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회복탄력성의 애매한 중간 즈음에 놓였을 때
난 우울감을 자주 느낀다. 나 자신이 긍정심리학과 회복탄력성에 관심이 많고 애써 잘 이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 이상으로 우울감이 자주 느껴지기 때문이다.
쉽게 지치고, 자주 귀찮고, 작은 것조차 힘들고 큰 일로 느껴진다.
처음엔 그냥 예민한 성격이라 그렇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니 주변이 주는 불편한 자극이 없어도 스스로 불편함을 만든다. 말 그대로 어딜 가나 무얼 하나 힘들어한다는 거.
이 결론을 스스로에게 내린다는 게 매우 힘 빠지는 일이라 단정하지 않으려 했는데 사실 난 그런 존재다. 약해 빠져 무너지고 싶어 안달 난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며 누구라도 나 좀 봐달라 아우성치는 얄팍한 존재.
생리증후군인가 싶어 날짜도 계산해봤는데 안타깝게도 신체 호르몬과 연관이 없더라. 그냥 계속해서 우울감을 찾아 나선다. 방식은 이렇다. 하루를 매우 유의미하게 살기 위해 애쓴다. 불 꺼진 방에서 잠들기 전 머릿속에선 다음 날 입을 옷을 구상하고, 일정을 정리한다. 딱히 정해진 일정이 없으면 어떤 보람찬 하루를 보낼까 계획해본다. 그러다 떠오르는 재미난 일, 설레는 일이 없으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영화 한 편 볼까? 봐서 뭐해. 시내 나가는데만 80킬로야.' , '도서관 가서 책을 잔뜩 읽어볼까? 별로 끌리지 않아.' 계속해서 싫은 이유들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그럼에도 바쁘게 움직이자 마음먹고 다음 날 이것저것 해내고 나면 잠시 기분이 개운하다. 그러곤 할 일이 없어지면 또 우울해진다. 할 일이 쌓여있어도 왜 끝이 없냐며 우울해진다.
유의미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행위가 스스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아니 무의미한 인생을 확인하려고 자꾸 유의미함으로 날 채우려 하는지 모른다. 유의미한 무언가는 반짝 지나가는 순간과 같고 영원하지 않으니 지속할 필요 없다는 걸 느끼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 최선을 다해 육아를 하는 이유, 답답한 부부의 대화를 잘 풀어보려는 노력, 좋은 추억을 만들려는 삶의 모든 태도들. '의지'라는 힘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굳이 유의미하지 않아도 되는데... 무의미한 하루도 그대로 의미가 있는데 난 이토록 깊고 끝없는 동굴 속에서 헤쳐 나올 수가 없다.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보자.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
무얼 할지 고민하지 말아 보자.
지저분하면 지저분한 대로
할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숨 쉬어보자.
말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