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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Mar 01. 2020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단상

지금 시간은 2020년 3월 1일 오후 6시 28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 전체가 마비 상태다. 사태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런 말을 하기에 비교적 이른 감은 있지만, 나는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또 한 편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현재의 상황에 지나치게 낙담하지 않고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을 나누고자, 글을 적어본다.


나는 직업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사람이다. 평소 브런치에 쓰는 글과 달리 이 글은 내 직업 정신에 충실하게, 즉 사실과 숫자에 기반하여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을 충실히 기울이고자 했다.



1. 한국은 잘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분명히 좋지 않다. 아래 차트는 '코로나19 상황판'(https://wuhanvirus.kr/)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태 발발 이후 전 세계와 한국의 확진자 및 사망자 등 추이를 보여준다. 1월 말 중국에서 대규모 확산이 일어난 후 한국은 초기 방역에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대략 지난 주말인 2월 22일을 기점으로 대규모 지역감염으로 번지며 순식간에 확진자 수 세계 2위의 국가가 되었다. 이제 전 세계가 한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27일 현재 기준 한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나라가 35개국, 입국절차를 강화한 나라가 44개국이다.




사태의 진앙지는 대구였다.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종교단체인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의 신도들을 중심으로 지역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 18명 중 17명이 대구 경북에서 나왔다. 대구 시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기원하며, 대구 경북 지역 시민 여러분의 무사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에 마스크 품귀현상까지 일어나 정부가 악덕 유통업자들을 검거하고 공적 물량을 확보하는 초강경 대응을 취했다. 더 일찍 조치를 취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거나 할 일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가 시장의 유통 질서에 직접 개입하는 건 매우 어려운 결단으로, 이 정도의 개입을 한 것은 아마도 수십 년 만일 것이다. 현 상황을 전시 및 사변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식했기에 할 수 있는 조처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모두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황을 낙관하는 실마리는, 아래의 차트다.


아래의 차트는 코로나19 상황판에서 가져온 데이터를 가공한 것으로, 국가 별 누적 확진자 수와 치사율(사망자 수 / 확진자 수)을 표현한다. 한국은 확진자 수로 2위지만, 치사율은 0.5%가 조금 되지 않는 수준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주요 발병국인 중국, 이탈리아, 일본, 이란의 치사율은 모두 2%가 넘는데, 어째서 한국의 치사율은 0.5%가 되지 않는 수준일까?


한 탐사보도지 기사가 이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 이 기사에서 인용한 부산시의회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한국이 확진자가 많은 이유는 압도적 검사 속도로 확진자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아래 포스터를 보자. 한국은 다른 나라 대비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검사 건수는 약 65,000건으로, 일본의 1,890건, 미국의 445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기사에서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구수 대비 검사 건수로 비교하면 한국의 검사율은 일본의 100배, 미국의  1,000배에 달한다. 참고로 내가 조금 전 뉴스 속보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누적 검사 건수는 3월 1일 오후 기준 9만 건을 넘겼다. (포스터 출처- 노컷뉴스 2020.02.29 '확진자 많다고요?…"가장 용감하게 싸우는 나라"' 링크)


직업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사람으로서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모든 숫자와 통계는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본인 스스로의 관점과 기준, 그리고 건전한 회의주의가 더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확진자 수를 보고 공포와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힐 수 있겠지만, 숫자를 보는 관점을 달리 하면 이렇게 정반대의 해석을 도출할 수가 있다.


나는 이 데이터에서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긍정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 데이터는 우리가 분노, 공포, 불안에 지배당하지 말고 이성을 신뢰해야 할 믿음의 근거다.


한국의 확진자 수가 많은 이유가 압도적 검사 속도에 기인한 것이라면, 치사율이 다른 나라의 1/5, 1/7 수준인 것도 설명이 된다. 조기에 발견해서 의료적 개입을 했고,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대구 지역의 의료 자원에 비해 너무 많은 업무 부하가 걸리는 바람에 모든 증상자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진료 대기 중 유명을 달리하신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도 난 현장의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 하고 있고, 그게 숫자로 증명이 된 것이 이 치사율 통계라고 생각한다.


난 이런 상황에서도 잘하는 건 잘한다고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병마와 싸우는 실무자 분들이 더 힘과 용기를 얻고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도 같은 논지로 한국의 상황을 평가했다. 타임은 2월 25일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코로나19 발병 통제 불능 상태가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 배경에는 개방성과 투명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 한국분교 방문학자인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교수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진단 능력이 우수한 데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주적인 책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서 "이 지역에서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나라는 거의 없다"라고 평가했다. (기사 원문 "How South Korea’s Coronavirus Outbreak Got so Quickly out of Control" 링크).


안드레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은 1) 우수한 의료 시스템 2) 언론의 자유 3) 민주적 시스템 덕분이다.


1)은 우리가 과거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극복하며 학습한 경험이 의료 시스템에 자산으로 축적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할 것이다.


2)와 3)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잘하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특히 사태 초기에 정보 은폐와 소극적 대처로 일을 키웠던 중국과 일본의 사례에 비해 매우 대조적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정권 유지에 불리한 정보를 노골적으로 은폐하고 탄압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기정사실이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한편 옆 나라 일본의 경우는 '도쿄 올림픽 개최에 누가 될까 봐 크루즈 탑승객들을 선상 격리시켰고, 그 결과 대규모 확진자가 나왔다'는 해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수치스러운 처사인가...



2.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태 초기에 중국민 입국을 원천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을 성토한다. 과연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과 2~3년 전 명동 상권이 다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가 사드 외교에서 무능하게 처신해서 중국이 관광객을 다 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그 사람들 다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중국민 입국 금지 청원에 동참하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국제 사회의 외교적 관례에서 특정 국가의 국민 전체를 원천 봉쇄하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의 밥줄을 틀어쥐고 있는 경제강국으로, 사실상 한국은 중국한테 밉보이면 경제 전체가 휘청한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중국민 입국 금지를 그렇게 감정적으로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타국의 불행에 어떻게 처신하는지에 따라 외교적 득실이 갈린다. 한국은 중국민을 원천 봉쇄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적어도 명분은 얻었다. 또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만약 중국민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신천지 교도들이다.


더 자세한 역학조사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신천지 신도들 42명이 1월 중 우한에 방문 후 귀국했다고 한다. 이들이 집단행사에서 연쇄 감염을 일으키고 지역사회에 전파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감염원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입국을 차단했어야 하는데, 민주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은, 그들이 비록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교리를 따른다 하더라도 자국민인 이상 보호할 책무를 진다.


한편 한국이 확진자 수 기준 세계 2위로 올라선 뒤 국제사회에서 한국민 입국 금지를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 상황을 관전하는 것도 꽤 흥미롭다.


안 좋은 사례의 대표는 베트남으로, 한국 입국자 전원의 입국을 거부하고 군부대에 강제 격리했다. 최근 한국과 매우 활발하게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하고 있었고,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수혜를 많이 받았다고 할 수도 있는 국가인데, 그들은 이번 처사로 한국민 모두의 공분을 샀다.


베트남 정부는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한 외교적 비용을 만만찮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YTN 기사 "외교부, '한국 항공기 착륙 금지' 베트남 대사 불러 강력 항의" 링크)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만약 상황이 반전되어,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1호 국가가 되고, 다른 국가들이 한국의 사례를 배우러 오는 상황이 온다면?


베트남 정부가 단호하게 자국 방역에 임하고 있긴 하다만, 만에 하나 실패해서 그들도 한국을 배우러 와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그들은 얼마나 비굴한 신세가 되는 것인가? 사실 양국 관계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게 많은 건 베트남 쪽일 것이다. 역사는 이 사건을 베트남의 중대한 외교적 결례로 기록할 것이다.


한편 현재 한국민의 입국을 금지한 35개국 중,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는 일본 외에는 없다. 일본은 늘 항상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얄미운 처신을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치자. 나머지 국가 중 선진국이 없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린 국제 사회에서의 성숙한 외교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올바로 판단한다는 얘기다. 외교적 득실을 따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국의 실리에 도움이 되는지를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선진국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호주 정부의 입장문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호주 정부는 한국의 선진 의료와 정보 투명성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민 입국 금지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반면 중국과 이란 국적 입국자에 대해서는 금지 조처를 내렸다. 사실 이건 가치와 도덕의 문제를 떠나,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출할 수 있는 올바른 결론이다. (뉴시스 기사 '호주 보건당국, '韓입국 금지' 안 하는 이유.."선진의료·정보 투명"' 링크)


바이러스 확진자를 0명으로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유럽과 미국까지 뚫린 이상 전세계 확산을 피하기 어려울 이다. 이 와중에 확진자가 나온 국가 중 가장 대응을 잘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앞서 길게 서술한 바와 같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설적인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투명성과 민주적 시스템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고의로 정보를 차단하고 왜곡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미지의 위협이다. 미지의 위협에서 오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의 출발은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틀렸다'에 직면했을 때 '내가 잘 몰랐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한국은 잘하고 있다. 중국, 일본, 이란은 아직 자신들이 얼마나 모르는지를 인정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베트남을 포함, 공식 통계가 나오지 않은 다른 나라 모두가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잘하고 있다. 훗날 코로나19 방역을 가장 성공적으로 한 국가로 평가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강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과거에 섭섭하게 했던 국가들에도 아량을 베푸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생각을 마무리하며


나는 원래 국뽕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이 잘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이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적었다.


나의 낙관이 너무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대구 외 다른 지역에서 미지의 감염원 집단이 발견되고, 또 대규모로 확진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잘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잘한다면, 현명하게 이 상황을 극복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관은 낙관을 이기지 못한다. 건전한 회의주의와 함께 하는 낙관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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