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시간의 정전 예고

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다.

by seungmom

건물 전체의 전기에 대한 검사를 할 거라고 방송을 했다.


부산 해운대의 이 오피스텔 건물은 덩치가 조금 크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내가 가진 금액으로 해결이 가능하면서 편의점이 있었으면 했다.

믿고 지내는 머리가 엄청 좋은 두 딸의 엄마인 멋진 중계인이

건물이 오래전에 지어져서 벽이 두껍다고 추천을 해 준 이곳은

정말 방음은 철저했고 교통은 건물을 나가면 지하철이 있다.

덕분에 나는 역세권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모두 가진 곳에 사는데

이 오피스텔에서 이틀 전부터 정전을 할 거라고 방송을 했다.


어수선하게 들었던 기억으로 두 시간의 정전이 있을 거라고 했다.

겨우 두 시간의 정전이라면 걱정할 일도 없다고 무시를 했는데

미국 LA 아파트에서는 정전이 예고도 없이 와서 암흑을 체험하고

잠 속에서 갑자기 불이 여기저기에서 켜지고 냉장고 소리가 들려

놀래서 깬 정신으로 집안 곳곳의 전기 스위치를 찾아 꺼야 했었다.


이런 유 경험자인 나는 그다음 날인 어제도 방송을 들었는데

어제는 정말 하루 종일 하다가 저녁이 되니 더 자주 하면서

전기가 나가면 엘리베이터도 멈추고 물도 공급이 안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안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물은 아니어서

살짝 긴장을 했지만 단 두 시간이라고 하니 심각하지 않았다.


전기가 없다고 하면 당장 냉장고와 노트북이 문제인데

냉장고는 열지 않으면 될 거고 노트북은 쓰지 않으면 될 거라고

휴대폰 충전만 확실하게 해 놓으면 된다고 생각을 마쳤다.


그러다가 물이 안 나온다고 하니 화장실이 걱정이 되었다.

오전 10시부터라고 하는데 그 시간을 피하면 될 것 같아서

그냥 새벽까지 기를 쓰고 앉아 있다가 자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10시를 넘겨서 일어나 1번의 찬스가 있는 화장실을 쓰면 될 거라고

아예 12시 가까이에 깨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에어컨도 꺼진다는 건데 더워서 잠은 올까 하는 생각에

그럼 아예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니

엘리베이터가 멈추기 전에 나가야 한다는 것에 복잡해졌다.


나가는 것을 택할 것인지 아예 새벽까지 깨어 있는 것이 나은지

하루 종일 틈만 나면 궁리를 하면서 최선의 작전을 짜자고 했는데

방송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알려 주면서 혼돈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두 시간의 정전을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나도록 할 거라고 한다.


왜 그런지 나는 늘어지게 살고 있다가 이런 긴장이 오면

쓸데없이 풀가동을 해서 샤워실의 물청소에 부엌 정리도 하는지

그렇게 피곤해진 몸은 새벽을 기다리지 못하고 잠 속으로 들어가서

6시 반에 깨어 시계를 보고 더 자자고 눈을 감고 기분 좋게 잤다.


계속 중계를 하듯이 방송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는데 8시 반.

10시의 정전이 9시 50분부터 할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늘어져서

수많은 궁리를 한 사람 치고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

이대로 2시간을 더 잔다면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을 거라고 눈을 감았다.


잠깐 잤는지 9시 반에 하는 방송에 또 잠에서 깼다.

두 시간이라고 했던 정전 시간이 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점검을 하고 이 불편을 줄이겠다고 하는 방송이 더 불편해서

아무 말 없이 점검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했다.

누군가는 전기가 잠시라도 나가면 탈이 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튼 이런 요란스러운 정전은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55분이 지나는데 정전은 아직이더니 딱 10시에 조용해졌다.

다시 에어컨이 켜 질 때까지 그냥 늘어져 더워지지 않게 있기로 하고

인터넷이 없는 세상도 살아봐야 한다고 태블릿으로 읽을거리를 찾는데

휴대폰에 와이파이가 안 되니 데이터를 쓴다고 소리를 내면서 알려왔다.

정말 참신한 알림 소리였다.


이렇게 헤매다가 보니 벌써 25분이 되어 이제 반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왜 무거워졌는지 모르는 마음이 잠깐 남은 전기 없는 세상을 느끼자고 하니

10분이 지나 에어컨이 움직입니다 하면서 소리를 내더니 인터넷이 되었다.


옛날 옛적에는 정전이 되었다가 불이 들어오면 나지막한 이 집 저 집에서

환호성의 큰 소리에 우리 집에서도 담장 너머로 맞장구를 쳤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감흥이 없다.


혼자 지내는 나를 위한 이벤트였는지 겨우 35분의 정전으로 끝났다.

이틀이나 작전을 짜면서 고민했던 것이 실천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듀오링고의 표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