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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Aug 23. 2018

아버지의 집 정리

중년의 갈등

누군가 가져 가도 섭섭하고 안 가져 가도 섭섭한 게 그저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사람이 없어 말라버린 화분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묻는데 

경비실 아저씨가 폐기물들을 한 번에 처리해 주는 곳이 있다고 하며

자꾸 폐기물이라고 하시는데 그 말에 화가 났다.


쓸 주인이 없어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들이어서 이젠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불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버타운을 이제는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응접실의 모양은 35년 사시던 곳과 거의 똑같이 재연 해 두어서

그곳에 앉아 있으면 고향의 집 같은 기분이 들어 많은 생각이 오가는데

이 소파에 마음 편하게 앉아 기대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씁쓸함이

이젠 나를 허접한 존재로 몰아가던 분들의 눈치를 안 보니 느긋한데

그렇다고 그 소파가 내가 상상했던 그런 편안함을 주지는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저 상징적인 것이 되어 박물관의 물건들처럼 분위기는 그대로인데

그렇다고 쓰여질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워 없앤다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만약 이 집이 실버타운이 아니고 저번에 사시던 아파트였다면 그냥 놔두고 싶다는...

그러면서 내가 실버타운으로 가자고 해서 아파트를 팔게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그게 후회가 되어 나를 원망했다가 일 년 반을 아버지는 마음 편히 사셨는데 하면서

아파트였으면 미련을 떨면서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놔둘 건데 

실버타운이어서 억지로 라도 이렇게라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마음을 뜯어 고쳤다.


실버타운으로 오면서 엄마의 방에 벽장이 없어 작은 옷장을 샀고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해서 냉장고와 세탁기와 청소기 등을 바꿨었다.

그래서 거의 새것이나 마찬가지인 이것들에게 새 주인을 찾아 주려고

개업을 하고 있는 동생과 오래 같이 일하고 있는 간호원들에게 물으니

냉장고와 청소기는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해서 크기를 보러 왔는데

온 김에 될 수 있는 데로 많이 가져가도록 열심히 보여 주며 권했더니

생각보다 덩치가 큰 소파와 엄마의 옷장도 갈 곳을 찾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엄마를 일 년 이상 돌봐 주시는 간병인 아주머니도

직접 와서 보고 세탁기와 대리석으로 된 식탁을 가져가시겠다고 했는데

엄마의 긴 코트가 혹시나 맞으면 어떠냐고 하면서 권하니 잘 어울려서

가져가 주셔서 고맙다고 하면서도 내놓기엔 아깝고 아쉬워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엄마 곁에 계시는 분이니 딸인 나보다 더 엄마와 가까운데 하면서

순간 움직이는 갈등과 싸우느라고 마음은 많이 아팠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식탁을 보러 실버타운에 오신 날 

그릇은 어떠냐고 보여 드렸는데 욕심 내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다음날 아침에 보고 가신 36피스의 그릇을 가져가도 되냐고 하셨다.

아버지가 사 줬다는 하얀색에 은색 한 줄이 둘러진 그릇은 엄마가 아끼던 것이어서

36피스가 모두 잘 보존이 되어 있는데 아무도 탐내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던 그릇들을

갑자기 가져가겠다니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에 얼른 답을 하지 못했는데

가져가 달라고 보여 주고는 뭘 하는 건가 하며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얄팍하구나 했다.


이렇게 집안에 커다란 덩치의 물건들은 거의 다 주인이 정해지고

아버지의 속옷과 잠옷과 많이 입어서 낡은 것들은 모두 쓰레기봉투에 넣고

몇 번 입지 않은 것들과 새것 그대로 최근에 사다 드린 것들을 모아서

실버타운의 경비실 아저씨에게 맞으면 입어 주지 않으시겠냐고 하니

그러자고 하셨는데 또 왠지 서운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거의 입지 않은 것들이어서 옷을 보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놔두면 무엇이 달라질 거냐고 나에게 묻고 물으며 정신을 차리자고

친구에게 동생들에게도 전화를 해 의견을 듣는다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낡고 헤어진 아버지가 즐겨 입으시던 옷 몇 벌은 놔두려고 챙겼는데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건지 무엇에 쓰일 건지 도리어 짐이 되는 건 아닌지

많은 생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일을 멈추고 실버타운을 나왔다.


집을 치우자고 마음먹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는데

치우기 시작하면서 한 달은 벌써 지나가 버렸다.


정말 오래된 환등기나 깁스 자르는 휴대용 도구 통 등 의료기계들과 오래된 타자기 등은

이런 것을 모으는 분이 있다는 말에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했다.

같은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물건을 모아 전시를 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 어딘가에 보관이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물건들이 어디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보존된다는 것에 편안해졌다.


정말 하나씩 하나씩 주인을 찾아가고 버릴 것은 쓰레기 봉지에 넣고 나니

어떤 형태로든 정리는 되어 가고 있다고 이러다 보면 모든 것이 끝나기는 할 것 같았는데

11월부터 빈 집으로 남아 있던 것을 아직도 접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마음이지만

49재가 끝나면 여러 곳으로 보내질 것이 정해진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남는 것은 정말 폐기물로 처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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