 흔적을 지우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아 미뤘는데...


난 부모님의 집을 내 집처럼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집은 입주하고 그대로 변화도 없이 그냥 물건만 쌓이고 있었는데

내가 2000년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부모님의 집을 부엌만 빼고 다 정리를 했었다.

그때 안 쓰면서 놔둔 두꺼운 이불부터 머리 마는 기계 등 쓰이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집안의 물건을 확 줄여 자주 써야 하는 물건들은 쉽게 꺼내 쓰도록 해 드렸다.

그랬던 집안의 물건을 2016년 반으로 줄여 실버타운으로 이사를 하려고 보니 

어쩜 그 물건들이 그때 그 자리 그대로 있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어떻게 사시고 계셨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실버타운도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시기 전까지는 그래도 온기는 있었다.

아버지가 매일 뭔가의 변화를 느꼈으면 해서 여러 종류의 식물을 한 화분에 담아

살아 있는 식물들을 죽이지 마세요 하며 억지로 일거리를 만들어 드렸는데

죽이면 안 되지 하시며 열심히 물을 주면서 챙겼던 화분도 

거의 몇십 년을 같이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커다란 식물의 큰 화분도

아버지가 안 계시는 동안 다 말라죽어 있었다.


집도 물건도 모두 손길을 주는 주인이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고 즐겼던 오디오 앰프와 스피커는 자식들이 쓰기를 바랐는데 

두 아들은 벌써 자신에게 맞는 것을 가지고 있다며 너무 낡은 것을 탐내지 않아

뭐라도 가져가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뿌듯하게 생각하며 안심이 되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자식도 가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평생의 흔적은 무엇이 될까...

아버지의 흔적은 나도 될 수 있고 소문이 자자했던 아버지의 수술 솜씨도 될 수 있는데

집안의 쓰시던 물건들이 가장 빨리 쉽게 아버지를 떠 올릴 수 있어서 흔적이 되는지

쓰셨던 물건들은 썼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니 바로 빛을 잃어버렸는데도

물건에 떠나버린 가치까지 담아 흔적이라고 한다.

 

무조건 물건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잘못인 것 같았다.


거기다 흔적을 꼭 남겨야 하는 것도 의문이 되었는데

아버지 집 정리를 하면서 작은 동생은 아버지가 쓴 대학교 때의 노트를 남겨 놓으라고 하더니

아버지의 대학 시절의 책도 아버지가 쓰신 일기 비숫한 노트와 주소록 등을 챙겼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져 가 보관할 장소가 없다고 하는데...


내가 망설이면서 버려도 되는지를 묻는 말에 망설이면 일단 놔둬 보라고 하더니

결국엔 우리들의 자식들이 우리가 해야 하는 고민을 떠안게 되겠다고 했다.

아마도 꼭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이런 것들을 뭣 때문에 하고 있는 건지...

이런 것을 챙겨 두어야 자식의 도리를 하는 것인지...


난 내가 죽었을 때를 생각해 봤다.

무엇을 남기며 아이들을 귀찮게 할 건지

나의 흔적은 무엇이 되어 기억 속에 남겨질 건지

꼭 그렇게 흔적이 남겨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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