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by 습작


글은 길어야 하는 것이다 - 수년간 수백 권의 장편소설을 독파한 내가 모름지기 글이란 것이란 고정관념 속에 갇힌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짧은 글을 읽어본 적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웹소설, 스레드 피드,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한 블로그 게시글 등은 따지자면 전부 짧은 에 속하는 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공개적인 곳에 글을 게시해야 한다면, 그 스타트만큼은 꼭 장대하고 의미 깊은 글로 끊어야 한다는 요상한 강박이 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걸 좋아한다. 정성스레 가꾼 나를, 내 모든 일면들을 드러내는 걸 낙으로 삼는다. 툭툭 던지듯이 쓴 짧은 글들은 내 정성스러움의 기준에서는 꽤나 동떨어져 있다. 하나 쓰지 않는다면 결국 세상은 나를 알지 못한다. 세상에게 나를 알리지 못한다. 모순이다.


글은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 생각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길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수십 편의 글들을 저장고에다 처박아 놓고 묵혀 두기만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루에도 십수 번이나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다 사라지지만 결국 비슷한 맥락의 말들일뿐이다. 그런 말들은 고작 두세 줄짜리 메모로 내 기록장에 남는다. 그러다가 새로 찾아오는 손님들에 밀려 저 아래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밀려난 글들은 가끔 메모장을 정리할 때 끄집어내져 한두 마디씩 추가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휴지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내 고민은 항상 어떻게 하면 글의 길이와 완성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을지에 관한 것들이었고, 이 모든 고민들은 다시 침대에 누워 하는 끊임없는 손가락 운동으로 귀결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이고 풍부해 보이는 글을 메모장 안에 담기 위해 여기를 깎고 저기를 다듬으며 매끄러운 흐름을 조각한다. 그렇게 꾸며낸 글을 읽어 보면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는지조차 갈피가 안 잡힌다. 대개의 경우 그런 글들 역시나 휴지통에 쳐박혀 꺼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나를 있어 보이게 만드는 매끈한 글과 실제 하고 싶었던 말이 적힌 투박한 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새벽 내내 글과 씨름을 하다가 동이 틀 때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곤 한다.


그러나 수십 번의 퇴고도 글의 길이를 바꿔 주지는 않는다. 결국 하고픈 말이 없는 사람의 글쓰기는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늘려 봐도 실속 없는 말들이다. 어느 지점에서는 자가복제를 반복하는 레퍼토리에 질리고, 더 이상 창작을 이어갈 수 없으리란 공포와 맞닥뜨리고야 만다.


그 대상이 에세이든 소설이든, 어떤 주체의 생각이 담긴 창작물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고충이다. 정해진 형식에 맞추려면 길이를 늘여야만, 혹은 줄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분량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줄글로 적어내지 못하거나, 한정된 종이 위 공간에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담지 못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게를 싣거나 덜어내고픈 내용이 있다. 내게 있어 그 의미가 깊거나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강조하고픈 부분이 있을 것이고, 서술의 순서상 없을 수는 없으나 너무 재미없고 진부하여 확 빼버리고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글이란 그런 욕망을 억제하고 제련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써야 한다. 완벽함이란 없단 걸 알면서도 그나마 가까워지기 위해 다듬어야 하고, 나아가야 한다. 결코 닿을 수 없음에도 추구하는 게 글쓰기의 과정이다.


내 나름대로 내린 글쓰기의 정의고, 글쓰기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2024년 7월 18일 새벽 2시