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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띵 Oct 31. 2024

이런 게 바로 럭키비키인 건가

괜히 하는 게 아닌 원영적 사고

 평화로울 줄 알았던 주말 아침. 3분 간격으로 연달아 울린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뭐야, 누가 아침부터 이렇게 카톡을…” 퉁퉁 부운 눈을 힘겹게 반쯤 뜨며 스마트폰 알람을 확인했다.


[신한 체크카드] 450원 출금 / 08:15
[신한 체크카드] 72,000원 출금 / 08:18


 자주 사용하지 않던 체크카드 결제 알람이었다. 잠결에 그저 '카드값 빠져나가는 날인가 보다'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찜찜했다. 평소 나름 근검절약을 하는 편인데 7만 원이 넘는 금액을 결제한 적이 있었나? 저 정도 금액의 물건이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제대로 정신 차리고 카드 사용 내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찜찜한 기분은 혹시 모를 예상을 적중했다. 내가 가본 적도 없는 편의점에서 결제된 내역이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카드를 잃어버렸고 그 카드를 누군가가 주워서 사용한 거구나.


 부랴부랴 신한카드 고객센터에 분실 및 도난신고를 했다. 그리고 112에도 신고하면 대부분 범인이 잡힌다고 하길래 전화를 걸었다. 살면서 한 번도 눌러본 적 없는 번호에 긴장됐지만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황을 얘기하니 집 앞으로 오셨다. 33도가 넘어가는 불더위에 경찰차 본네트를 받침대로 삼아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다음엔 결제된 편의점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사장님이 받으셨고 상황을 얘기했더니 정확하게 범인을 기억하셨다. "아, 그분… 엄청 허름한 차림으로 담배나 술 한 병 사가는 분인데, 오늘은 엄청 이것저것 많이 사길래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카드로 호의호식을 누린 게 확실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담당 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범인 잡았는데 이미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네요.

 하긴 요즘 세상에 남의 카드 주워서 사용하는 사람이 흔한가. 범인이 쓴 72,450원은 돌려받을 수 없게 됐지만 카드사로부터 결제 금액의 80%를 보상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머릿속에 든 생각이 럭키비키 원영적 사고를 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 1억 1천만 원 중 8천만 원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 중 '대출금 20년 분할 상환'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세사기피해자 특별법 20년 분할 상환이란?
내가 빌린 대출금의 90%를 주택 금융공사가 은행에 먼저 한 번에 갚아준다.
그럼 나는 주택 금융공사에 대출금 90%를 20년 동안 나눠서 갚으면 된다.


 이 제도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대출금의 10%는 내가 은행에 갚아야 한다. 하필 대출금이 빠져나가는 시기가 이 사건이 일어나는 즈음이었다. 언제 돈이 빠져나갈지 모르니 미리 통장에 돈을 넣어두라 했던 은행원의 말을 착실하게 이행해 놓은 상태였다. 


 만약 범인이 카드를 주워 마음대로 쓰고 교도소에 갈 마음이었다면? 72,450원이 아닌 7,245,000원을 결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오히려 카드를 잘 간수하지 못해 약간의 벌금(?)을 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게 바로 럭키비키 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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