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엽 Aug 21. 2022

불확실성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조언하기

의문 제기보다는 지지와 도움을 주세요

살면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불확실성을 만나게 된다. 아니 확실한 것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로, 인생의 모든 것은 불확실한 것들의 연속이다. 인생 자체가 그러하다 보니, 불확실한 상황에 마주한 내 주변의 사람들의 고민과 곤경 역시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결혼이나 취업, 학업 등 인생의 중요한 선택지를 앞두고 고민하는 가족들, 이직을 결정한 친구들, 스타트업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도전을 하는 지인들, 새로운 미지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동료들.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무릅쓰는 (Risk-taking) 사람들을 언제나 만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상대에 대한 애정에 기반하여 '조언'이라는 명분 하에 이런저런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상대에게 진정한 위안과 도움을 주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위안이나 도움은 커녕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을 더 큰 고민에 빠지게 하거나 상처를 주고 만다. 나 역시 내 인생의 기로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또한 섣부른 조언을 하려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왜 우리는 애정이라는 명목 하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상처를 주지 않고 내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진짜로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적절하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실제로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거나 들었던 다양한 조언들을 바탕으로 이런 상황에서 써먹을 작은 원칙들을 세워보았다.  






[해선 안 되는 말] 결정에 대한 의문

Case 1. 대기업인 두산중공업에서 스타트업 원티드로의 이직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회사 선배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너 미쳤어? 그 회사 망하면 어쩌려고 그래? 왜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하는 거야?"
Case 2.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 업무를 하면서 성공확률이 10%도 채 되지 않을 신사업에 도전할 때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 프로젝트 성공확률이 너무 낮은 거 아니야? 실패할 가능성은 생각해본 거야?"
Case 3. 암으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어르신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암에는 XX 치료법이 좋다고 하던데 그 치료법을 그때 한번 써보지 그랬니?"

이 모두는 내가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너무나 무례하고 상처가 되는 말이다. 누가 저런 말을 하나 싶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저런 식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최소한 나는 자신이 없다. 나 역시도 어쭙잖은 조언으로 수도 없이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그 결정 맞는 거야?", "이런 생각은 해봤어?", "그 결정 위험하지 않아?" 이런 말들 말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사실 이 대화를 통해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미 이직을 결심했고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입사할 회사 모두에 컨펌을 했었기에 선배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상황이었고, 스타트업 사업개발 직무를 담당하는 나는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확률이 낮았기에 안정적인 프로젝트는 존재하지 않았고, 돌아가신 어머님은 말할 것도 없다.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힘들게 해당 결론에 도달해있는 상대방에게 불확실성을 들춰내는 말은 해선 안 된다.

(여러 선택지가 열려 있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 말은 틀린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전에 우리는 아주 약간의 차이로도 내 마음속의 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상대방도 본인이 처한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이어서 말을 해보자면, 나는 이미 누구보다 스타트업의 위험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프로젝트의 성공확률에 대해 분석하였으며 어머니에게 좋은 치료법을 공부했었다. 본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훨씬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하였을 테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긴 시간 동안 생각해서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내가 제3자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해본 결론의 깊이가 상대방의 그것보다 더 깊긴 어렵다. 나의 생각의 깊이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 상대방은 바보가 아니고, 나는 그렇게까지 똑똑하지 않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당신의 가족, 친구, 동료는 굉장한 고민 끝에 6:4, 55:45 등의 근소한 차이로 결론을 내리고 현재의 선택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9:1이나 8:2 같은 명백한 선택지라면 사실 그것은 고민도 아니니 말이다) 굳이 그런 그에게 포기한 선택지가 왜 좋은지, 현재의 선택지가 얼마나 위험하고 단점이 있는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언급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그는 했을 것이다. 당신의 어쭙잖은 조언은 힘들게 결론을 내린 상대방을 더 지치고 힘들게 만들 뿐이다. 굳이 내 앞에서 왜 본인의 결정이 여기에 도달했는지 변명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답은 이미 그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없으면서 저런 이야기를 해버리게 되는 사람의 심리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애정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정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런 말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애정은 너무도 따뜻한 의도이고 칭찬받아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잘 모르는 주제과 고민 앞에서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해버리고 만다.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 애정은 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적절한 말은 무엇일까?



[해야 하는 말 1] 공감과 지지


채용플랫폼인 원티드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직에 대해서 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원티드에서도 리더로서 일을 하다 보면 이직을 하게 되는 동료들과 면담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럴 때 내가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고민하느라 엄청 힘들었겠네요. 충분히 깊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테니
어떤 결정이 되었던 저는 그 결정을 믿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이 말 한마디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였다. 꼭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공감과 지지의 말을 들은 들은 사람들은 항상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면 스스로는 답을 내린 상태일 것이다. 그것이 확신에 찬 결심일 수도 있고 한쪽으로 살짝 마음이 기운 상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민 끝에 어느 정도의 답을 찾은 이후에서야 누군가에게 털어놓게 된다. 힘든 고민 끝에 현재의 결론에 도달한 상대의 노고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도록 하자. 조언을 하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해야 하는 말 2] 과정에 대한 조언

Case. 새로운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를 보고하는 나에게 대표님이 해주셨던 이야기
"진행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승엽님이 이미 충분히 검토해보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진행 여부에 대해서는 승엽님의 판단을 믿을 테니, 이제부터 저와는 '어떻게 하면 임팩트를 더 크게 내고 실패 확률을 줄일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네요"

당시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투입되는 리소스에 비해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고, 그런 고민의 끝에 근소한 차이지만 진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가지고 대표님께 보고를 하였다. 나 또한 리더 역할을 하면서 비슷한 보고를 굉장히 자주 받아 보아서 당시 대표님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데, 내 확신이 60%였다면 대표님의 확신도 50~70% 정도였을 것이다. 아무리 대표님이라 할지라도 100% 확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표님은 본인 마음의 불확실성을 감추고 나를 믿어주었다. 앞에서 언급한 "해야 하는 말 1. 공감과 지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뒤의 말이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과정에 대한 조언"이다. 진행 여부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내가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부분, 어떻게 더 크게 임팩트를 낼지와 실패 확률을 줄일 지에 대한 부분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선택 자체가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상대방은 A냐 B냐에 대해서만 고민을 하느라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그러느라 과정(HOW)에 대한 생각은 못 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대에게 과정에 대한 조언을 해주도록 하자. 그 과정에서 당신이 해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서 제안해보자.

 

“내가 아는 범위에서 A를 하는 데는 X, Y, Z가 중요한 것 같아.
 X, Y, Z 잘 챙기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 있음 알려줘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어서, 내가 이직을 하면서 받았던 멋진 조언이자 나 역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을 하나 소개해보겠다.

"보통 이직을 하면서 현재 내 회사를 떠나는 고민, 어떤 회사를 갈지에 대한 고민에 몰입을 하게 되는데... 그 둘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고민은 새로운 회사에서 어떻게 잘할지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아. 이미 어디로 이직을 할지를 정했으면 이제 그 부담은 내려놓고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잘 적응할지에 더 많이 하면 좋겠다."

조언을 해주신 선배님의 말처럼 나는 오랫동안 일해온 회사를 떠나는 데에 대한 고민, 떠나서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었다. 정작 이직을 한 이후 내 미래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새로운 회사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성과를 낼지에 대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선배의 조언을 새로운 도전의 과정에 대한 적절한 조언이었고, 내 생각의 폭과 깊이를 크게 확장시켜주는 조언이었다.


한마디 더 첨언을 하자면, 이 조언은 '결정을 바꾸기 위한 조언'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정을 어떻게 더 잘 진행할지에 대한 과정에 대한 조언'이라는 점이다. 반복해서 이야기했듯이 결정을 바꾸기 위한 조언은 오만한 참견에 가깝다. 상대방의 고민의 깊이와 결정의 무게감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불확실성을 들춰내는 것이다. 이미 결론을 내린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닥을 뒤흔드는 조언이 아니라, 결정된 방향을 어떻게 더 잘 완료할지에 대한 조언이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있으실 것이다. 동의한다. 내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상황도 물론 존재한다. 위의 내용에 대한 예외사항, 다시 말해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예외] 결정한 것을 바꿀 수 있는 힘과 책임이 있는 상황


상대방의 판단력이 미숙하고 판단의 근거나 정보가 부족하다면 당연히 그 판단은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때 당신이 더 좋은 판단력이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결정 자체에 대한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주로 여기에 해당될 수 있고,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선배나 팀장 등이 해주는 조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럴 때에는 선택에 대한 존중보다는 올바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불확실한 리스크(Risk)를 책임지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다시 말해 당신이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상대방의 결정의 책임이 상대방 개인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당신이 그런 책임을 지는 상황 말이다. 이럴 때에는 사실 의사결정의 주체가 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되는 것이 맞다. 당신이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의 조직원들이 본인의 역량보다 더 큰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한다면, 당신이 그 리스크를 짊어지고 의사결정을 내려줘야 한다. 이럴 때 리더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은 꼰대 짓이나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그의 몫을 하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이 혼자서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사항에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책임질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지워놓고 방치해선 안 된다.  





이 글을 적으면서 이런저런 기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친구, 가족, 선배, 리더라는 관계에 숨어서, 혹은 조언, 걱정, 애정이라는 포장에 기대어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댔던 많은 말들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그런 말들로 나 역시 상처 입었지만, 그만큼 내가 상처를 줄 때도 많았으리라. 이 글에서 주로 내가 들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사례를 적었는데,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니 그러했으리라. 나의 오만한 조언들이 고민의 칼 끝에 서있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앞서 내가 과거보다는 조금은 성숙한 태도로 누군가의 고민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길 소원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