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보내는 소포
작년 새로 이사한 뉴저지 아파트에서 처음 겨울을 지내면서
전기요금이 상관없었던 할렘의 셰어하우스가 따뜻했다는 말에
뉴저지의 아파트가 얼마나 추운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장갑부터 푹신한 실내 슬리퍼에
집안에서 입고 있을 두툼한 바지등 계속해서 보냈었는데
집안이 춥다는 것은 일본 고베의 아파트가 잘 설명을 해 줘서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날 때마다 소포로 보냈었다.
물론 보내는 소포요금이 내용물보다 많이 비싸다.
그런데 아이 얼굴을 보면서 이런 게 도움이 될 거니 사라고 하면
그냥 멀뚱 거리는 표정으로 그런 건 어디에서 사야 하냐고 묻는다.
먹는 것은 어디에서 사야 하는지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 사야 하는 것에는 당황하는 듯해서 걱정이 되었다.
당장 얼어 죽지는 않겠지만 아파트 벽에 있는 히터가
바닥까지 데우기는 어렵고 그러는 사이 머리에는 땀이 나는데
그렇게 만족도 안되는데 전기요금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래서 고베 아파트에서 지내는 식으로 두꺼운 옷을 입고
푹신한 앞이 막힌 슬리퍼를 신고 지내니 살만하다고 했는데
고베 아파트에는 침대에 전기담요가 있어 그걸 추천하니
거기까지는 안 해도 될 거라고 했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전기담요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있는데
친구가 자신이 쓰던 오리털 이불이 오래되어서 삐져나온다고
이번엔 양모 이불로 바꿀 거라며 체온을 잘 유지시켜 준다며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데 아들의 아파트가 떠올랐다.
이게 올해 봄이었는데 미리 보내는 것은 그러니까 하면서
선선해지면 보내자고 좋아하는 아들의 얼굴을 상상했었다.
반드시 올 가을에는 양모 이불을 보내야지 하는 계획으로
여름을 보내고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했더니
트럼프 씨가 나의 계획을 막았다.
이제 가을이 오니까 하면서 이불을 보내자고 하니
우체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소포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다시 보낼 수 있게 될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오만가지 생각을 모두 하다가 아들이 생각을 멈추게 했다.
차분한 아들은 겨울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했는데
해야 하는 일에는 모든 것을 다 동원시키며 요란을 떠는 나는
이불을 들고 내가 가져다주는 것까지 생각을 했었다.
양모이불이 미국에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그걸 사는 것으로
그럼 우편요금을 붙여서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양모이불은 드라이를 해야 하니 커버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그런 것들을 모두 아들이 알아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10월 말에 아들이 페이스타임으로 나를 부르는데 옷차림에 놀래서
그렇게 춥니 했더니 한겨울이라고 하는데 정말 기온이 한자리였다.
얼마 전에 얼굴 보고 이야기할 때엔 반팔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긴팔이 아니고 두툼한 긴팔에 썰렁한 분위기가 가여워 보였다.
그동안 우체국에는 가끔 연락을 해 봤었는데
전산 시스템이 불나기 전에 소포를 받기 시작했는데 불이 났다고
불이 난 전산 시스템이 복귀가 되면 소포를 받을 거라고 했다.
희망이 보여서 양모 이불과 순면 이불 커버를 샀다.
커버에는 속통과 연결하는 고리가 있는데 양모이불에는 없어서
11개의 고리 중 균형을 맞춰서 8개를 손으로 꿰매 달았다.
양모이불은 봄가을용의 차렵이불로 그렇게 얇지는 않았지만
이불 커버가 한쪽은 누빔으로 되어 있어 합해 두었더니 두툼했다.
그리고 한겨울용 실내화를 푹신한 것으로 사려고 다녔는데
그러는 사이 우체국에서 미국으로 보내는 소포를 받는다는
공지가 뜨고 나는 바로 스마트 우편 접수를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전화로 확인을 했는데 식품은 안된다고 해서
컵 라면과 쵸코렛을 넣어 정말 세관에서 압수를 당하는지 보기로 했다.
10월 31일 오전에 갔다가 착오가 있어 집에 와서 다시 접수를 하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바로 1시에 우체국에 놔둔 소포를 보냈다.
이전과 다른 것은 세금이라는 것을 우편요금과 다르게
은행 계좌에서 바로 이체를 시켜야 했다.
보통 이렇게 보내면 7일에서 10일 정도가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11월 1일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하는데
웬일로 하다가 사람들이 미국으로 소포를 안 보는 건가 했다.
나도 이불만 아니었으면 치사해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보다 했더니 뉴욕에 도착해서도 빨랐다.
31일 보내고 아들이 3일 연구실에서 돌아와 페이스 타임으로
얼굴을 보면서 꺼내어 컵라면 두 개와 쵸코렛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4일 아들이 연구실에 가면서 전화를 해서 이불이 정말 따뜻하다며
내가 얇으면 가지고 있는 담요를 그 위에 덮으라고 했는데
이 이불 하나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이번에 또 인생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불을 사서 보낼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상의 흐름이 그런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정말 내가 어찌해 볼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겪으며
욕심을 버려야지 했었는데 고작 아들에게 이불 보내는 일에도
내 욕심이 과 했었는지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