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잊는 봄의 기억
부산에 와서 3개월의 공백을 모두 돌려놓고 정신을 차리니
길거리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나는 이게 웬 횡재냐고
여행의 흔적을 지우고 차분해진 상태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얼마 만에 꽃봉오리부터 피어나는 것을
매일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워했다.
벚꽃은 겨우 일주일 정도 즐길 수 있다고 들었는데
비나 바람이 불면 즐길 수 있는 날짜가 줄어 버리니
이렇게 나의 기분과 꽃의 기분이 같을 때가 드물었다.
일본에서 꽃봉오리를 보고 부산에 가면서 기대를 했는데
부산의 벚꽃은 거의 다 떨어지고 이파리가 나와 있었다.
비행기표를 싸게 사려고 거의 3개월 전에는 사놓으니까
이 벚꽃의 시간과 맞아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처럼 이제 피겠구나 하면서 기다리고
하나둘씩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라며
만개해서 꽃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방황하듯이 거닐면서
이런 호강을 다 해 보는구나 하면서 매일 거리를 배회했다.
10살 많은 지인이 벚꽃을 보면서 몇 번을 더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일 년에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매번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날의 벚꽃이 소중해졌는지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정말 소중한 기회이고 화려한 꽃 잔치였는데
비가 와서 이대로 벚꽃의 시간은 끝나는가 했더니
비가 온 덕분인지 창밖에는 꽃이 더 화려해져 있었다.
요 며칠간 나는 티슈를 물 쓰듯이 썼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비 오는 날에 계속 티슈를 뽑으면서 깨달았다.
봄날에 밖에 나가는 것은 나에게는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을
봄이 나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인 알레르기가 나에게 알려줬다.
그래도 어제 비가 와서 더 풍성해진 벚꽃을 보러 나갈 참이다.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기회를 놓치기는 억울해서
알레르기 약도 먹고 마스크를 하고 즐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