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차원에서 본다면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시간 때우는 차원에서
너무 먼 나라의 음식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었고
왜 이들은 길거리에 보이도록 앉아 만드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내가 이 나라까지 여행 갈 일은 없겠지만 갔다고 친다면
이런 것을 보게 될 것인데 그걸 내 집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다니
비용도 들이지 않고 관광이란 것을 한다는 것에서 좋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영상 화면에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도 보조를 하는 사람도 사러 온 사람에서도
전부 남자들인데 종교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드니 답답해 보였다.
깔끔하고 세심한 면에서는 여자의 손이 필요한 것도 있는데
쌀을 씻는 것도 야채를 다지는 일에도 남자들이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는 일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 투박한데
모든 것을 다 버무려서 튀기는 일이어서 그런 건가 했다.
고기를 다져서 양념을 해서 기름에 튀기는 음식 같은데
전통 음식이 되는 건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사러 왔다.
정신없이 보이지만 홀 담당과 사가는 담당이 따로 있는듯해
체계적으로 잘 흘러가는 것이 언어도 모르는데 느껴졌다.
엄청나게 큰 기름이 있는 용기에 한 손으로 버무려서 넣는데
이걸 하는 남자는 최고의 요리사인지 높은 곳에 앉아서
양념이 되는 것을 한 손으로 측량해서 그 손으로 고기와 섞는다.
그리고 그 손으로 기름이 있는 용기에 밀어 넣는데
그걸 뒤집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걸 파는 사람도 다르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인 나는 엄청 신기했다.
앉아서 버무리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고기 양념이 다르겠구나 하고
뒤집는 사람은 저 많은 것을 순서대로 하는지 덜 익을 수도 있겠다고
튀겨져 나온 것의 색이 조금은 탄 것 같아 보이는 것에서 걱정도 했다.
그래서 추천해 주는 데로 여러 영상을 계속 봤는데
식당의 규모가 크던 작던 하는 순서와 방식은 모두 비슷했고
고기를 버무리는 사람은 남자이고 꼭 한 손으로만 하고 있었다.
이 모든 낯설음에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다가
한 장면에서 엄청 익숙한 친근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장면을 멈추고 확대해서 보니 역시나
기름진 고기를 싸 주는 종이가 대한민국의 신문이었다.
그것도 최근의 신문 크기로 색이 들어간 신문지도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음식을 포장하는 건지
처음엔 당황했는데 나중에는 이렇게라도 가치를 증명한다면
신문으로 만들어진 가치는 아니어도 쓰인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일이 아닐까 하며 생각을 더듬었는데...
이 신문은 왜 이렇게 남겨져서 이 먼 나라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 사람들은 분명 지나간 이 신문이 다른 종이보다 싸서 쓸 텐데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신문이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는 좋다고
이들이라도 써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 되는 것인가 하며
내 머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하며 신문의 한글을 봤다.
왜 그럴까... 씁쓸해졌다.
내 나라에 있어야 할 신문이 기름진 음식을 싸는 것에 쓰이고 있었다.
신문지는 음식이 놓이는 순간부터 기름이 스며들어 번들거리고
그렇게 신문에 박힌 한글도 같은 처지로 추락해져 가고 있었다.
보통 한국의 가정에서도 명절날 전을 부칠 때는 신문지를 깔고 한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도 다들 신문지를 깔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것은 당연하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내가 이건 힘들었다.
왜 씁쓸한 기분이 드는지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 하나 이 신문이 너무 먼 곳까지 와 있다는 것이었다.
낯설은 타국에 가 있다는 것이 거슬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쓰여지는 것이 좋은 거라고 마음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