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제(INFJ)는 오늘도 기가 빨린다.

내가 날 이해하려는 중입니다.

by 승띵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을 때, 좁은 원룸 방에 옹기종기 모여 집들이를 했던 친구들이다. 나름 각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졸업 후 연락은 뜸해졌고 단톡방도 조용해졌다. 가끔 누군가 "우리 언제 만날까?"라는 운을 띄워도 각자의 사연이 깊어(?) 모임은 쉽게 성사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만났다. 내가 총대를 메고 '이번에 불참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라고 선포했다. 물론 진짜 벌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꼭 만나고 싶다는 진심을 서투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다들 벌금은 피하고 싶었는지(?) 소중한 토요일 점심시간에 드디어 만났다.


우리 모임은 총 5명이다. 성비가 3:2, 남자 셋, 여자 둘. 대화는 주로 이 두 사람이 이끈다. 그중 한 친구가 올해 결혼을 한다. 그녀는 극 E성향을 가졌다. 본인 결혼식 하객들이 다 함께 어울려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마음 한편이 심란(?)해졌다. 극 I성향을 가진 나에게는 상상만으로도 고난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과 금세 어울리고 친해지는 그녀가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한껏 흥이 오른 그녀의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계속 듣자니 피로감을 느꼈다(미안).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스위치가 딸깍하고 꺼진 느낌이 들었다. 말은 듣고 있는데 집중이 잘 안 되고 괜히 스마트폰 시계만 바라봤다. 아직 친구들은 활발하게 떠드는 모습이 여전했다. 그 사이에서 조용히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실시간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걸 느끼면서도 그냥 조용히 앉아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금방 지쳐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줄 안다면,
솔직히 누가 좋아하겠어.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가끔은 '왜 나를 좋아할까?'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낯선 상대와 친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오래 기억하고 진심으로 마음에 담는 사람이다(고 믿는다). 최근에서야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제야 나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한다.




집에 돌아오니 적막함이 반가웠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만히 오늘을 곱씹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나를 지켜나가는 중이다. 물론, 오늘 기가 조금 빨리긴 했다. 그래도 그만큼 진심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괜찮다. 조금만 쉬어주면 다시 괜찮아질 거다. 늘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