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Nov 01. 2023

이별하는 시간이 긴 것도 불편했다.

떠나는 전날과 떠나는 날

처음으로 떠나기 전날부터 할 일이 없었다.

일 년에 두 번을 와서 떠나는 일을 했지만 이렇게 한가한 적은 없었는데

악을 쓰면서 떠나는 그 순간까지 움직이는 것이 싫다고 했던 딸을 위해서

이번엔 여유 있게 마지막날을 보내도록 꼭 해주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다. 


혼자 있는 딸에게 해 주는 일은 아들과 같이 있을 때 보다 엄청 일이 없었다.

딸이 연구실에 갔을 때를 노려서 청소도 해 주고 음식 준비도 했는데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둘 음식의 양도 반이상이 줄어들어서 수월했고

여자아이가 사는 집안은 알아서 청소도 하지만 더러워질 일이 없어

닦아 내야 하는 힘든 일이 거의 없어서 허리가 부실한 나를 도왔다.


다만 버려야 할 것과 놔두고 살아야 할 것들을 결정하지 않고

뭐든 다 두고 살아서 그것을 나누고 가져다 버리는 일을 많이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는데 석 달을 지냈던 때보다 더 빨리 할 일이 끝나

더 하자면 할 일은 많았지만 일을 벌이지 말자고 허리를 위하자며

내가 계속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딸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렇게 떠나기 하루 전날에 나가서 옷구경을 하다가 딸아이의 셔쓰도 사고

대학 주변 동네에서 많이 유명하다는 타코집에 서서 점심도 해결했다.

진한 커피를 파는 카페에 앉아서 몇 시간을 떠들면서 우아를 떨었는데

우리가 유일하게 돈을 지불하는 카페라며 코로나에도 견뎌낸 집이라고

관광을 온 사람들처럼 앉아서 정말 관광 온 사람들을 구경했다. 












떠나는 날에는 부엌일을 하지 말자고 좋아하는 샐러드를 다양하게 사서

정말 당일은 집안에 있으면서 때가 되면 샐러드로 해결을 했다.

저녁 8시 반에는 나갈 준비를 해서 적어도 9시에는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하루종일 나는 쓸데없이 가방을 열었다 닫으면서 없는 할 일을 대신했다.


두 개의 여행가방을 포개어 하나로 만들고 가져온 내 옷과 신발을 넣었는데

이 일도 금방 끝나니 할 일이 없어 딸과 같이 그동안 못 본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전에는 아들과 같이 지내는 딸아이가 힘들 거라고 청소나 빨래를 덜하도록

마지막날까지 반질반질하게 해 두고 세탁도 전날에 돌려서 개어 두었다.

이러면 적어도 당분간은 편할 거라고 안 해주는 것보단 조금은 나을 거라고

딸아이의 수고를 조금 덜어준다는 기분에 부지런을 떨면서 움직였었다.


음식도 냉동실에 얼리는 것 말고도 미역국과 카레등을 해서 냉장고에 두고

떠나는 날에는 파무침을 해서 쌈을 싸서 먹게 고기를 구워 주었다.

남아 있던 과일은 전부 깎아서 나눠 담아서 먹기 좋게 해 두고

내가 썼던 큰 냄비나 그릇과 내 컵등은 눈앞에서 치워 두었다.


정말 완벽하게 해 주고 떠나는 것을 엄마인 나의 미션으로 생각하고

파스를 더덕더덕 붙여가면서 내 물건은 그저 쓸어 담아 집을 떠났는데

이번엔 그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나만 남아서 널널하게 아이와 앉아

여러 동영상을 보면서 이별의 시간은 얼마나 지루한지 느껴야 했다.













편하게 사 온 샐러드로 두 끼를 해결하고 호박라테도 맛을 봤는데

이쯤에서는 드라마 이야깃거리도 동이 나고 해야 할 당부도 없어

둘 다 소파에 앉아서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아직도 몇 시간이나 남아 이러다가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될까 봐

멍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니 아쉬운 이별을 기다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떠날 때는 이런 감정들이 자리 잡을 틈이 없었는데

이번엔 헤어지는 일에 쇄기를 박고 또 박으면서 기분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별의 연습을 이렇게 길게 했으니 헤어질 때는 기분이 덜 아플까 했더니

택시를 기다리면서 옆에 서 있는 아이는 예전 그대로 가엽다는 생각이 들고

잘 지내라고 안아주고 택시를 타고나니 서럽다는 생각이 들어 처량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생각을 하면서 울먹거리던 기분을 가라앉혔는데

10년 이상을 이러고 살았는데도 적응이 안 되었는지 나이 들어 약해졌는지

하루의 시간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는지 아이와 하는 이별은 어려웠다.



작전을 바꾸기로 한다.

떠나기 전날까지는 열심히 움직이면서 지내고

떠나는 날에 한가롭게 나가서 놀다 와 가방을 꾸리는 것으로 

헤어지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드니 시간이라도 짧게 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과 LA... 어디가 나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