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검표원이 떴다! 하지만 이 검표원은 약간 특별한 검표원이다. 그가 파리 지하철에 들어서는 것은 표를 검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는 바로 당신의 행복을 검사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 지하철이 더러운 건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 지하도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나고, 열차는 노후하기 짝이 없다. 연착과 파업, 한 두역 건너뛰기 (공사 등으로 정차하지 않고 통과)등은 다반사, 객차 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있어야 한다. 그럼 나같이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도 저절로 무표정, 불편한 기색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정글과도 같은 지하철이기에 꽤 낙천적이라고 하는 프랑스인들마저도 여유를 잃어버린 것일까? 그 지하 공간에서는 웃음과 행복이 모두 사라져버린 양 승객들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 흐름에 역행하여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행복 검표원 에마뉴엘 아르노 Emmanuel Arno씨를 만나보았다.
약속 장소인 19구에 있는 비스트로 레스카르고 L'ESCARGOT에 먼저 도착했다. 그의 아지트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오래된 빈티지 스타일, 어둑한 분위기의 까페 겸 펍이다. 바 형식으로 쭉 이어진 테이블 그리고 대충 들여놓은 듯한 테이블과 의자가 멋스럽다. 경쾌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와 어깨가 들썩인다.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행복검표원의 상징인 빵모자를 쓰고 확성기를 든 아르노씨가 나타났다.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 펍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나를 소개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순간 당황하고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호기심이 꿈틀 거렸다. 데낄라에 살짝 취한건지 원래 그런 건지, 인터뷰는 뒤로하고 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기자 생활 할 때의 이야기,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 뉴욕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의 생활, 옛날 영화, 연극, 시….등 예술과 문학의 전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끝이 없다.
“바르베스 로슈슈아 Barbes-Rochechouart 이 동네는 위험하니까 그 근처에는 안가는 게 좋아요. 마약에 대한 취재를 하다가 3명의 마약중독자에게 칼로 목이 찔렸는데 다행히 그 전에 응급처치방법에 대한 기사를 쓴적이 있어서 곧바로 자가 지혈을 하고 공중전화까지 몸을 이끌고 가 소방서에 신고를 한 뒤 쓰러졌죠. 그렇게 3일 동안 코마상태에 있었어요. 그 때 제 두 딸 중 첫째가 보도기자일을 계속 할 건지 동생과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 손주가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볼 건지 결정하라고 했죠. 그 후 잠시 3년 동안 뉴욕에 갔어요. 가수 ‘펑카델릭’의 보컬 조지 클린턴 George Clinton의 프랑스 담당 매니저로 지냈죠. 나이가 75세인데 우리보다 더 젊게 사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파리로 돌아와서 보도기자가 아닌 기자로 생활하기로 결정했어요. 근데 여전히 위험한 일이긴 해요. 왜냐하면 아름다운 여성으로 가득찬 나의 작은 파리 My Little Paris라는 여성웹진에서 일하거든요.(웃음)”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행복 검표원)을 하게 되었나요?
2009년도 뉴욕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됐을 때 파리 지하철을 탔는데 감옥에 갇힌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파리지엥들에 진저리가 났어요.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행복검표원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전 외치기 시작했죠. “신사 숙녀 여러분, 행복 검표원입니다. 저에게 미소를 보여주세요!!”
파리와 비교할 때 뉴욕 지하철의 모습은 어떻든가요?
뉴욕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요. 서로 쉽게 대화하죠. 파리에서라면 “왜 나한테 말을 걸지? 울랄라 내 지갑을 노리고 있나?”라고 생각하죠. 항상 경계하는 태도이고 사람들을 불신해요.
행복검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일단 예고없이 객차에 들이닥치죠. 한 손에 확성기를 들고, 정치, 철학, 인생, 그리고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작은 연설을 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미소를 날려줄 때까지 졸졸 따라다니죠. 제 목표는 최대로 많은 미소를 수확하는 것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저의 희생자(?)는 아침에 특히 까다롭고 불평이 많은 사람과 저녁에 투덜대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저는 짓궂은 장난을 친답니다.
근데 저같이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소를 얻어내는 것이 무척이나 고생스러울 것 같아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어머나! 갑자기 시범을 보이시는 이 분..! 극장을 방불케 하는 파리의 행복검표원, 비스트로의 손님들이 관객 또는 배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행복 검표원입니다. 저에게 미소를 보여주세요!! 저 혼자 할 순 없죠. 제 반에는 척하는 학생이나 딴 짓하는 학생은 원하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박수갈채하는 건 몸에 해롭지 않답니다. 죽지 않아욧!! 반대로 더욱 살아있는 느낌을 받죠. 아 좀 피곤하신 것 같은데 분발하셔야겠어요. 그거에요! 눈부신 미소네요. 흠 잡을 데가 없네요. 유혹하는 미소군요, 로맨틱한 미소에요~!”
사람들의 미소에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는 행복 검표원. 결과는 정말 놀랍다. 굳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정말 끼가 많으신 것 같아요.
사실 2년 전 프랑스 유명 배우 브루노 솔로 Bruno Solo 의 초대를 받아 올림피아 극장과 파리 카지노에서 오프닝 공연을 맡기도 했었죠.
이번 9월에는 ‘행복검표원 군단’이라는 제목의 페스티발을 열거에요.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초대할건데 첫 무대에는 탭댄서, 불을 뿜는 곡예사 그리고 그리오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구송 口誦 시인)가 될 거에요. 두 번째 무대에는 모로코, 프랑스, 미국 출신의 오페라가수 3명이 꾸며 줄 예정이죠. 다문화 공연이야말로 행복검표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면?
어느 날 지하철에서 10살짜리 꼬마아이가 제 코트 끝자락을 잡아당기며 말을 걸어왔죠. “아저씨, 행복검표원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게 슬프지 않나요?”라고., 나는 그 아이를 “장래가 밝은 꼬마 철학가”라고 별명을 붙여줬어요.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죠.
또 3년된 이야기인데 하루는 RER B호선에서 미래의 엄마가 될 오랠리 Aurelie라는 임산부가 탔어요. 훌륭한 미소의 소유자였죠. 그 객차에 45명 정도가 있었는데 좋은 분위기였어요.
“미래를 담고 있는 이 멋진 미소를 보세요! 다 함께 박수갈채를 보낼까요?”라고 그녀를 소개했죠. “실례지만 여자애인지 남자애인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여자애이고 3개월 안에 나온다고 그녀는 대답했어요. 그래서 나는 진짜 가족처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빠처럼 “여러분, 딸이래요!!!! 맙소사!!!!”라고 외쳤죠. 그러자 모든 사람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휘파람으로 환호했죠. 처음으로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 건데 따뜻한 응원의 손길에 감동을 받았다며 제 블로그에 글을 남겼더라고요.
어느 날 아침에 4호선 지하철을 돌고 있는데 한 빵집 주인이 “당신에게 드릴게 없네요. 오늘 새벽에 만든 따끈따끈한 브리오슈 괜찮으세요?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댁처럼 말솜씨가 없어요. 근데 결혼을 하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그래서 제가 “여기 결혼하기 딱 좋은 미소가 있네요. 게다가 뛰어난 제빵사랍니다. 제가 증명해드리죠. 마침 저에게 이 따뜻한 브리오슈를 선물해줬거든요.” 이 이야기들이 예쁜건 무엇보다도 진실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이에요.
어느 날 금발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18살 소녀가 있었죠. 그녀는 그 객차 안에서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미녀였어요. 제가 지하철에 올라타자 그녀가 전화를 끊더니 “마침 잘 만났어요.”라면서 “오늘 저희 아빠의 53번째 생신이세요. 실직하신지 5년 되셨는데 방금 전화로 직장을 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라고 기뻐하더군요. 그래서 즉흥적으로 청중에게 전했죠. 모두가 ‘와~~~’ 감탄사를 터뜨렸어요.
행복이란?
행복이라는 건 인생의 여정과도 같아요. 날마다 작은 행복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 진주처럼 꿰어 큰 목걸이를 만들면 그게 바로 행복이지 않을까요?
행복 검표원이라는 직업은?
사회의 척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대개 슬픈 공간인 지하철에 약간의 즐거움을 불어넣을 수 있는 너무나도 근사한 일이죠. 미소가 없는 사람에게 미소를 되찾아 주는 것. 미소가 있는 사람에겐 그 미소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것. 그렇게 행복한 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제 미소를 평가해주세요.^___^*
와.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미소에요. 너무 맑고 순수해요:) 저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죠.
하지만 그에게 가장 빛나는 미소는 바로 그의 부인의 미소였다. 둘의 첫 만남과 프로포즈는 당연히 지하철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 “웃음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다.” 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미소라는 건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비밀의 키 같은 것 아닐까? 그가 지나간 길에서 낯선 사람들이 옆 사람과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행복해하는 것은 어두웠던 공간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다. 어쩌면 몇 년 동안 서로 마주쳐 지나가던 인연일 수도 있었겠지... 그의 깜짝 검문은 가끔 감동적인 만남으로, 따뜻한 우정으로 이르게 할 것이다. 만약 더 많은 행복검표원이 있다면 대중교통 타는 것이 더욱 즐겁지 않을까? 아니 우리가 바로 행복검표원 본인이 된다면 어떨까? 나의 다음 여행 때 지하철역에서 만나면 나의 이야기로 연설을 해주겠다는 행복검표원씨의 약속을 간직하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