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 Here 세은 Aug 18. 2022

chapter 6. 쌍둥이 출산_수고했다 애썼다 고맙다

4번의 유산, 6번의 도전으로 쌍둥이를 만난 과정, 여섯 번째 이야기

시험관 시술 열흘 뒤, 난 화장실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며 울고 있다. 밖에선 남편이 상황도 모른 채 괜찮다며 위로한다. 내 인생에 이렇게 진한 두 줄을 본 적 있었던가? 진빨강이 무슨 색인지 알려주듯 강력한 두 줄이 임테기에 표시 돼 있다. 우선은 임신 성공. 서로 부둥켜안고 행복해 날뛰기도 바쁜데 우린 두 손 잡고 숨 고르며 말한다. 


‘한 고비 넘긴거야. 일희일비하지 말고 다음을 잘 준비하면 돼. 아직 9개월의 긴 여정이 남아있어.’                                       

시험관 배아 이식 10일 후, 피검사 수치가 50-100 hCG 이면 안정적인 임신 시작이라 보는데 내 첫 피검사는 150 hCG. 다음 날은 평균의 3배 정도인 400 hCG이라니 뭔가 이상하다. 병원에선 냉정하게 숫자만 알려줄 뿐 질문에 답도 없더니 두 개의 아기집을 보여주며 말한다.


 ‘쌍둥이네요? 축하드려요.’


매직아이 그림 보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초음파 사진. 여기가 머리, 이 부분이 다리, 콧날이 높을 것 같아. 1호가 50g 더 크고, 발차기는 2호가 잘하고... 눈으로 레이저를 쏠 수 있다면 초음파 사진들이 이미 구멍나 있을 정도다. 


임신 4개월 즈음부터 걷기 힘들더니 마트에 장 보는 것조차 버겁다. 고작 10분 거리인데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다 막판엔 멈춰서 눈물 흘리곤 침대 붙박이로 지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인데 마냥 기쁘고 좋기보다 솔직히 정말 욕 나올 정도로 힘들다. 그래도 욕은 속으로 한다. 뱃속에서 둘 중 한 명이라도 들으면 안 되니. 


마치 지난 힘든 경험들이 지금을 위해 존재하듯 운명적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로 크고 있는 쌍둥이. 누군가는 출산 전 아이가 나올 생각이 없다며 아파트 10층까지 오르내렸다는데 난 임신 기간 내내 계단은커녕, 28kg 증가된 몸으로 휠체어에 실려 다녀야 했다. 행복한 고통 속에서 출산일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쑥쑥아, 쭉쭉아! 이제 우리 만날까?’

제왕절개 수술 후 눈 뜨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둘 다 팔. 다리 잘 붙어있어?”, “응!”




내 의지로 눈을 떠 기지개 켜며 일어난 게 언제였던가. 떠올려보는 것 자체가 사치인 듯 양쪽에서 내게 발길질을 한다. 작은 신호에 바로 반응해줘야 하는데 한 명을 돌보는 사이 다른 한 명이 화를 내고, 괜찮다 달래주다 멀쩡하던 아이마저 울기 시작한다. 이젠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은 일상. 아니 아무렇지 않아야 하기에 화가 나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매일. 내 나이 환갑에도 아이들이 학생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해야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한숨부터 나온다. 


가끔은 머릿속에서 그때 그 의사의 목소리가 맴돈다. ‘몇 개 이식하시겠어요?’... 

내가 한 개의 배아만 선택했다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한 팔로 1호를 안고 그 팔을 깊게 돌려 잡은 젖병을 입에 물린다. 다른 한 팔론 울고 있는 2호를 안고 위아래로 흔들며 토닥인다. 목감기에 잠 못 자는 아이에게 수증기를 쐬어주겠다며 뜨거운 물을 들이대다 아이의 손에 화상을 입힌다. 누가 아주 세게 날 좀 때려줬으면 좋겠다. ‘바보 멍청이! 네 같은 게 엄마니까 애들이 힘들지!’. 어금니 올라오는 시절은 정말 악몽 같았다. 둘이서 번갈아가며 자지러지듯 몸을 비틀고 힘들어하는데 이걸 한 달 넘게 겪으니 내 멘털은 이미 사표 쓰고 도망갔다. 


그래도 항상 힘든 것만은 아니다. 찰나와 같은 격한 기쁨과 행복이 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알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찰나와 같다는 거다. 

양쪽 손으로 내 얼굴을 부여잡고 앞뒤로 흔들며 연달아 뽀뽀해줄 땐 미칠 것 같고, 한숨 쉬던 나에게 달려와 꼭 안아줄 땐 눈물도 난다. 아주 잠깐 서로 사이좋을 때 손 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 지금껏 모든 수고를 보상해주듯 뿌듯하다. 


그렇게 오늘도 분노와 행복과, 참회와 보람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수고했다, 애썼다. 

지금의 나와 내 가족이 존재하기 위해 견뎌왔던 그 시절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가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마지막 하나 더. ‘힘들어하지 마. 다 키우면 보람될 거야.’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그건 그때 느낄 감정이고 지금은 충분히 힘들고 괴로워하렵니다. 그게 나 자신이니까요.     




에필로그: 난임이기에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렸다. 6번의 의학적 임신 도전과 4번의 유산은 마치 운동선수의 경기 스코어 마냥 내게 위대한 기록이다. 우울과 행복사이에서, 좌절과 인내를 오가며 스스로 만든 세상과 싸워야했고 남 같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형언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누군가 육아와 임신과정 중 무엇이 더 힘드냐 묻는다면 비교가 우스울만큼 임신과정더 힘들다 말할 수 있다. 운명같은 쌍둥이 아이들을 만나 그렇게나 간절히 바랐던 '엄마' 가 돼버린 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나의 인생이 눈물로 가득했다는 마음에 이제 그 눈물을 박수로 바꿔보고 싶다. 출산이 행복의 꼭지점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 나 자신과, 지금도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잊고 싶었던 상처들을 오롯이 드러내어 다독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그렇기에 힘내야하는 당신은 충분히 잘 하고 있고, 위대한 엄마가 되고 있다 확언한다. 


_끝.

작가의 이전글 chapter 5. 시험관 그 리얼한 고통과 설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