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인지도 중요하지만, 언제인지도 중요하다

당신이 속한 회사의 전성기는 언제인가요?

by 백승엽

사진: Unsplashrc.xyz NFT gallery

어느새 커리어를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거대하고 영속적인 '기업의 흥망성쇠'는 잘 보이지 않고, 그 안에 속한 개인들의 흥망성쇠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개 회사에서 일을 해보면서... 제가 속했던 기업들, 속하진 않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기업들의 상승과 하락을 경험하게 되면서 기업의 시간표에도 꽤나 큰 부침이 있으며 커리어 관리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보통 구직/이직의 순간에 기업의 현재 상태를 중점적으로 보게 됩니다. 현재 어떤 규모이고, 매출이나 이익이 얼마인지 등을 말이죠.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현재 시점에서의 절댓값도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그 절댓값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꾸어 말해 상승 국면인지 하강 국면인지가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상승 국면의 기업에 속한 개인들은 가만히 있어도 좋은 기회들이 물밀듯이 밀려듭니다. 동일한 노력을 해도 갑자기 지표가 상승하고 성과가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만들어지고 개인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기업이 성공 가도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처우 수준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시기의 경험들은 소위 '성공 경험'이라는 타이틀로 포장이 되면서 앞으로의 내 커리어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커리어에 대한 조언을 할 때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흐름을 내가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한데, 일단 물이 콸콸 흐르는 곳 옆에 서있어야 한다"

image.png Gemini가 만들어준 이미지

기업의 성공이라는 것은 너무나 다양한 요소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업 아이템, 차별적인 제품/서비스, 좋은 경영진과 구성원들, 기업 문화, 환경적인 요소 등이 결합되어서 성공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물론 저는 회사의 경영진 중 한 명으로서 위와 같은 요소들을 잘 이끌어서 회사의 성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제 미션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우리 회사의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성공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성공의 물줄기를 같이 맞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인지도 중요하지만, 언제인지도 중요하다"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조인하려는 회사가 현재 어떤 시기인지 -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혹은 이미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지 아니면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전성기는 최정점의 순간보다는 최정점을 향해 달려 올라가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가 가장 즐겁고 성과도 큰 시기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최정점에 도달하면 이제는 하락할 일만 남은 셈이죠. 회사를 선택하는 입장에서는 그 회사의 전성기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밌게 일하고, 성과도 나고, 역량과 처우도 성장하니까요.

image.png Gemini가 만들어준 이미지



#1. 두산에너빌리티

첫 취업을 앞두고 '캠퍼스 취업설명회' 같은 행사에 몇 차례 참여하였는데, 당시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님의 발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두산그룹의 인재 철학 중 하나인 2G 전략 (Growth of Business - Growth of People)을 설명하시는 맥락이었는데요. 요약하자면, "기업은 결국 피라미드 구조일 수밖에 없다. 하단이 더 넓고 상단이 더 좁은 구조이기에 자연히 도태되고 낙오되는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여 피라미드 자체의 사이즈가 커지면 도태되는 사람이 나올 염려가 없다. 사원 100명이 입사를 했는데 과장 자리가 50석이면 50명이 도태되지만, 회사가 성장하여 과장 자리가 100석이 되면 사원 100명이 모두 과장이 될 수 있다. 두산은 사업 성장을 통해서 그것을 해내고자 한다"는 이야기셨습니다. 저에게는 많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고, 제가 첫 회사로 두산에너빌리티 (당시 두산중공업)을 선택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제가 입사해서 경험한 것도 회장님 말씀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당시 두산에너빌리티는 매년 10~20%의 고속 성장을 하고 있었고 다양한 M&A와 글로벌 진출 등으로 사업 확장의 기세가 엄청났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좋은 자리가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의 사세가 확장되다 보니 승진할 수 있는 기회,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영업팀은 국내영업 1팀, 국내영업 2팀, 글로벌 영업팀 이런 식으로 분화가 되었고, 전략 및 재무담당자들은 M&A나 해외 진출을 통해 만들어진 글로벌 자회사들을 리딩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성장하니 자연스럽게 개인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열매가 나누어졌습니다. 저 또한 제 경력에 비해 꽤나 큰 프로젝트들을 많이 경험했고요.

회상을 해보니 제가 입사하기 전 3~4년, 입사 후 1~2년, 합쳐서 5년 정도가 두산에너빌리티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름다운 전성기가 지나니 상황이 반대가 되더군요. 사업이 위축되면서 점점 자리가 줄어드니 우수한 분들임에도 승진이 되지 않고, 성취 지향적인 분위기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변명만 하는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직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흐르고 업황도, 회사도 많이 바뀌어서 최근은 원전과 가스터빈 등으로 다시 새로운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최근 주가 흐름이 새로운 전성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image.png 두산에너빌리티 20년 주가 변화와 저의 재직기간 (2010~2017)



#2. 원티드랩

제 두 번째 직장은 채용플랫폼 '원티드'를 서비스하는 원티드랩입니다. 2015년 창업하여 2021년에 상장을 한, 그야말로 고속 성장을 했던 회사입니다. 물론 회사의 규모나 입지 측면에서는 상장 시점이나 그 이후 시점이 당연히 최정점의 시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 가장 눈부신 시기는 2019~2020년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비록 회사를 떠났지만 다시 전성기가 또 오리라 믿고 응원합니다)

그때 구성원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잘 되는지 모르겠다"

매출 등 대부분의 지표는 연 2~3배씩 성장하였고, 건드리는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성과가 났었습니다. 물론 저와 동료들은 당연히 최선을 다 했고, 경영진들이 회사를 잘 이끄셨고, IT 시장의 활황 등 외부 요소들도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들로도 당시의 성장은 쉽게 설명이 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유도 잘 모르겠고 다시 재현하기도 어렵겠지만, 그런 멋진 시기였습니다. (아마 이런 시간들이 10년이 쌓인다면 유니콘이, 20년이 쌓인다면 데카콘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성과는 잘 나왔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실 쉽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일거리들은 언제나 쌓여있어서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했고, 그중 대부분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습니다. 인원이 계속 늘어나고 조직은 계속 변화하느라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혼돈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니 재미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고생하면서 이 시기를 보낸 동료들은 여전히 끈끈하게 이어져있고, 가끔 만나서 그 시기를 추억하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험들을 쌓으신 많은 분들이 원티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인정을 받으면서 좋은 커리어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여러 구성원들이 팀장, 임원급으로 승진을 하였고 처우도 상승되었습니다. 당연히 개인별 평가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이 시기의 원티드랩을 경험하신 분들이 회사 밖, 이직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 회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고속 성장을 만들어내고 경험하신 분들이니까요.



#3. 인티그레이션

저의 세 번째 회사인 인티그레이션에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어갑니다. 회사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출은 매년 1.5배~2배 정도 상승하고 있고, 사업은 점점 다양해지고 고도화되고 있고, 조직의 규모와 질 모두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두 번에 걸쳐 합계 50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도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미 지나온 과거일 뿐입니다. 인티그레이션에서 일하시는 분들, 혹은 합류를 고민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 질문이 본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인티그레이션의 전성기는 언제일까요? 이미 지나갔을까요? 아직 오지 않았을까요?

저는 회사의 미래를 믿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아직 전성기는 오지 않았고 성장의 여력이 한참 더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제 일이자 미션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으니... 미래의 제가 지금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저의 이런저런 경험에서 다시 서론으로 돌아오면... 어떤 회사인지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 회사의 어떤 시기에 내가 조인하는지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제가 일한 회사들의 전성기를 맛볼 수 있었고,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어떤 회사에 조인할지 고민하시는 분들, 혹은 떠나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회사는 지금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는가? 최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전성기인가? 이미 최정점을 찍었고 하락 국면인가?"

"내가 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이 회사의 전성기와 겹쳐져 있나? 혹은 어긋나 있나?"


제가 사랑하는 많은 동료들이 아직 재직 중인 전 회사들이나, 현재 재직 중인 회사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사실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전성기가 언제였다는 판단은 저의 대단히 개인적인 판단일 뿐인데, 제가 뭐라고 어떤 회사와 그 안의 구성원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리얼한 경험담이 담겨야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입장에서 좀 더 잘 이해가 되실 것 같아서 감히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와 불쾌함을 남기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커버 사진: Unsplashrc.xyz NF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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